[커버스타]
[커버] 진짜의 진짜의 진짜, <한공주> 개봉 10주년 맞이한 배우 천우희
2024-05-07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이렇게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 2014년 천우희가 영화 <한공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선후배 동료 배우들은 물론 그의 수상을 지켜본 영화 팬들도 각자의 상황을 대입하며 그에게 응원과 지지의 목소리를 보냈다. 재능에 비해 주어진 기회와 환경이 받쳐주지 못했던 ‘진짜배기’가 빛을 보는 순간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드라마가 된다. 그리고 10년 후, 천우희가 걸어온 행보는 예상 범주 안에 있을 법한 작품과 이를 벗어난 작품이 흥미롭게 공존한다. 이를테면 <곡성>에서 보여준 에너지나 <걸스 온 탑> <메기> <버티고> 등 독립·단편영화 작업이 우리가 기대했던 천우희의 고마운 연장선상이라면, <멜로가 체질>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그가 일반 여성의 보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반가운 확장이었다. <한공주> 개봉 10주년을 맞아 만난 천우희는 지난 10년간 거쳐온 필모그래피가 완벽한 계획과 의도가 만든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넓고 깊게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부딪치고 실패해온 경험을 이어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5월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더 에이트 쇼> 두편의 시리즈물 공개 후 이어질 대중의 반응이다. “작품의 결이 많이 다르다. 연기할 당시의 나 자신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두 작품의 연기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들 작품에는, <한공주>를 찍었던 그때처럼 여전히 치열하게 도전하지만 유연함과 여유의 가치를 믿게 된 그의 변화가 포착될 예정이다.

- 화보 촬영 중간에 스스로를 ‘오후의 여자’라고 표현하더라. 오후에 더 예뻐 보인다는 의미인가.

= 정오가 지나야 얼굴 부기가 빠진다. 육안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도 막상 사진을 찍으면 부기에 따라 얼굴이 무척 다르게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깅도 해보고 땀도 빼보고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도 소용없었다. 오늘은 오후 스케줄이라 너무 좋았다.

- 배우들의 신기한 포인트가 바로 그거다. 부기 있고 트러블이 난 얼굴이 카메라에 찍히고 스크린에 박제되면 너무 신경 쓰일 거 같은데(웃음) 캐릭터를 위해 필요한 순간 배우들은 과감하게 해내지 않나. 천우희는 얼굴이 부으면 붓는 대로 내추럴하게 연기하는 쪽이다. 동시에 레드카펫을 걸을 때, 광고촬영을 할 때, 화보를 찍을 때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분리가 가능한 건지.

= 얼굴이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이 오히려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 화보는 오차 없이 예쁘게 나와야 하고,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더 에이트 쇼>처럼 이미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작품도 있고, 산을 뛰어다녔던 <곡성>은 노메이크업으로 연기할 때 훨씬 강렬한 에너지가 나온다. 이미지가 중요한 사진 작업은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한 반면 연기할 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캐릭터, 작품의 결이 더 중요하다. “어떻게 얼굴이 맨날 바뀌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카메라가 찍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배우에겐 좋은 매력이자 장점이지 않을까, 오히려 자부심을 갖고 있다.

- 배우는 자신의 얼굴을 받아들인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말을 인상적으로 본 적이 있다. 어떤 각도에서 찍히든 날것이든 꾸며진 모습이든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이들이 배우가 될 수 있다고.

= 멋진 말이다. 그런데 본인 얼굴을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은 마냥 내맡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컨트롤하며 카메라 앞에 서기도 한다. 그건 배우의 특성에 따라 좀 다르다.

- 당연히 천우희는 내맡기는 유형의 배우인가.

= 작품마다 접근 방식이 좀 다르다. 드라마는 비주얼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순간도 있다. 내가 짝눈이라 왼쪽과 오른쪽 얼굴이 좀 다르다. 오른쪽 눈이 좀더 커서 보다 날카로워 보이고, 왼쪽은 유하게 보인다. 그래서 작품에 따라 얼굴을 선택할 수 있다.

- 성시경 × 나얼의 <잠시라도 우리> 뮤직비디오를 인상적으로 본 이들도 많더라. 뮤직비디오는 구체적인 서사보다는 이미지 중심, 다시 말해 어떻게 찍히느냐를 좀더 고려한 작업이었을 듯한데.

= 뮤직비디오 출연은 처음이었다.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모여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작업이라 흥미로웠다. 후반부에 절절한 감정 연기를 하는 대목이 있다. 지금까지 연기를 해오면서 늘 진심을 담아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때도 진짜로 연기를 했다. “자, 오른쪽을 본다. 아래를 본다”라고 감독님의 디렉션을 들으면서 한 테이크로 연기했는데 이런 방식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7분여를 찍은 후 가장 좋은 이미지컷을 뽑아 쓰는 거다. 진실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적인 스킬이 필요하겠구나, 이번 작업도 즐거웠지만 다음에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3월까지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을 촬영했다. 크랭크업 후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 원래 작품 홍보를 앞두면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나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나 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는데 이번에는 쫑파티 다음날 바로 일본 여행을 갔다. 오랜 숙원이었던 스쿠버다이빙을 위해 2주 전 필리핀에서 자격증도 땄다. 회사에서도 놀란다. “우희씨 집순이라면서요?” 이제는 집에만 있지 않으려고 계속 이벤트를 만들고 있다.

-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도 하고, 작업 환경이 바뀐 이유도 크다. 요즘은 한 작품을 길게는 10개월까지도 찍는다.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도 내 생활도 아무것도 없다. <이로운 사기> <더 에이트 쇼>가 겹치면서 거의 2년 가까이 현장에만 있었다. 물론 즐겁고 행복했지만 소모되기도 했다. 촬영이 끝나고 여행을 다녀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결국 연기는 삶을 표현하는 작업인데 내가 관계를 차단하고 삶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대본을 많이 보고 현장에서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다가 개인적인 삶을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 그렇다면 천우희 개인의 삶에서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

= 여행. 연기든 삶이든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미개척지를 개척하고 싶은 모험심이 있다. 예전에는 개인의 삶은 소심한 대신 연기적으로 더 열의를 보여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일상에서도 모험을 해보고 싶다. 예전에는 주변에서 하는 걱정을 모두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착한 사람이었는데(웃음), 그러다보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했다. 과거에는 가족이나 정말 친한 친구하고만 여행을 떠났지만 이제는 그때그때 시간 맞는 여행 메이트를 찾거나 내키면 혼자서도 가고 싶다.

-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천우희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이후 촬영한 작품이다.

= 프리프로덕션 때 마음가짐도 스스로 연기를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이후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는 성장하지 못할까봐 스스로를 더 채찍질했다. 남들이 칭찬해도 의심하며 내가 정체되고 도태될까봐 부족한 점을 의식했다. 지금은 내 자신을 좀더 포용할 수 있게 됐다. 아쉬운 부분이 있어도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예전에는 완벽하고 치밀한 연기를 추구했다면 지금은 좀더 유연해진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결국 내가 작품에서 한 연기를 보면서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부분은 예전 방식이 더 좋을 것이고, 새로운 시도가 괜찮기도 할 거다. 나 역시 이번 작품이 참 궁금하다. 주화미 작가님이 첫 미팅 자리에서 “우희씨가 이 작품을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작품하는 동안 내가 변했음을 느꼈고 작품이 끝난 후 작가님이 말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조금 다른 결의 행복이었다.

- 8명의 참가자가 상금을 놓고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는 <더 에이트 쇼>의 ‘8층’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다. 이런 캐릭터일수록 작품 전체와 다른 인물과의 조화를 고민해야 하지 않나. 혼자 유별나게 튀면 흐름을 해칠 수 있으니까.

= 앙상블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매 작품 연기할 때 인물들의 밸런스를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8층’은 오히려 그의 자유분방함이 조화를 깨뜨리고 물을 흐려야 한다. 거기에서 생기는 긴장감이 분위기를 환기하고 흥미를 돋워야 했다. 때문에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 중 가장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택할 수 있겠다고 예상했는데 막상 현장에 가니 제약도 많았다. 8명이 한 프레임에 나오다 보니 움직임에 제한이 생기고 한재림 감독님도 내 캐릭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가장 어려워하셨다. ‘8층’이 보여줘야 하는 텐션이 작품에서 잘 살아났을지 나 역시 궁금하다. 하지만 배우는 그저 작품에 몸을 맡기고 캐릭터에 충실할 뿐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더 에이트 쇼>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8명의 이야기가 모여서 8부까지 끌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충분하다.

- 올해가 <한공주> 개봉 10주년이다. 요즘엔 신인배우가 OTT 시리즈 등을 통해 발굴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천우희는 영화를 통해 발굴되고 업계가 알아본 배우였다. 영화로, 특히 독립영화로 커리어 초반 주목받은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 영화 외적으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 같다. 내게 <한공주>가 갖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커리어 초반에 주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공주>였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얼마 전 <한공주> 10주년 모임을 가졌다. 아직 조단역 역할을 하는 친구도 있고 연기를 그만둔 친구들도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연기를 시작하던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난 게 정말 행운이었다”는 점에 공감했다. 좋은 시나리오, 한컷도 허투루 찍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하고 노력한 감독님, 영화가 좋아서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여 만든 작품이었다. 영화가 좋다는 마음 하나로 뭉쳤던 그 경험이 내가 이 일을 배워가는 자세와 태도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든 초석이 됐다. 그때 그 기억이 너무 좋으니까 계속 그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것 같다.

- 당시 현장을 돌이켜보면 어떤가. 무척 열악했다고 알고 있는데.

= 아직도 기억난다. 25회차를 한달 반 만에 찍었다. 하루에 3~4시간도 못 자고 라면, 김밥, 햄버거를 돌려 먹으면서 찍었다. 작품 자체가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우리의 표정은 밝았다. 오히려 환경이 우리를 똘똘 뭉치게 해주고 최고의 집중력을 갖고 연기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이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모든 사람들이 애정과 열정을 갖고 찍었다.

- 올해 15주년이 된 봉준호 감독의 <마더>, 아직까지 배우들이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알려진 <써니> 현장도 커리어 초반에 경험했다.

= 초기에 너무 좋은 현장, 너무 좋은 연출자 그리고 배우와 스태프들을 만나서 운이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인복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써니>를 찍을 때 내가 친구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캐릭터를 맡아서 외롭고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한 스태프들이 있었나 보다. (웃음) 당시 소속사도 없던 나를 위해 책상에 “한국의 게리 올드먼이 되어주세요”라고 써준다거나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쪽지를 주고 간 분들이 있었다. 녹록지 않은 작품들을 많이 했지만 그때 받은 격려가 꽤나 큰 자부심이 됐다.

- <한공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주목도가 높을 때 촬영한 <곡성>은 어땠나. 얼마나 힘든 현장이었는지 이런저런 증언이 많다. (웃음)

= 육체적인 힘듦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이른바 ‘현타’가 올 수 있지만 그땐 영화를 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었다. 사람들이 내게 “<곡성> 때 많이 힘들었지?”라고 하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얻는 괴로움은 괴로움이 아니다. 그건 얼마든지 감내해야 한다. 오히려 원하지 않는 일을 할 때의 괴로움이 사람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 천우희는 ‘센 연기’를 잘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출연이 반가웠다. 실제로 사람들이 천우희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도 다양해진 것 같다. 의식적인 스펙트럼 확장이었나.

=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다 보니 원하는 작품과 캐릭터를 원하는 시기에 고를 수 없다. 다만 그런 건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넓고 깊게 연기하고 싶고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공주>로 나를 처음 본 분들, <곡성>으로 나를 처음 본 분들, <멜로가 체질>로 나를 처음 본 분들이 배우 천우희에 대해 갖는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다. 끊임없이 모험하고 스스로를 쌓았다가 무너뜨리고 깨져보고 실패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만큼 깊어지고 넓어지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계속 도전하고 있다.

- 특히 최근 작으로 올수록 일상적인 캐릭터들이 늘어났다는 인상이다.

= 그런 캐릭터들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내가 경험할 수 없음직한 상황과 감정을 연기하고픈 열망이 컸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일상을 포착하고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게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깨달았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사랑 이야기가 너무 시시했다. 지금은 사랑만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연기가 또 있나 싶다. 내가 걸어온 삶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 관객 입장에선 저 배우가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동시대 여성이라는 확신이 들 때 더욱 감정이입이 되고 응원하게 되는 면이 확실히 있다. 배우 천우희가 담을 수 있는 2030 여성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라고 자평하나.

= 혼자 빠져나와서 생각하고 관조하는 것을 좋아한다. 거기에서 분명히 얻는 깨달음이 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법한 인물들도 연기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또 나이에서 오는 성찰이 분명히 있다. 다양한 삶의 경험이 쌓일수록 표현할 수 있는 것도 풍부해지고 사람들이 더욱 공감하게끔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살 한살 먹는 게 겁나지 않고 오히려 기대가 된다. 과거에 미련을 갖거나 현재 아쉬운 점에 연연해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좋을 때를 만끽하자, 이 모습을 작품으로 남긴다는 것이 정말 큰 복이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 이옥섭 감독의 <메기>, 전계수 감독의 <버티고>, 이태안·조현철 감독의 <부스럭> 같은 작업은 아주 많은 관객을 만나기는 어렵지만 예전의 천우희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줬던 작업 같다. 배우의 활동 영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의 작업을 놓지 않는 것이 배우의 태도나 연기에 주는 영향은 무엇인가.

= 작품의 규모보다는 원초적인 직관, 이 작품을 하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작은 규모의 작업에서 오는 힘과 에너지, 창의성이 확실히 있다. 다양한 작업을 해야 태도도 더 유연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다. ‘굳이’라는 말을 붙이다 보면 모든 게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나는 ‘굳이’ 해야 하는 작업들을 좋아한다. 그게 배우의 동력이 될 때도 새로움을 만들어낼 때도 환기가 될 때도 있다. 그런 작업을 지금도 찾고 있고 계속 하고 싶다.

- 배우와 스타는 완전히 구분될 수 없는 개념이지만, 천우희에게 더 어울리는 수식어는 단연 ‘배우’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2천만명을 돌파하고 광고를 100편씩 찍는 천우희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는 천우희 중 어느 쪽이 더 상상이 잘가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다. (웃음) 그리고 이는 아무리 화제의 중심에 선 스타라고 해도 얻기 어려운 아우라이기도 하다. 동시에 배우에겐 스타성과 대중과의 접점, 화제성이 필요한 게 현실 아닌가. 어느덧 데뷔한 지 20년이 됐는데 앞으로 더 재미있고 즐겁게 오래 연기하기 위해 하고 있는 고민이 있다면.

=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선택받는 분들이 있고 그 흐름은 나도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에 발맞춰 나가면서도 배우 고유의 특성을 잘 간직하는 것이 관건인데, 내가 계획한다고 되는 일도 아닌 듯하다. 하지만 나도 지금 시대에 활동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직관을 따라야 할 때도 있고 필요성에 따른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고 그건 그때 그 당시 내 마음에 달려 있는 문제다. 하지만 나의 뿌리는 ‘연기를 하는 배우’에 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 쇼츠와 릴스, 틱톡의 시대다. ‘잘하는 연기’에 대한 잣대도 달라지고 있다. 짧은 영상만으로도 캐릭터가 파악되고 강렬한 밈이 되기 좋은 연기, 이른바 ‘도파민’을 주는 액팅이 사람들에게 선호받는다. 배우 입장에서도 체감하고 있나.

= 배우들 사이에서도 화두다. 일부 발췌된 영상을 보며 ‘좋은 연기’라고 평가받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시간짜리 영화가, 60분짜리 드라마가 15분 정도 되는 유튜브 영상으로 편집되면 원래 배우가 보여줬던 긴 호흡의 연기는 무엇이 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시대의 흐름이기에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주목받기 위한 연기를 마냥 쫓아가는 건 아닌 것 같지만, 필요할 때는 어느 정도 쇼잉과 이미지적인 접근을 취할 수도 있다.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본질을 건드리면 당해낼 자가 아무도 없다. 유행은 돌고 돌고 얼마든지 판도는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배우 각자가 갖고 있는 연기적 본질을 잃지 않으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원래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유튜브 쇼츠로 봐도 잘한다. (웃음) 배우의 진심을 잘 담아줄 수 있는 사람, 또 그것을 잘 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 당신을 롤모델로 꼽는 후배 배우들이 정말 많다. 그들이 왜 당신을 동경하는 것 같은가.

= 내가 꿈을 현실로 이룬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대부분 여자배우들은 외적으로 매력 있어서 한번에 주연이 되고 계속 주연을 맡는 슈퍼 루키들이 많았다. 나는 “출생이 다르다”고 스스로도 얘기한다. (웃음) 나처럼 단역부터 시작해 주연까지 간 여자배우가 흔치 않다. 내가 하나하나 일궈왔고 이루어낸 결과물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그 모습이 지금 배우를 지망하는 친구들에게 굉장한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위해 좋은 본보기가 되어 앞으로도 더 잘해내고 싶다. 며칠 전 생일이라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분이 다가와서 “저도 연기를 해요. 선배님을 봐서 너무 좋아요. 나중에 꼭 현장에서 만나고 싶어요”라는 말을 전해왔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 너무 뿌듯하고 내게도 힘이 된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게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의미니까. 워낙 이 리그가 보수적이다 보니 늘 벽에 부딪치게 되고 지금도 느끼고 있지만, 청개구리 같은 기질과 도전 정신이 오히려 이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최근 문상훈씨 유튜브 채널에 나갔다가 “구도자의 길을 가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웃음),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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