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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The 8 Show' (더 에이트 쇼) 배우 류준열, 가장 보통의 류준열
2024-05-23
글 : 이유채
사진 : 최성열

배우 류준열이 자신에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더 킹>)을 안겨주었던 한재림 감독과 다시 손을 잡았다. 5월17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The 8 Show>(더 에이트 쇼)는 한재림 감독의 첫 시리즈 연출작으로 미스터리한 쇼에 참가한 8명의 혹독한 생존기를 다룬다. 류준열은 빚더미에 앉아 목숨을 버리기 직전, 쇼 참여를 제안받는 청년 진수 역을 맡았다. 8층짜리 숙소에서 무난하게 3층을 골라 쇼에 합류한 진수는 튀는 8층 여자(천우희), 브레인 7층 남자(박정민), 거친 6층 남자(박해준), 의뭉스러운 5층 여자(문정희), 눈치 100단 4층 여자(이열음), 다혈질 2층 여자(이주영), 순순한 1층 남자(배성우)와 이합집산하며 막대한 상금 획득을 노린다. ‘시간만 잘 보내면 돈을 준다’는 허무맹랑한 게임쇼에 현실감을 불어넣기 위해 류준열은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하고 치밀하게 작품을 대했다고 말한다.

- <외계+인> 1부로 <씨네21>과 만났을 때 외계인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에 단칼에 “없다”고 답한 적 있다. 비슷한 질문을 하고 싶다. ‘The 8 Show’ 같은 쇼가 어딘가에서 벌어질 수 있다고 보나.

= 없다. (웃음) 있어서도 안 될 것 같다.

- 그렇다면 외계인은 있다고 가정하는 것에부터 시작한 <외계+인> 때처럼 <The 8 Show>도 이런 쇼도 있다고 가정하는 것에서 시작했을까.

= 그렇진 않았다. 쇼 안에 잘 녹여진 인간 군상을 하나하나 곱씹고 받아들이면서 예열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8개 층으로 대변되는 여러 사회 계층들의 다양한 모습,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자극,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이러한 현실적인 면면들을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는 단계를 거쳤다. 그런데 출연 결정은 대본을 보기 전에 했다. 한재림 감독님께서 지금 내가 얘기한 것과 비슷하게 작품 설명을 해 주시면서 “준열 씨는 이런 극의 화자이자 가장 보통의 인물을 연기하게 될 거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미 그때부터 흥미가 생겼다.

- <The 8 Show>는 한재림 감독이 <더 킹>에서 발휘했던 블랙코미디의 리듬으로 현대 자본주의를 능란하게 타고 흐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 블랙코미디를 워낙 좋아하고 그런 장르의 유머도 일상에서 즐겨하다 보니 한재림 감독님과 취향이 잘 맞았다. 대체로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감독과 배우의 대화가 이 작품을 할 땐 굉장히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난 질문도 많고 생각도 곧잘 전달하는 편인데 감독님께서 신마다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디렉션을 주셔서 이견이랄 게 없었다. 극 중 참가자들이 행하는 극한 게임도 그래서 이해가 잘 갔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니까 연기에 확신이 생기고 그 의도가 더 잘 드러나게 할 만한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찾게 된다는 점이 발전적이었다.

- 진수는 참가자 8명 중 주인공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중간만 하자는 생각으로 3층을 고른 것에서부터 적당히 눈치 보고, 그러면서도 남을 돕는 선의가 있어 시청자가 가장 편안하게 느낄 포지션이다.

= 진수를 제외한 7명 모두 누구 할 것 없이 성격적으로 강하고 독특한 선택을 한다. 그들에 비하면 진수는 아주 평범하기에 시청자가 공감하고 이입할 만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진수는 그들을 바라보는 포지션이기도 해서 기본적으로 캐릭터 톤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잡았다. 곤란한 상황에 빠질 때마다 그 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물론 중간중간 내 주관적인 뉘앙스나 유머를 섞어서 시청자가 즐길 수 있는 순간도 확보했다. 진수가 주최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인터넷방송 느낌으로 먹방을 선보이는 장면은 내 아이디어로 재밌게 찍었고 오케이도 한번에 났다.

- 쇼는 스테이지 변경이나 참가자 변동 없이 끝까지 진행된다. 감옥처럼 설계된 세트에서 계속 같은 배우들과 촬영하는 과정은 어땠나.

= 변수 없는 안정적인 현장에서 내가 준비한 것들을 펼치는 촬영이 흔한 건 아니니 일단 신선했다. 잘 알던 사이든 처음 만난 사이든 이번에 함께 길게 호흡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배우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이 배우로서 중요하게 남을 것 같다. 이번 작품으로 내가 세트 촬영 체질이라는 것도 알았다. 대전 세트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비즈니스맨처럼 출퇴근하듯이 현장을 오갔는데 그런 통제와 규칙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 진수의 1인칭 내레이션이 극을 이끈다. 정보와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내레이터로서의 류준열 배우의 진가를 드라마 <인간실격> 이후 다시금 확인했다.

= 내레이션이 많은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데뷔 이후 감사하게도 실제로 해볼 기회가 많이 주어졌는데 그때마다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절대적인 대사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녹음 자체가 걱정됐고 끝도 없이 자기 얘기를 하는 방식에 지치기도 했다. 특히 시청자가 이 방대한 양을 어떻게 감당할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추진력 있는 한재림 감독의 지휘가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쭉쭉 다음 파트로 넘어갈 수 있었다.

- 존재감 강한 내레이션과 담백한 신체 연기의 밸런스가 좋았다. 실제로 현장에서 연기할 때 내레이션을 염두에 두었나.

= 그렇다. 내레이션에 맞춰서 연기 플랜을 계획적으로 짰다. 기본적으로 연기할 때 감정 과잉 상태가 되는 걸 경계하고 밸런스를 우선 신경 쓴다. 내가 어떤 일이든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하고 항상 나로부터 출발해서 캐릭터를 만들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와 캐릭터 사이의 연관성이 깊다. 괴로운 캐릭터를 맡는 동안에는 실생활의 나도 좀 괴롭고 반대로도 그렇다. 다시 말해 2022년에 탄생한 진수 안에는 2022년의 류준열이 꽤 많이 담긴 셈이다.

- 원초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를 보는 재미도 컸다. 도시락과 생수병을 며칠간 받지 못해 극도로 허기를 느끼거나 목말라 하는 연기, 방에 화장실이 없어서 생리현상을 참는 연기 등을 직접 해야 하는 배우는 곤혹스럽거나 어쩌면 큰 희열을 느꼈을 것도 같다.

= 한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서 배우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한다. 이런 원초적인 장면들은 어떻게 보면 낯설기도 해서 공감대를 빠르게 불러일으키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시청자가 난감한 상황에 있는 진수를 보자마자 이와 비슷한 고통을 느꼈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관련 유튜브 영상을 많이 보면서 표정을 디테일하게 가져가려고 했다. 이런 장면들은 진수의 방에서 혼자 찍었는데 배운 게 많다. 화이트 큐브 같은 세트 안에서 어떠한 기술적 효과나 물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외롭게 한 신을 감당하면서 책임감도 더 느끼고 준비도 더 철저히 해갔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GV(관객과의 대화) 참석, <에어>의 배우 맷 데이먼과 벤 에플렉 인터뷰 진행 등 해외 영화인 관련 활동들을 눈여겨보게 되더라. 넷플릭스 작품 공개를 앞둔 지금, 글로벌한 작업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지.

= 쿠엔틴 타란티노 작품에 참여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늘 있다 보니 마지막 작품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괜히 아쉬웠었다. 그런데 그 영화가 현재 어떤 이유로 촬영이 지연됐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내게 아직 기회가 있나’하는 기분 좋은 생각에 빠지면서 상상만 하고 있다. (웃음) 드니 빌뇌브, 데이미언 셔젤, 박찬욱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 등 작가주의 감독들을 사랑한다는 얘기도 전한다. <The 8 Show>가 첫 넷플릭스 작품이다. 어떤 글로벌 반응이 있을지 궁금하다. 아직 밝힐 수 없는 차기작을 촬영하면서 이 기대감을 계속 가져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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