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 - <이프: 상상의 친구>의 뭉클한 순간들
2024-05-24
글 : 송경원

당연한 말이지만 이야기에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너무 많은 매체에 둘러싸여 너무 많은 이야기를 소비하다 보면 이 당연한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이야기는, 듣는 사람만큼 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것을 안겨준다. 타인에게 알기 쉽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이 몰랐던 자신을 다시 마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여기, 듣는 위치에 익숙해져 언젠가부터 이야기를 ‘전하는’ 행복을 망각한 우리를 위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일깨우는 영화가 오래된 다락방 문을 두드린다.

‘상상의 친구’와 이야기 나누기

<이프: 상상의 친구>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함께했던 ‘상상의 친구’ (Imaginary Friend)들에 대한 이야기다.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을 본 사람이라면 솜사탕 몸과 코끼리 얼굴을 한 채 사탕 눈물을 흘리던 ‘빙봉’과 겹쳐 보일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이들은 혼자서도 참 잘 논다. 혼자 말을 하며 소꿉놀이, 인형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마주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실은, 어떤 아이도 혼자서 놀지 않는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이들은 자기가 만들어낸 자신만의 상상의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상상의 친구와 함께할 때 아이들은 이야기의 화자인 동시에 청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한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한 사람은 듣는다고 했지만 그리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이야기란 함께 ‘나누는’ 작업이다.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공유하여, 함께 경험하기.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어느새 그 이야기의 일원이 될 마법의 티켓을 끊은 것과 다름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린 시절에만 허락된 자유로운 상상력의 비밀을 마주한다. 상상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일치하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경험이다. 자신이 질문하고 자신(상상의 친구)이 대답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이 놀라운 체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일이 아닐까. 상상의 힘을 잃어버린 채 소위 ‘말이 되는’ (합리적인) 이야기에만 고개를 끄덕거리는 무채색의 세계는 얼마나 지루한가. <이프: 상상의 친구>는 그렇게 잊어버려 끝내 잃어버린, 당신의 오래된 상상의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을 주선하는 영화다.

비(케일리 플레밍)는 어린 시절 엄마와 사별했다. 어린 비의 기억 속에는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할머니(피오나 쇼) 집에 머물던 시간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비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다. 비는 할머니 집에서의 즐거웠던 시간을 기억의 상자 속에 넣어둔 채 할머니 집을 떠났다. 시간이 흐른 뒤 이번엔 아빠(존 크러진스키)가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되고 수술받는 동안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던 비는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어엿한 소녀가 된 비는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아빠는 그런 딸이 못내 안쓰러워 끊임없이 장난을 친다. 그때마다 비는 옅고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러지 않아도 돼요, 아빠.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에요.”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 비는 할머니 집에서 이상한 존재를 마주한다.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 비는 조심스럽게 뒤를 쫓고, 위층에 사는 아저씨 칼(라이언 레이놀즈)을 만난다. 칼은 비를 보고 당황해하며 모른 척하지만 이미 비의 궁금증은 커질 대로 커진 상태다. 우여곡절 끝에 비는 칼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알아낸다. 칼은 아이들과 헤어진 상상의 친구, ‘이프’들을 보살피며 살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프들은 아이들이 자란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비밀의 장소에 모여 살고 있다. 이프들의 사연을 들은 비는 이프들에게 새로운 친구가 되어줄 아이들을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렇게 아이들과 이프의 매칭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행복을 위한 노력

<이프: 상상의 친구>는 멋들어진 스타일을 자랑하는 영화도, 대단한 야심을 가지고 미학적 성취에 도전하는 영화도 아니다. 심지어 ‘상상의 친구’라는 소재는 물론 전개 과정, 약간의 반전까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고 안전하다. 하지만 존 크러진스키는 이번 영화를 통해 익숙함과 식상함의 종이 한장의 차이가 얼마나 두껍고 무거운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빤하다는 지적은 이 영화가 전하는 두꺼운 감동을 조금도 덜어내지 못한다. 도리어 패턴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기어이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솜씨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프: 상상의 친구>는 우리가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소중한 보물 상자를 문 앞까지 성공리에 배달한다.

좋은 의미에서 모범적인 이 영화는 아이와 어른이 손잡고 함께 볼 때 더 즐겁다. 아이와 어른, 양쪽의 눈높이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아마도 상상력을 향한 무던한 노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극한의 서스펜스와 스릴을 선사한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존 크러진스키 감독이 차기작으로 동심 어린 가족영화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은 아버지로 직접 출연했는데, 이때 딸과 나누는 길지 않은 몇번의 대화가 단단한 기둥처럼 깊게 박혀 영화 전체의 중심을 잡아준다.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의 심장은 고장난 것이니 고칠 수도 있다며 시종일관 농담을 건넨다. 행여 자신이 불안해할까 계속 웃기길 시도하는 아빠에게 너무 일찍 철이 든 딸은 “삶이 항상 재미있을 순 없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때 아빠의, 아니 존 크러진스키 감독의 답은 명료하다. “그래로 노력해야지.”

<이프: 상상의 친구>의 진가는 현란한 CG와 기발한 캐릭터디자인으로 잃어버린 동심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이 영화가 진짜 공을 들이는 건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다시 기억하도록 길을 안내하는 ‘이야기’에 있다. 솔직히 얼마나 치밀한 이야기인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아이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말이 되는지’ 따지지 않는다. 무엇이 가능할지 계산하기 전에 마음을 먼저 따르기 때문에 ‘기쁨’을 상상할 수 있던 시절, <이프: 상상의 친구>는 그 시절의 감정을 복원하기 위해 애쓴다. 존 크러진스키 감독은 눈을 감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는 걸 넌지시, 가능한 한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해 갖은 방법을 궁리한다.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노력이 필요한 감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상상의 친구는 당신 곁에서 당신이 불러주길 기다리는 중이다. 스스로 솔직하고자 하는 용기와 함께 행복해지려는 당신의 노력을 응원하며.

<해리 포터> 시리즈의 배우 피오나 쇼가 전하는 <이프: 상상의 친구>의 진정한 마법

<킬링 이브>로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한 배우 피오나 쇼가 <이프: 상상의 친구>에서 비의 할머니 역을 맡아 극의 결정적인 순간을 책임진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냉담한 이모 페투니아 역을 맡았던 그녀는 “나는 이 영화가 <해리 포터> 같은 영화와 비슷한 구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작품의 매력을 설명했다. “한쪽에 현실이 있고, 그 옆에 마법이 있다. 진정 사랑스러운 순간들은 우리가 마법의 세계로 초대될 때 일어난다. 어린이들은 모든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줄 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 시절의 마법을 까먹곤 한다. 어른들은 기억을 떠올리는 데 익숙하지만 어린이는 기억을 만들어가는 법을 안다. 우리를 잊어버린 상상 속으로 안내할 한 꼬마 아이의 여정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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