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이 신지 감독의 13편의 필모그래피는 몇 단어로 요약하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실험과 예외성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논의의 범위를 소마이 감독의 1980년대 대표작들로 좁혀보자면 무시할 수 없는 공통분모를 여럿 발견한다. 특히 이러한 요소가 집대성된 <태풍클럽>을 시작으로 소마이의 작품 세계에 들어서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이른바 ‘소마이 스타일’을 느슨히 규정할 아래 다섯 키워드가 80년대 그의 행로를 개괄하는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롱테이크
우아하게 절제된 카메라워크로 대표되는 미조구치 겐지의 롱테이크에 비해 소마이 신지의 롱테이크는 더욱 거칠고 도발적인 움직임을 자주 보인다. 이는 후술할 특유의 디렉팅과 결부되어, 촬영 현장의 열기를 포착하고 “자신도 컨트롤할 수 없는 순간을 이끌어내기 위해”(영화평론가 후지이 진시) 구사한 실용적 수단이기도 하다. 이 스타일은 7분가량 이어지는 정교한 플랑세캉스 오프닝, 강가의 추격전을 트래킹하는 숏 등 고난도의 롱테이크로 가득한 <숀벤 라이더>(1983)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롱숏에 담긴 아이들의 몸짓은 매 순간 멈추고 머뭇거리다 다시 이어진다. 카메라는 때로는 구획된 공간을 적극적으로 연결하고, 때로는 공간의 주변을 열어젖히며 아이들이 프레임 안팎을 헤맬 수 있도록 허락한다. 즉 소마이의 롱테이크는 방향을 탐색하는 젊음의 변화무쌍한 운동성을 현상하려는 시도이며, 또한 “흘러넘치는 신체성으로 인해 공간이 생성, 변화하고 해방하는 과정”(영화평론가 히라사와 고)에 대한 관찰이다. 하지만 김병규 영화평론가의 지적처럼, 소마이 본인도 ‘과장된 방법론’이라 표현한 롱테이크는 “특정한 시기의 영화제작 환경에서 중점적으로 사용한 잠정적인 방법”임을 인식할 필요 또한 분명하다.
아이들
고등학교 1학년 남녀가 동거를 시작하는 첫 작품 <꿈꾸는 열다섯>(1980), 여고생이 쇠락한 야쿠자 집단의 두목으로 추대되는 히트작 <세일러복과 기관총>(1981), <숀벤 라이더>, <태풍클럽> 등에서 소마이는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그들만의 자치구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들을 선도할 어른의 부재 아래 청춘들이 방황하는 온실은 그 내부에서는 폭력과 섹슈얼리티의 설익은 욕망으로 터질 것 같으며, 외부에서는 도덕과 죽음이라는 성년기의 비가역적 신호가 창틀을 흔드는 극심한 불안과 혼란의 세계다. 특히 <태풍클럽>의 리에와 미카미, <세일러복과 기관총>의 이즈미 등 죽음의 긴장을 처음 마주하는 이들에게 성장은 고장과 퇴행의 과정, 곧 죽음의 과정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아이들은 동거가 끝나는 날에도 서로에게 “내일 봐”라고 인사할 수 있고(<꿈꾸는 열다섯>), 잠깐의 일탈 후에도 맑은 날의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태풍클럽>) 학생의 특권을 활용해 애써 고개를 돌린다. 몇몇 아이들은 첫 키스를 아저씨와 해버렸다고 웃으며 달관하거나(<세일러복과 기관총>), 성장의 과정을 기꺼이 중단한다(<태풍클럽>).
어른들
소마이의 청춘극에서 어른은 없다. 존재하더라도 규범적인 어른의 상과는 거리가 멀다. 부모의 존재는 아이들이 극복하고자 하는 부재의 음영으로서만 환기되고,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하거나 무력하다. 이런 측면에서 <세일러복과 기관총> <숀벤 라이더>로 대표되는 소마이의 야쿠자영화는 청소년이 어른 사회의 폭력성에 진입하는 여정보다는 야쿠자의 유아적이고 무감각한 내면이 “그 세계를 파괴하는 힘을 가진 해방적 존재”(영화연구자 안민화)를 통해 발각되는 과정에 가깝다. 한편 소마이가 연출한 유일한 로망 포르노인 <러브 호텔>(1985) 등 어른을 주인공으로 한 그의 영화들은 독자적인 문법과 서정성으로 생의 우울감에 대응하는 성인을 그린다. <러브 호텔> 속 어른들에게 섹스란 언어보다 즉물적이지만 동시에 어떠한 소통도 오갈 수 없는 공허한 매개물이다. 여전히 그곳에 롱테이크가 있지만 이전과 달리 인물들은 공간이 제안하는 경로와 행동에 예속된 인상이다. 이를 소마이적 소년성과 연결해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소마이의 어른들에게 자살이라는 주체적 선택이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디렉팅
배우와 대사 사이의 화학작용을 관찰하는 장시간의 리허설로 유명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연기 지도법은 사실 소마이가 원조 격이다. 소마이는 자신의 디렉팅에 대해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아닌 배우라는 인간 본연의 생리와 시간이 발현되는” 순간을 담는다고 표현한 바 있다. 배우 데라다 미노리는 인터뷰에서 “먼저 아무 설명 없이 배우가 마음대로 연기하도록 둔 후, 중간에 ‘이건 아냐’라고만 하다가, 끝에는 ‘쓰레기’라고도 말하며, 그렇게 자신이 만족할 만한 연기가 나올 때까지 끝없이 기다린다”고 소마이와의 작업기를 회고했다. 배우 야쿠시마루 히로코도 소마이가 “대사를 피상적으로 발화하는 것이 아닌 배우 자신의 육체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비일상적 경험을 체득할 때까지 반복하게 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소마이에게는 <세일러복과 기관총> 촬영 중간 의족을 벗고 두발로 서고 싶다는 데라다의 의견을 현장에서 채택하는 유연성도 있었다. 이렇듯 배우와 현장이 온전히 공명하는 순간의 에너지는 인물과 공간의 조응을 주시하는 롱테이크에 고스란히 현상된다.
디렉터스 컴퍼니
1980년대 초반 일본영화계는 스튜디오시스템의 쇠퇴와 함께 제작 환경의 급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청춘의 살인자>(1976), <태양을 훔친 사나이>(1979)의 감독 하세가와 가즈히코는 신진감독들의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위해 1982년 제작사 ‘디렉터스 컴퍼니’를 설립한다. 창립 당시 함께한 8명의 감독 중에는 닛카쓰 연출부 동기였던 소마이 신지와 더불어 <세일러복과 기관총>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구로사와 기요시, 학생 시절 8mm 단편영화로 이름을 얻은 펑크 스타일의 개척자 이시이 소고 등이 있다. 디렉터스 컴퍼니는 1992년 파산하기까지 닛카쓰와 가도카와 등 대형 영화사와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감독들이 더 큰 규모의 영화제작에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1980년대 일본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