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환상과 비관을 딛고 일어선 이야기, <입속 지느러미> 소설가 조예은
2024-07-19
글 : 이우빈
사진 : 백종헌

“어떻게 해야 피니에게 혀를 돌려줄 수 있을까?” 작곡가를 꿈꾸던 선형은 죽은 삼촌이 자신에게 남긴 비밀스러운 수족관을 찾고, 그곳에서 피니라는 인어를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피니에게 선형은 사랑보다 더 초월적인 감정을 느낀다. 과거의 우상이었던 경주가 자신과 자신의 음악을 배신하여 느낀 아픔마저 피니의 존재로 치유된다. 2016년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시프트>의 공모전 수상으로 돌연 등장한 조예은 작가는 “등단 이후에야 제대로 글쓰기를 배운” 문학 비전공자 출신이다. 이후 환상소설의 무드 아래에서 <칵테일, 러브, 좀비>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등 기괴하고 잔인하고 이상한 장르적 세계를 꾸준히 확장해오고 있다. 음습하고 어둡고 질척거리는 세계도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진창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이어간다. 독자의 상상력을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는 태도, 지리멸렬한 사족을 절단하듯 간결한 문체, 1년에 3~4편의 작품을 거뜬히 내놓고 있는 다작의 면모 역시 조예은 작가의 특질이다.

- 그간의 소설을 보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이 묻어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유혈 낭자한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고, <입속 지느러미>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의 O.S.T가 언급되기도 한다.

= 이야기라면 다 좋아한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 뭐든지. 시네필처럼 영화를 상세히 분석하고 뜯으며 보는 정도는 아니지만, 20살 재수생 시절에 <올드보이>를 보고 좋은 충격을 받은 뒤엔 꾸준히 극장을 찾는다. 영화는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해도 뭔가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웃음)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O.S.T는 한창 집필하던 중에 떠올리게 됐다. 음악 분야를 다루는 소설이기도 해서 이 세계의 분위기를 대략 짐작하게 할 멜로디 하나쯤은 필요할 것 같았다.

- 좋아하는 만화는. 아무래도 추리쪽일까.

=맞다. 초등학생~중학생 땐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를 엄청나게 좋아했다. <명탐정 코난>보다 잔인하고, 밀실이나 저택이나 무인도 같은 게 등장하는 편은 특히 무서웠다. 최근엔 <체인소맨>도 재밌게 봤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만화,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강철의 연금술사>다!

- 소설 안의 영화적 묘사가 눈에 띈다. 일례로 “선형은 땡볕 아래서 머리를 바라보았다”라는 <입속 지느러미>의 첫 문장은 다분히 영화적 시점숏의 구도가 상상된다. <스노볼 드라이브>에서도 주인공 모루가 공간의 풍경을 쳐다보는 묘사가 첫 문장이었다.

=시점숏이란 단어는 방금 처음 알았다. (웃음) 하지만 내 의도와 결은 같다. 독자들이 첫 문장에서부터 완전히 소설에 몰입하길 바란다. 아직은 주인공이 누군지 모를지라도 그의 시점을 정확히 제시하고 나면 독자들은 자연스레 인물의 상황에 이입하게 된다. 독자로서나 작가로서나 상상이 잘되는 이야기가 좋다. 대서사시나 판타지처럼 세밀한 설정을 하나하나 짜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대략적인 이미지와 분위기를 먼저 떠올린 뒤에 그것이 어떻게 하면 독자의 상상력을 강렬하게 자극할 수 있을지 우선시한다.

-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편이다. <입속 지느러미>의 피니에 대해서도 “적어도 시력이 있다면 그를 아름답지 않다고 여길 동물은 없으리라”는 문장이 있지만 정확한 외양 묘사는 없다. 다른 작품에서도 인물의 성별, 외모 등 이미지의 정보량을 의도적으로 빼는 듯한 경우가 더러 있다.

=소설 매체는 대개 독자의 상상력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 구체적인 묘사는 뺄 수 있을 만큼 빼려 한다. 피니는 콩깍지가 씐 선형의 눈에만 아름다웠을 수도 있다. 장 사장은 피니가 불쾌하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눈밭이 펼쳐졌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하면 상세한 언덕의 모양이나 눈이 쌓인 형태 같은 건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이상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낀다. 상상력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우며 적은 정보량의 문장을 써내고 싶다. - 집필할 때는 피니의 외양을 정해뒀을까.

=물론 내 머릿속엔 있었고 지금 밝힐 순 있다. 외계인 그레이를 생각했다. 전신이 은빛으로 엄청 미끄럽고 반짝반짝한데 눈이 아주 크고 까만 그 외계인이다. 독자들의 생각엔 그리 아름다운 외향이 아닐 것 같긴 하지만···. (웃음)

- <입속 지느러미>엔 인어와의 만남이란 환상성도 있지만, 신인 창작자가 저작권을 탈취당하는 사회파 소설의 요소도 엮여 있다. 어떻게 떠올린 구성인가.

=이루어진 꿈이 아니라 ‘망한 꿈’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던 게 첫 발상이었다. 이에 맞는 소재를 찾다 보니 음악을 택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곳에 음악 저작권 강탈 사례가 나오기도 했고, 대형 기획사에 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여러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그러곤 음악 소재에 맞춰서 세이렌 설정을 참고한 인어를 등장시키게 됐다. 선형은 음악에 대한 감각도 있고 자기 믿음도 있는 친구다. 그러나 능력이 있어도 기성세대의 울타리나 여러 사회적 장애물은 선형과 같은 창작자를 포함해 대개의 청년이 무너지도록 만든다. 이 무너짐이야말로 인어의 존재 같은 환상소설의 요소만큼 무서운 것이라고 느꼈다.

- 평소의 음악적 취향도 궁금해지던데. 선형의 원곡 <산호초>가 아이돌 그룹의 <크루즈 러브>가 되면서 “시끄러운 전자음과 솜사탕처럼 가볍고 산뜻한 목소리는 육체를 지배하고 휘두르지 못했다”라는 묘사가 있다.

=작가에 대한 환상을 깨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난 정말 보통의 ‘멜론 톱100 귀’다. (웃음) 잘 정제되어 나온 인기 음악들을 즐겨 듣는 편이다. 그래서 <입속 지느러미>를 준비하면서 친구들에게 각종 전자음악의 장르라거나 실제 기획사 A&R의 업무, 저작권 문제에 대한 핍진성을 취재하기도 했다.

- <산호초>라는 제목의 의미는. 최근 뉴진스 하니가 불러 화제가 된 <푸른 산호초>와 겹치는 시의적절한 작명 같았다.

=나도 신기했다! 그런 노래가 있는지 몰랐다.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서 하얗게 굳은 산호초의 이미지를 봤던 게 떠올랐고, 아름다우며 기괴한 소설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다. 하니님은 너무 노래도 잘하시고··· 많이 좋아한다.

- 불쾌함을 자아내는 시각, 후각, 촉각, 청각 묘사를 주로 쓴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에선 달콤한 젤리마저 끈적끈적하고 끔찍한 것으로 묘사됐는데, <입속 지느러미>에선 지하실 속 악취와 각종 생물의 미끈거리는 불쾌감이 크게 강조된다.

=작품의 분위기 위주로 서술하고 상상의 여지를 듬뿍 열어뒀다면 이후 맞이해야 할 순서다. 독자가 어느 정도 세계에 몰입한 뒤에 아주 자세한 감각 묘사가 들어가면 상상이 더욱더 생생해질 수 있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 같기도 하다. <미드소마> 같은 작품에서 사람의 머리가 부서지는 이미지를 수용하기 힘들어하는 관객이 꽤 있다. 단순히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넘어 작품에서 튕겨나오기도 한다. 반면에 소설은 자신의 상상을 한번 거치다 보니 제아무리 끔찍한 상황이어도 저항감이 덜하다. 잔인한 영화는 못 봐도 내 소설의 잔인한 부분은 재밌게 봤단 독자 평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악취미다.

- 표현 방식에서 드러나는 고유의 작법이 또 떠오른다. 다소 일반적인 감정과 일반적인 신체적 증상을 이상하게 합치는 방법이다. 예컨대 <초대>에서 주인공이 가정으로부터 받은 억압을 목에 걸린 가시로 표현한다거나, <입속 지느러미>에서 선형이 경주에게 느낀 배신감을 “상한 고기처럼 시큼하고 미끌거리는 역한 맛”으로 표현했다.

=적극적으로 애용하는 방법이다. 내가 쓰는 소설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환상성이 가미돼 있는 것들이다. 그럴수록 감정이나 감촉 같은 요소를 묘사할 때는 너무 낯설지 않고,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는 표현을 골라야 적절한 균형감을 챙길 수 있다. 그래서 너무 비현실적인 성질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생활에서 감각하거나 느낀 것들을 조합해서 넣으려 한다.

- 그렇다면 실제로 회를 싫어하는 걸까. <입속 지느러미>의 경주, <초대>의 채원 등 회의 식감이 고무 같다며 다들 싫어하던데.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웃음) 그런데 이모가 하셨던 횟집에서 어릴 적 처음 회를 먹을 땐 ‘이런 걸 왜 먹지’ 싶었다. 너무 두껍게 썰린 회여서 식감이 역했다. 그렇게 예전 경험을 기반으로 ‘그때의 식감이 더 극악으로 치닫는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이어가며 표현 방식을 찾는 거다. 불쾌한 감각 묘사에 대해 다른 작품의 레퍼런스를 찾는다거나 하진 않고, 이처럼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영감을 기반으로 한다.

- <입속 지느러미>를 포함해서 그간의 소설을 보면 비관주의적 낙관을 지향하는 것 같단 느낌이 든다. 아주 견고할 정도로 비관적인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든 사랑하고 저항하는 이들을 그린다. 그 결말은 희망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일견 허무할 정도로 마무리되는 느낌도 있다.

=난 비관적인 사람이 맞다. 내가 보고 그리는 세상의 인물들은 단지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고, 큰 기대가 없는 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는 쪽이다. 물론 현실엔 세계의 흐름에 열렬히 반발하려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움직임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난 어떤 사건의 해결이나 실패가 명확히 결론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말의 이야기도 최대한 생략한다. 퇴고하며 늘어난 부분들은 탈고할 때 결국 모두 줄여진다. 작가로서 무책임한 태도일 수도 있겠지만, <스노볼 드라이브>의 마지막처럼 그저 인물들이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멈추고 싶다. 세계 자체가 변하지 않더라도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엔 있다.

“그것은 피비린내를 머금고 부활한 선형의 꿈이었다. 영원히 떠돌고 싶은 꿈이었다. 하지만 꿈이란 언젠가 깨어난다는 의미로 정의되기도 했다.”(<입속 지느러미>, 122쪽)

글쓰기에 몰입하기 직전에 내가 하는 일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다른 작가들의 책을 30분에서 1시간쯤 읽는다. 내가 글을 쓰기 전 글자에 몰입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두는 일이다. 날씨가 좋으면 책을 읽기 전 바깥을 거닐며 잡생각을 없애기도 한다. 글쓰기 전까지의 준비 시간이 꽤 긴 편이다.”

글 외에 내게 영감을 주는 존재는? “날씨나 자연의 상태. 날이 마냥 화창하고 좋으면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행을 갔는데 장마가 몰아친다거나 예외적인 폭설이 내린다거나 하는 이상기후를 직접 겪을 때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 날씨의 이질감과 괴리감에서 여러 감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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