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유명을 달리한 어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MBC 라디오 전파를 타고 다시 흘러나왔다. 지난 8월2일 금요일 저녁의 일이다. 과거 방송분을 편집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 청취자들의 사연을 읽으며 화답하는 목소리였다. 1992년 11월2일 문을 열어 90년대에 점화한 한국 영화문화의 상징적 아지트로 각인된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가 되살아난 것이다. 2004년 작고한 정은임 아나운서의 20주기에 기해 AI로 목소리를 재현한 특집 프로그램은 그 시절 ‘정든 님’과 작은 부스 안에서 세계의 영화를 논했던 박찬욱 감독, 정성일 평론가 등의 회고 속에서 찬찬히 온기로 물들어갔다. 여기,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재생되고 있는 어느 영화음악 방송 DJ의 목소리를 되돌아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그동안 그를 잊지 않은 사람들, 나아가 여름날의 재회를 야심차게 기획한 방송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배우 전도연이 “영화를 꼭 해보고 싶다”고 고백하고, 박찬욱 감독이 “사실은 영화감독이기도 한 영화평론가”로 소개되는 프로그램.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 생생한 지글거림과 함께 들을 수 있는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이하 <정영음>)는 여전히 녹슬지 않는 낭만 속에서 재생된다. 입사 4개월차 아나운서가 처음 정식으로 맡은 라디오 프로인 <정영음>은 1992년 11월2일 <트루 로맨스>의 O.S.T
이후 20년. 작고한 방송국 아나운서와 그가 진행한 도합 3년 남짓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이토록 오래 기억된다는 건 평범한 현상이 아니다. 아직 <정영음>을 말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한다기보다 그 안에 담긴 최후의 정서를 지켜내려 애쓴다. 그리고 지금 <정영음>을 새롭게 듣는 사람들은 겪어본 적 없는 시대의 노스탤지어를 복각해내는 이 방송의 희귀성을 알아본다. 어느 쪽이든 MBC 라디오국이 준비한 <고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방송-여름날의 재회>를 응원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 같다. 무언가 기어코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에는 순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정은임 아나운서, 영화음악 라디오, 그리고 이들을 사랑한 영화 팬들에게 제작진이 보내는 메시지만 보아도 그렇다. “20년 동안의 러브레터에 한번쯤은 꼭 답신을 띄우고 싶었다.” 그렇게 지난 8월2일 저녁 6시부터 2시간. 전임 <FM 영화음악> DJ 한예리 배우가 진행하는 라디오 다큐멘터리(1부)와 AI 기술로 구현한 정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새로운 <정영음>(2부)이 전파를 탔다. 그리고 밤 11시부터는 7월7일 부천아트센터에서 먼저 열린 공개방송 행사의 축약본도 송출됐다. 총 3시간 동안 20년 전 마지막 방송을 마친 아나운서와의 ‘여름날의 재회’가 마련된 것이다. 공개방송 예고 후 사전에 메일과 게시판으로 접수된 온라인 사연만 수백통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우리는 다시 되짚어야 한다. 도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그리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기에?
지금 돌아보건대 <정영음>은 한국영화 팬덤의 시작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키노>와 <씨네21>이 생기기도 전인 1990년대 초반에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는 영화 교양을 전달하는 지속적이고 진지한 대중매체로서 사실상 유일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라디오 방송의 소구력, 영화 콘텐츠의 희소성이라는 시대적 필연이 <정영음>을 지금의 자리에 위치시켰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인기의 근원은 아지트를 지키는 특별한 주인이었다. 특집방송을 총괄한 장수연 프로듀서는 말한다. “기억하려고 애쓰는 게 무엇인지, 누구를 추모하는지가 그 집단과 사회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새벽의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에 주어진 틈새의 자유도에 발딛고 도전 정신을 발휘한 <정영음> 제작진은 시대의 부조리를 논하는 정치적 발언도 영화의 앞뒤에 덧붙이곤 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향한 존경은 그가 당대 사회의 방향성을 고민하면서 보여준 태도, 그리고 올바름에도 기인한다. 한편 이번 특집방송의 첫 깃대를 꼽은 김세윤 작가는 정 아나운서를 “방송인 정은임, 영화인 정은임, 자연인 정은임이라는 여러 겹에서 모두 남다른 매력을 갖추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수식한다. 그는 완성형의 진행자가 아니라 설렘과 떨림, 긴장과 결기, 흥분과 동요를 종종 숨기지 못하는(않는) 영화의 친구였다. <정영음>의 신화를 “평범했던 아나운서가 영화에 미쳐가는 과정”에서 찾은 신영희 작가(시즌1)의 말을 박찬욱 감독의 설명도 뒷받침한다. 얼마 전 파주로 라디오국 제작진을 초대한 박찬욱 감독은 고정 게스트로 출연한 평론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 독대한 정은임을 “정말 공부하는 사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적시에 정확한 반응을 던지는 사람”으로 회상한다. 정성일 평론가는 정은임을 잊지 못할 적수로 추억한다. 신입 아나운서와의 첫만남에 앞으로 “이 사람 애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던 그는 얼마 후 “갑자기 반격을 할지도 모르는 긴장감이 떠도는 스튜디오 안에서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 사람을 설득하고 싶다”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
정은임의 존재감이 지속될 수 있던 데에는 물론 그의 목소리가 물리적으로 보존된 영향도 크다. 우리는 지금도 모바일 팟캐스트 앱 등을 통해 1992년 첫 방송부터 2004년 마지막 방송까지 모든 회차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방송 당시 하루도 빠짐없이 딸의 목소리를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했던 아버지 덕분이다. 이 카세트테이프를 어느 애청자가 일일이 파일로 변환해 온라인에 아카이빙함으로써, 정은임의 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이들조차 <정영음> 속 정은임의 목소리에 젖어들게 된 것이다. 이에 MBC 라디오국은 20년 이상 프로그램을 진행해 공헌도가 큰 DJ에 수여하는 골든마우스상을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위해 ‘명예’ 골든마우스상으로 바꾸어 시상했다. 방송 종료 후에도 지난 20년 동안 <정영음>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회자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야쿠쇼 고지) 같은 꾸준함으로 딸의 방송을 밤마다 녹음”(김세윤 작가)했던 아버지가 지난 공개방송 때 정은임 아나운서 대신 무대에 올라 상패를 건네받았다.
남겨진 녹음본을 몇번이고 반복해 들으면서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세세히 기억하는 애청자층이 있기에, AI 구현 방송은 더더욱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가수 김광석, 김현식, 유재하 등의 목소리를 복원해낸 바 있는 음성 AI 기술 업체 슈퍼톤이 라디오국과 협업했다. 제작진은 음성을 학습한 AI가 직접 입력된 텍스트를 읽는 TTS 방식이 아니라, 대역이 1차로 녹음한 뒤 이를 실존 인물의 음성으로 변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최초의 시도는 AI 프로젝트를 허가받기 위해 연락을 취한 정은임 아나운서 여동생의 협조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음색, 음고(音高) 등이 비슷해 제작진을 열띠게 했지만 이내 목소리의 유사성만큼 라디오 DJ다운 방송인의 직업적 역량이 중요함도 자각했다. 아나운서 출신의 방송인, 성대모사에 능한 코미디언 등과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낙점된 최종 주역은 남유정 성우다. 풋풋함이 묻어나는 1990년대 방송과 베테랑의 여유가 깃든 2000년대 방송 버전의 차이를 연구해 재현할 정도로 열정적이던 남 성우가 방송의 마지막 멘트를 녹음하고 눈물을 터뜨렸을 때, 제작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더”를 주문했다. 성우가 울먹이는 동안 비음이 짙어진 음색이 더 정은임 아나운서 같아졌기 때문이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2004년 복귀 방송 5개월차에 <씨네21>에 남긴 인터뷰에는 차가우리만치 객관적인 자기평가가 담겨 있다. “(옛 방송) 멘트들은 이제 와서 보면 좀 우스울 때가 있다. 그때만 해도 지식이 독점되던 시기라서 별거 아닌 것도 굉장히 포장해서 얘기하거나, 민족주의나 유치한 애국주의적인 멘트도 많았고. 당시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참 감성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훨씬 이성적이 됐다.” 이 시기 정은임은 MBC 노조 여성부장, 사내 여성들을 위한 탁아소 건립 문제에 발벗고 나섰다. “요즘은 내가 예전보다 훨씬 과격해졌다고 느낀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 그러니까 우리말로 ‘여는 시’를 읊으며 2004년 마지막 방송의 안녕을 고한 정은임 아나운서가 어제보다 더 과격하게 싸워갈 내일을 꿈꾸는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익숙한 오프닝 시그널 음악을 또다시 재생하면서, 정든 님과 마주했던 영화인들의 완연한 현재를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