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러브레터에 회신하는 마음으로, <고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방송-여름날의 재회> 만든 장수연, 양지안 PD·김세윤, 이윤용 작가
2024-08-16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양지안 PD, 장수연 PD, 이윤용 작가, 김세윤 작가(왼쪽부터).

-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방송 기획의 첫 출발점은.

장수연 어느 날 편집기 앞에 앉아 있는데 김세윤 작가가 다가와서 올해가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처음엔 MBC 내 골든마우스 홀에 과거의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이하 <정영음>) 애청자들을 초대해 오랜만에 서로 얼굴을 확인하는 자리 정도로 구상했다. 그런데 라디오국 차원에서 어느새 특별 프로그램이 배정됐고, 동시대와 호흡하면서 주목도를 높이는 기획으로 돌아가신 분의 목소리를 AI로 복원해보자는 의견까지 다다랐다.

김세윤 “올해가 20주기인데 뭔가 하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처음 얘길 꺼낸 건 나인데, 그 실체가 없는 ‘뭔가’를 지금의 특집으로 기획한 건 장수연 PD와 MBC 라디오국이다. 세부 구성에는 이윤용 작가(MBC <지금은 라디오 시대> 메인 작가)의 역할이 컸다. 특히 공개방송 경험이 없는 내가 삽질하고 있을 때 기가 막히게 방향성을 잡아주었다. 양지안 PD와 박소영 작가는 선배들이 특집을 요리할 수 있게 온갖 재료 손질은 물론 SNS 홍보도 추가로 전담했다. 240석 규모의 공개방송 홀에 쏟아진 수백통의 신청 사연을 선별해 오버부킹 없이 좌석수대로 딱 맞춰 뽑은 뒤에 연락하는 것도 두 사람의 몫이었다.

- 라디오로 다큐멘터리 콘텐츠를 꾸렸다. 박찬욱 감독, 류승완 감독, 정성일 평론가, 손석희 전 MBC 아나운서국 국장, 시즌1을 연출한 홍동식 PD와 신영희 작가 등 쟁쟁한 인물들의 섭외 과정은 어땠나.

장수연 준비하다 보니 귀한 인터뷰가 많이 모인 터라 라디오 다큐멘터리로만 제작하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낯선 옛 골목을 산책하면서 라디오를 한번 들어보면 그전에 안 보이던 풍경도 보이지 않을까 기대한다. 여러 산책자 중에 눈 밝은 제작자가 있어 정은임 아나운서의 이야기가 멋진 다큐멘터리영화로도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희망도 가져본다. 이런 이야기를 손석희 선배에게 했더니 “아마 은임이는 라디오에서 남겨주는 걸 더 좋아할 거다” 하시더라. 제작 기간 동안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말을 붙잡았다.

김세윤 섭외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게 진짜 놀라운 지점이었다.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방송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어떻게든 시간을 내려고 노력했다. 첫 인터뷰를 박찬욱 감독님으로 시작했다. 박 감독님은 <헤어질 결심> 때도 새벽 2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지금까지도 라디오에 출연하는 이유로 <정영음>의 기억을 꼽았다. “그때 그 말씀 책임지시라”는 뜻으로 부탁드렸다. (웃음) 박 감독님을 시작으로 과거에 <정영음>에 출연한 분들, 혹은 어쩐지 그 시절에 <정영음>의 동지였을 법한 분들에게 문의했다. 문제는 1992년 시작한 방송을 담당한 신영희 작가였다. 도무지 연락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스타그램을 통해 수배령을 내렸는데, 의외로 해결사가 가까이 있었다. 우리의 포스팅을 보고 영화사 진진의 김난숙 대표님이 곧장 전화가 와서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는 거다. “말을 하지~! 언니 지금 프랑스 가 있는데 내가 연락해볼게.” 그렇게 파리 출장 중인 신영희 작가에게 연락이 닿았다.

- 주변인들의 회고를 통해 정은임이라는 인물의 초상이 재구성됐다. 방송을 만든 제작진에 각인된 정은임 아나운서의 특별한 면모가 있다면.

김세윤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그가 처음에는 영화를 잘 몰랐다고. 그런데 정은임 아나운서는 집요하고 학구열이 엄청난 사람이었다. 홍동식 PD의 표현을 빌리면 <정영음>을 맡아 영화인들을 만나면서 “약이 오른” 셈이다. 그때부터 자극받아 미친듯이 영화를 찾아 봤다는 스토리가 참 좋다. 라디오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애초에 라디오 DJ가 되고 싶어서 아나운서가 된 건 아닐 텐데, 입사 4개월차에 덜컥 방송을 맡아서 급속도로 전쟁 같은 사랑에 빠져들었다. 1995년의 마지막 방송과 2004년의 마지막 방송을 그동안 여러 번 들었는데 그때마다 그가 영화만큼 라디오도 깊이 사랑했음이 느껴진다. 말하자면 정은임 아나운서가 우리에게 들려준 건 설교가 아니라 간증이 아닐까? 진화 과정을 함께한 청취자들도 바로 그런 생명력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에 더더욱 방송에 몰입할 수 있었다.

장수연 나는 그의 자존심이 엿보이는 부분이 좋았다. 1995년에 방송이 종영되고 2003년에 복귀하기 전에, 실은 한번 더 돌아올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는데 본인이 사양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홍동식 국장이 따로 전해준 비하인드도 인상적이었다. 1995년에 방송을 그만둔 이유가 알고 보니 본인의 뜻이더라. 담당 PD가 먼저 바뀌었는데 후임 PD가 <정영음>의 분위기와 방향성을 보다 대중 친화적으로 바꿔보려 했던 것 같다. 같은 PD로서 이해가 되는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은임 아나운서는 방송 고유의 색채가 바뀐다면 자신이 그만두는 게 맞다고 판단하고 물러났다. <FM 영화음악>이 곧 정은임이고, 정은임이 곧 <FM 영화음악>이던 시절에 그토록 과감히 내려놓는 용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는 어쩌면 청취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은 아닐 수 있다. 진행자가 자의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섭섭할 수도 있지 않겠나. 고민이 되어 구성회의 때 작가들과 많이 상의했는데, 오히려 이런 에피소드가 정은임 아나운서다운 입체적 면모를 잘 보여줄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양지안 나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과거를 회고하는 출연자들과 청취자들의 사연 속에서 공통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건 정은임 아나운서의 방송이 영화 정보 이상으로 청취자들에게 삶의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나처럼 당대에 방송을 직접 들은 적이 없는 사람까지도 이렇게 생생하게 그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이윤용 리버 피닉스의 작품을 두고 정성일 평론가와 주거니 받거니 한 에피소드도 아름답다. <아이다호>가 정말 훌륭하다고 하니까 정성일 평론가가 그렇지만 <드럭스토어 카우보이>가 더 뛰어나다고 응수하는데, 3주 뒤 방송에서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를 보고 온 정은임 아나운서가 “<아이다호>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냥 서로 좋게 호응하고 말 수도 있었을 텐데 끝까지 진지하게 자기 입장을 고수하면서 견주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한편 귀엽기까지 했다.

김세윤 그러니까. 둘이 똑같은 사람이야! (웃음)

- 각자의 영화 정전을 설정하고 작품 평가에도 물러섬이 없는 대화랄까. 그러고 보니 요즘엔 대중 방송에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대화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장수연 맞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인터뷰를 참 잘했다. 나도 요즘 인터뷰어가 필요 이상으로 저자세인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사회적 분위기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거의 정은임 아나운서 인터뷰는 그렇지 않았다. 상대방을 긴장하게 만드는 멘트를 툭툭 던진다. 결코 작가가 원고에 써줄 수 없는 말들이다. 그 팽팽함이 참 좋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최동훈 감독이 출연했을 때 “이런 영화 안 만들게 생기신 분”이라며 “진짜 감독님은 어떤 분이세요?” 하고 묻는 식이었다.

김세윤 그런 질문도 서슴없이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자신감을 바탕에 깔고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이다.

- 2부 AI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동안 작고한 가수의 목소리로 3~4분 분량의 노래를 재현한 경우는 있어도 1시간짜리 방송을 만든 사례는 없었다. 제작 과정이 만만찮았겠다.

김세윤 AI 재현이라는 시도가 청취자들에게서 좋은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라고 생각했다. 지난 20년 동안 방송을 계속 듣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정작 새 방송을 들을 수는 없었으니 20주기에라도 한번쯤 선물 같은 답장을 하고 싶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떠올렸다.

장수연 정은임 아나운서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진 분이 굉장히 많은데 혹여 AI 재현이 추억을 훼손하지는 않을지, 작업하는 내내 극도의 걱정과 긴장 속에서 살았다. 음성 AI 기업 슈퍼톤과 협업했는데, 방송 마지막 날 밤까지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느라 그분들은 이제 방송국 놈들 징글징글할 거다. (웃음) 한창 편집하면서 밤새 괴로워할 때, 옆에 있는 양지안 PD가 큰 힘이 됐다. “안 비슷하지 않아?” 물으면 기막히게 다독여주는 멘트를 해주더라. 기술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건 기술 박람회에서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 우리는 정은임 아나운서의 서사를 기억하면서 원고를 쓰고 정서를 나누기 위해 기술을 활용 중인 거라고. 김세윤 작가가 “하나도 안 비슷하다. 김은임 아나운서 아니냐”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면 양지안 PD가 소화기로 꺼줬다.

김세윤 난 지금도 안 비슷하다고 생각해! (웃음)

장수연 슈퍼톤의 프레젠테이션 당시만 해도 쉬울 줄 알았다. 문제는 똑같은 1시간 방송을 구현하더라도 톤이 일정한 뉴스 방송을 만드는 것과 라디오 방송을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란 점이었다. 라디오 DJ의 영역은 한마디로 감정이 실린 대화에 가깝다. 정은임의 목소리를 정은임답게 해주는 것은 오히려 그가 말하지 않는 순간에, 침묵과 호흡의 순간에 있었던 것이다. 약간의 떨림, 특유의 비음 같은 아주 작은 디테일이 핵심이었다. 남유정 성우가 대본을 읽고 이를 슈퍼톤 녹음실에서 하나하나 바로잡으며 다듬기까지, 어느 시점부터는 현재 가능한 기술 수준과 목표치 사이의 괴리를 인정해야만 했다. 받아들이되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현시점에서의 AI 음성 기술이란 게, 방송 시간이 길어지면 최초의 설정값이 슬슬 흐트러지는 현상이 생긴다. 실시간 댓글로 살펴본 시청자들 평가도 갈렸다. 눈물 날 것 같다, 고맙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고인의 자취를 그대로 보존해야지 왜 이런 시도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도 계셨다. AI 기술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도 있었고 마치 신문방송학과 수업처럼 댓글창에서 잠깐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세윤 그러니까 중간에 귀로 듣는 영화를 넣은 건 기술적인 선택이었다. 1시간 내내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고 답하는 구성으로는 완성도 유지가 어려워 영화 한편을 소개하기로 했는데,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가 딱이었다. 20년 만에 <정영음>을 찾아 듣는 여러분이 바로 테오도르였으니까.

- 김세윤 작가는 <필름 2.0> 영화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2003년 복귀를 앞둔 정은임 아나운서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번 특집방송을 마친 소회가 어떤가.

김세윤 정말로 금방 다시 만날 줄 알았다. 우리는 같은 영화판에 있으니 다음에 얼마든지 쉽게 영화 시사회 같은 곳에서 또 만날 거라고. 그런데 그게 장례식이 될 줄은 몰랐다. <정영음>을 말할 때 대부분 1990년대 방송을 많이 떠올리지만, 나는 2003년 재개된 방송분에 더 애정이 간다. 6개월밖에는 지속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아까울 정도다. 정은임 아나운서 스스로도 1990년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명확한 현실 인식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간 방송이다. 1995년 마지막 방송 때 ‘정은임의 내 인생의 영화’ 5편을 소개했는데 2000년대에 정은임 아나운서를 만났을 때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했다. 어느새 아이를 낳은 엄마가 되고 나니 영화도 달리 보인다는 말이었다. 그 무렵 일을 하러 나와야 해서 아이를 돌보미 선생님께 맡기고 나온 상황이었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고용주의 입장이 되어보니 자신이 과거 방송에서 얼마나 편하게 노동자 이야기를 했는지 실감하면서 이제와 더 큰 무게를 느낀다고도 했다. 멀쩡하던 아나운서가 영화에 미쳐가는 과정이 1990년대 방송에 담겨 있다면, 2000년대 방송은- 지속되기만 했다면- 정은임 아나운서가 중년의 인생에서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을 담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걸 계속 들을 수 있었다면 우린 얼마나 좋았을까?

동시대의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7월7일 저녁,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고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 공개 방송. 전 DJ 정은채 배우, 변영주·김태용·김초희 감독(왼쪽부터).

<고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방송-여름날의 재회> 특집방송의 3부는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간 중 열린 공개방송의 축약본이었다. 제작진에 따르면 240석 규모 객석의 3분의 1 정도가 1990년대생,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출생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어느 2003년생 신청자는 독립영화 <경복>을 보다가 정은임 아나운서에 대한 언급을 듣고 <정영음>에 입문했다는 비화도 들려주었다. 특집방송 투혼의 여파로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한 막내 박소영 작가 또한 이번 특집을 통해 정은임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서면으로 소회를 전한 박 작가는 한 또래 청취자의 사연을 인용했다. “경험하지 못했던 90년대, 희미한 기억이 전부인 2000년대 초반의 라디오를 <정영음> 덕분에 느낄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정은임 아나운서와 그의 오랜 동료들이 남긴 목소리는 동시대에도 여전히 낭랑하다. 모바일 앱으로 라디오의 물질성이 대체된 지금에서도 영화의 세대, 영화의 친구는 끈질기게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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