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마음의 문을 열어도 될까요?, <고물상 미란이> 임세미 배우, 송정미 작가, 윤소일 감독
2024-09-17
글 : 정재현
사진 : 백종헌

※ 고물상은 고물을 사고파는 장수, 고물을 사고파는 가게 모두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본 기사에서는 구분을 위해 고물을 사고파는 장수를 고물상으로, 고물을 사고파는 가게는 고물가게로 표기합니다. 송정미 작가는 본인 요청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닥터 차정숙> 등등 주인공의 직업 세계가 서사에 유독 각별한 시리즈는 제목에 주인공의 이름과 직업을 동시에 내세운다. <고물상 미란이>도 미란(임세미)의 직업이 고물상인 점이 중요하다.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미란은 쓰임이 다한 물건이 버려지고 소각되지 않고 다시 쓰이는 고물이 좋아 고물상으로 산다. 미란의 고물가게엔 매일 공병 하나씩 팔러 오는 단골 고객 진구(이시우)가 있다. 공병을 모아서 한번에 오라는 미란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진구는 굳이 공병 하나씩을 들고 매일 고물가게를 찾는다. 어느 날 미란의 고물가게에 누군가 강아지 한 마리를 두고 사라진다. 미란은 진구와 함께 강아지의 주인을 찾으러 길을 나선다. 이 강아지만은 자기처럼 유기됐다는 상처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윤소일, 임세미(왼쪽부터)

- 주인공의 직업이 고물상인 작품은 처음이다. 이 직업을 어떻게 떠올렸나.

송정미 시골 출신이라 어린 시절부터 고물가게를 운영하는 분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다. 그래서 고물상이 특이한 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고물상이란 직업은 메타포에 가깝다. 버려진 여자의 이야기를 쓰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윤소일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가 고물가게를 운영하셔서 고물상이 친숙하다. 대학생 때 고물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고. 로케이션 헌팅을 하며 직업에 대한 취재도 거쳤는데, 취재원이 된 고물상 선생님이 일이 힘들다는 얘기보다 일에 대한 자부심을 많이 들려주었다. 촬영 현장에도 함께 출근하며 고증을 맞춰주셨다.

송정미 사실 <고물상 미란이>엔 나의 연애사가 일부 들어가 있다. 작품을 본 친구들이 “미란이는 딱 너”라더라. (웃음) 살면서 처음 쓴 대본이다 보니 정말 진실된 이야기, 땅에 붙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사적으로 나눈 말들도 대사에 남겨두었다.

- 미란은 남들의 대사로 줄곧 정의된다. “한천 바닥에 쟤를 건드릴 사내가 없다”거나 “미란이 걔는 곁을 안 줘”와 같은 말들 말이다. 그런데 작품을 다 보고 나면 미란의 강한 모습은 그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두른 갑옷임을 알 수 있다.

임세미 미란이 진구를 만나고 란구(강아지)의 주인을 찾아다니는 여정 속에 마음의 빗장이 풀어지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보여야 했고, 그사이에 미란의 아픔도 조금씩 흘러나와야 했다. 그래서 감독님과 대화를 자주 나눴다. 감독님에게 “미란이가 지금은 마음의 문을 열어도 될까요?”라고 물을 때마다 더 단단하게 싸매고 있어도 된다는 디렉션을 받았다. 감독님도 나도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이 이야기를 함께 믿고, 따뜻하게 여길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갔다.

- 미란이 사무실이라 부르는 고물가게의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미란이 이 공간을 어떻게 가꿔왔을지 절로 상상하게 될 정도로 묘사가 디테일하다.

윤소일 작가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작가님이 자연 속 외딴 성채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서 로케이션 헌팅을 열심히 또 꼼꼼히 다녔다. 겉으론 퉁명스럽고 차갑지만 자기만의 공간에선 누구보다 여리고 사랑받길 원하는 미란의 마음이 담겼으면 했다.

임세미 촬영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이 있다. 대본을 읽을 땐 투박한 미란을 생각했는데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현장에 가니 미란이가 정말 사랑을 원하는 친구라는 걸 알게 됐다.

윤소일 임세미 배우가 유기동물 보호소 봉사 경험도 많고 동물권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나. 후반부 강아지 공장 장면 세트에도 필요한 의견을 많이 개진해주었다. 강아지 배우와 어린이 배우의 컨디션을 가장 많이 신경 쓴 사람도 임세미 배우다.

임세미 감사하게도 번식장의 뜬장을 강아지 배우들이 불안을 느끼지 않는 형태로 지어주셨다. 덕분에 세트에 갇힌 강아지 배우들이 울적한 연기를 할 새 없이 연신 꼬리를 흔들며 즐거워했다. (웃음)

- <고물상 미란이>는 미란의 궤적을 시청자가 함께 따라가는 이야기다. 각자가 생각하는 미란은 어떤 캐릭터인가.

임세미 상처를 받는 메커니즘에 관해 생각해봤다. 결국 상처는 받고 싶어 받는 게 아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도 상처를 입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오해가 쌓이면 소통 없이 스스로 내린 결론 때문에 상처받고 또 상처를 준다. 미란이 자신을 보육원에 맡기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처럼 말이다. 그런데 미란은 상처 속에서 부단히 잘 지내려 노력한다. 미란으로 사는 동안 미란이가 굉장히 사랑스러운 사람이란 걸 느꼈다. 자신이 쌓은 성벽에서 벗어나 사람과 소통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친구를 연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선물 같았다.

송정미 혼자서 씩씩하게 모든 걸 해내려다 정작 자신의 마음은 돌보지 못하는 사람을 그려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고 믿었다.

윤소일 미란이 바닷가에서 진구에게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전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임세미 배우의 담담한 어조와 눈빛, 대사 사이에 둔 휴지 모두 최고였다. 그 신에 가장 미란이다운 순간이 담겼다. 이전까지의 미란은 말을 할 때보다 침묵할 때 진심이 드러나는 사람인데, 그 신을 기점으로 과거의 상처에 가로막혔던 10살 소녀가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고 느꼈다.

작업 시 나의 필수템

송정미 공책. 다만 공책은 무얼 쓰기 위해 필요하다기보다 계속 뜯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다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공책에 그림 그리듯 적는다.

윤소일 커피와 담배. 나를 다잡게 만든다.

나를 자극한 다른 작품

윤소일 훌륭하지만 연기하기 까다로운 대사가 등장하는 작품을 볼 때마다 작가와 감독, 배우 모두에게 경외를 느낀다. <헤어질 결심>의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나의 해방일지>의 “날 추앙해요” 같은 장면이 그렇다. 뺏고 싶은 재능이다.

송정미 <고맙습니다> <동백꽃 필 무렵> 등 공효진 배우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 언젠가 공진 효배우가 “항상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라는 말을 했는데 깊이 공감한다. 사람들이 응원하고 싶고, 마음을 쓰게 만드는 캐릭터가 시리즈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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