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시공간을 넘어 진실의 단면을 전달하는 좋은 통로다. 9월에 열리는 제13회 스웨덴영화제 개막작 <아브델>은 이민 2세, 3세들로 확장 중인 스웨덴 사회의 첨예한 이슈를 서늘하게 파고드는 사회 드라마다. 12살 소년 아브델이 겪는 인종차별과 폭력에 노출되는 과정은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나 단순한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수의사를 꿈꾸는 소년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싶지만 주변 환경은 소년을 갱단의 전쟁 한가운데로 끌고 간다. 페테르 폰티키스 감독은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본인이 직접 겪은 문제를 두 번째 장편영화 속에 입체적으로 녹여냈다. 상황보다 사람에 주목하는 페테르 폰티키스 감독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대신 인물들이 어떤 심경인지 ‘공감’하는 데 주력한다. 첫 번째 관객과의 대화를 마친 뒤 만난 페테르 폰티키스 감독은 “사는 곳이 달라도 우리가 영화를 통해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영광이다. 오래전부터 한국영화를 좋아해서 기회가 있다면 꼭 와보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물론이고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곡성>을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이창동 감독의 <시>와 <버닝> 등은 전율이 일 정도로 뛰어나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절묘하게 오가는 긴장감은 한국영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고 나 역시 깊은 영향을 받았다.
- 설명을 들으니 지역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정서를 품고 있는 영화에 끌리는 것 같다. 두 번째 장편인 <아브델> 역시 스톡홀름 북서부 예르바펠테트가 중요한 영화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묻는 거라면, 내 기준은 항상 사람이다. 사람들이 왜 저런 상황에 놓였는지 궁금하다. 사람에 물음표를 던지면 자연스럽게 장소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아브델> 역시 예르바펠테트에서 겪었던 일들이 시작이었다. 2년 정도 예르바 지역에서 보조교사로 일한 적 있는데, 당시 이민 2세대를 중심으로 범죄의 손길이 만연한 것을 목격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영화로 이어졌다.
- 12살 소년 아브델의 꿈과 범죄에 취약한 교외 지역의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장르적으로 그린다. 폭력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 끌려든 소년들에 관한 강렬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장르적인 접근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좀더 입체적으로 느끼고 다가갈 수 있길 바랐다. 긴장감은 관객을 상황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통로다. 개인적으로 내적 갈등에 빠진 인물에 흥미를 느낀다. 흑과 백,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경계에서 인간다운 고민이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그 경계에 서 있다.
- 말씀처럼 영화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편리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소년 아브델이 폭력 조직에 휘말리는 과정이 더 설득력 있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는 상황을 훨씬 순화해서 묘사한 것이다. 실제는 더 엄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 역시 이민 2세대인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사회가 방치한다면 이들은 여러 방식으로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안타깝고 위험한 변화를 함께 실감하고 고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극영화로 연출을 결심했다.
- 처음엔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예정이었다고 들었다.보조교사로 일했던 예르바펠테트를 오랜만에 다시 방문했을 때 지역 전체가 침체돼 있음을 느꼈다. 소년들은 변두리로 내몰리고 아무도 뚜렷한 개선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보다 좀더 인물의 사연에 깊숙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극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마침 스웨덴영화연구소와 함께 ‘무빙 스웨덴(Moving Sweden)’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이 이야기를 제안하여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사람을 관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각각의 드라마가 보인다. 차가운 정보의 전달 너머 각자의 사연에 귀 기울일 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는 것 같다. 극영화는 감정적인 호소에 그치지 않고 상황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인물에 대한 관찰이 구체적일수록 드라마틱해지고, 드라마틱할수록 시네마틱한 지점들이 늘어난다.
- 지역 주민들, 아이들과 800여 차례 인터뷰를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간 과정이 궁금하다. 엔딩크레딧에 실제 학생들의 인터뷰를 삽입하기도 했다.
많은 인터뷰를 거쳤고, 그중 일부 실제 사연은 영화 속에 녹여냈다. 다만 전반적으로는 사회 전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은유와 상징으로 다가가길 바라며 구조를 짰다. 좁게는 스웨덴 예르바펠테트 지역의 이야기지만 넓게는 인간에 관한 보편적인 관찰이다. 때문에 다른 나라, 예를 들면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해주는 부분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 상징이라고 하니 몇 가지 궁금한 게 있다. 가령 소년 아브델은 수의사를 꿈꾼다. 영화 속 농장은 아브델이 희망하는 이상적인 장소로 묘사된다.
여러 가지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소년이 바라는 것과 처한 현실, 자연과 폭력 등의 대비로 볼 수도 있다. 한편으론 수의사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스웨덴 중산층의 평범한 소년들이 꿈꿀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다만 형편이 좋지 않은 이민 가정에서 수의 관련 일을 희망하는 건 보통의 상황은 아니다. 스웨덴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위화감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적인 것처럼 좀더 보편적으로 해석되는 것도 좋다. 그런 궁금증들이 영화를 향해 찾아오는 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 한국과 달리 유럽에선 이민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 만큼 관련 영화도 많이 제작된다. 이민자들이 방치되고, 차별받아 사회주변부로 밀려난 결과 이민 1세대보다 2세대로 넘어오면서 문제가 한층 심각해지는 중이라 들었다.
맞다. 다만 문제는 이민 그 자체가 아니라 분리하고 격리하고 소외시키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 문제는 엄연한 현실이지만 한편으론 어느새 우파의 정치적 무기가 되었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그 좋은 경로가 될 수 있다.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해줄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