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조커: 폴리 아 되>에 영감을 준 것들 - 조커 이즈 미!
2024-10-10
글 : 김현수 (영화 칼럼니스트)

아서 플렉이 조커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문장을 가지고 두편의 영화를 완성했다. 첫편에서는 아서 플렉이 범죄를 저지른 배경을 보여주고 이번에는 그가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다룬다. 결과적으로 코믹스 캐릭터 조커의 양면성을 두편에 걸쳐 보여준 셈이 됐다. 외롭고 아둔했던 단독자 조커의 최후를 기리면서 그의 서사를 보다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의 레퍼런스를 모아봤다.

# 조커의 공허한 날갯짓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모티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97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5개 상을 휩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토드 필립스가 <조커>의 레퍼런스로 꼽았던 작품. 전편에선 그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진 않았지만 <조커: 폴리 아 되>에서는 구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아서가 5명을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수감돼 재판을 받던 중 할린과 벌이는 행각은, 잭 니콜슨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맡았던 맥머피의 행적과 궤를 같이한다. 그런데 맥머피가 1970년대 당시 억압적인 국가 폭력으로 상징되던 정신병원 체제를 못 견뎌하며 자유를 부르짖던 인물로 표현된 반면, 아서는 분노와 망상을 기폭제 삼아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켜 끝내 자아가 분열된다. 두 영화의 엔딩 구성도 흡사하게 진행되지만, 캐릭터의 차이만큼이나 여운도 다르다. 스스로 자신이 조커임을 인정한 아서 플렉의 최후와 맥머피의 마지막 모습은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토드 필립스는 “너 없이 나 혼자서는 절대 안 가. 나와 함께 가자”라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마지막 명대사를 완전히 비틀어 인용한다.

# 둘의 광기인가, 둘의 망상인가. ‘폴리 아 되’가 의도한 것은?

아캄정신병원

이번 영화의 부제인 ‘폴리 아 되’는 직역하면 ‘두 사람의 광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반사회적 인물인 조커와 할린 두 사람의 엽기적인 행각을 일컫는다. 조커는 병동에서 우연히 마주친 할린을 보고 그녀가 자신과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이란 걸 첫눈에 알아 본다. 할린 역시 조커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뉴스로 접하며 큰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한데 이는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할린이 실제 어떤 의도로 조커에게 접근했는지 영화는 모호하게 처리한다. 할린과의 관계는 조커의 망상일 수도 있다. ‘망상’은 아서 플렉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조커>에서 아서는 이미 엄마의 망상에 길들여져 병적인 존재가 되었고, 엄마의 망상이 그에게로 ‘전염’되어 이웃 주민과 사랑에 빠지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조커: 폴리 아 되>에서 아서와 할린의 ‘망상 관계’가 제대로 표현되었는가. 다음의 두 영화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공유 망상 장애(shared delusional disorder)라고도 불리는 이 정신질환을 본격적으로 다룬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의 <데드 링거>와 곤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에서 두 주인공이 처한 결말과 조커와 할린 사이의 결말은 꽤 다르다. 조커와 할린은 광기도 망상도 공유하지 못한 관계가 되고 만 것이다. 조커와 할린의 관계를 뮤지컬로 표현하면서 대표적인 뮤지컬영화 <밴드 웨건>도 직접적으로 인용되는데, 친구들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하는 프레드 아스테어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조커의 엔딩이 의미심장하다.

# 코믹스에서 점점 멀어지려는 시도

코믹스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

토드 필립스 감독이 만약 3편을 만든다면 과연 브루스 웨인이 등장 할까? 혹은 조커에 준하는 다른 빌런, 즉 펭귄이나 리들러, 캣우먼 같은 존재감 강한 캐릭터가 등장할까. 사실 워너브러더스와 DC 코믹스는 맷 리브스 감독과 로버트 패틴슨을 앞세워 슈퍼히어로영화의 색을 완전히 뺀 무채색 계열의 하드보일드 추리 스릴러 <더 배트맨>도 만든 바 있으니, 토드 필립스 감독 버전의 세계관도 유지 시킬지는 미지수다. 어쨌거나 토드 필립스 감독은 배트맨 혹은 조커를 영화화한 감독 중에서 코믹스 색채를 가장 많이 뺀 감독이 될것 같다. 전편에 등장했던 아이 브루스는 이번에 아예 등장하지 않으며, 조커가 재판 도중 수감되는 아캄주립병원의 동료 수감자들 중에서도 코믹스 캐릭터를 모티브 삼은 인물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하비 덴트 검사의 등장이 코믹스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사실 이번 영화의 주 배경인 아캄주립병원은 코믹스 세계관의 주요 장소인 ‘아캄 어사일럼’을 모티브로 한 장소다. 정신병원이자 일종의 수용소이기도 한 이곳은 고담시의 유명 범죄자, 즉 배트맨에 적대적인 악당들이 잡혀 들어와 모인 곳이다. 조커의 연인으로 묘사되는 할리퀸은 이 정신병원 의사 출신으로 묘사된다.

아서 플렉과 코믹스상의 아캄 어사일럼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캄정신병원의 설립자인 아마데우스 아캄이 어머니의 죽음을 기리며 이곳을 설립했다. 아캄의 어머니는 평생을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이 그녀의 삶을 기리며 정신병원을 설립한다. 하지만 아들이 어머니의 기억을 억압하고 안락사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국내에도 출간된 그래픽노블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에서 이 내용을 다룬다.

# 아서 플렉이 사는 브롱스, 끔찍한 뉴욕의 단면

레이디 가가 앨범 《Harlequin》

배트맨과 악당들의 거주지인 고담시는 1940년대에 작가 빌 핑거와 밥 케인에 의해 창조됐는데, 이때만 해도 뉴저지 어딘가에 위치한 곳 정도로만 묘사됐다. 당시 배트맨이 악덕한 자본가 출신 빌런 들과 맞서 싸우던 에피소드에서 종종 맨해튼이 무대였던 점도 고려해보면, 코믹스상의 고담은 대대로 뉴저지와 뉴욕 사이에 위치한 가상의 도시였다. DC 확장 유니버스 세계관의 실사 영화들에서도 대부분 코믹스상의 이 묘사를 따랐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다크 나이트> 3부작에서 고담시에 시카고의 색채를 덧입 힌다. 팀 버튼이나 조엘 슈마허 감독은 고담시를 네오 누아르 색채가 느껴지는 파시스트의 도시로 만들어버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대중의 인식 속에 고담은 대개 망해버린 가상의 뉴욕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나름의 업적이 있다면 이 고담시를 아예 현실의 뉴욕과 매칭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쓰레기 더미로 넘쳐나는 1980년대경의 브롱스 지역을 아서 플렉의 삶의 근간이 되도록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의도치 않게 <조커>에 등장한 뉴욕 지하철 4호선 167번가역 근처의 계단이 관광명소가 됐다. 브롱스 지역 사람들의 삶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파인딩 포레스터>와 <다우트>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데, 백인 기성세대의 반성을 다룬 이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브롱스 주민 아서 플렉이 벌인 6건의 살인사건은 그 끔찍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 레이디 가가의 할리퀸 연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커: 폴리 아 되>가 뮤지컬영화를 표방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레이디 가가 덕분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아킨 피닉스 역시 어떤 기계적 도움이 없이 본인의 음성으로 노래를 소화해 감동을 안겨주지만 레이디 가가의 활약상이 압도적이다. 할린의 역할이 조커의 부속품처럼 묘사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할리퀸의 캐릭터 탄생 배경을 알면 레이디 가가의 할린의 행동을 좀더 이해하기 쉽다. DC 코믹스상에서 할리퀸은 할린 퀸젤이란 이름의 아캄정 신병원 의사였다. 그녀는 연쇄살인마에 관한 논문에 인용할 자료 조사차 조커를 만났다가 사랑에 빠져 그의 탈출을 도왔다고 알려진다. 혹은 그녀에 관해 전혀 다르게 해석한 버전도 있다. 심리치료 사인 할린은 자신이 조커와 사랑에 빠졌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어느 쪽이 진짜 할린이든 창작자들은 할리퀸을 정신적으로 조커와 얽힌 인물로 주로 해석해왔다. 서로의 애칭은 푸딩과 펌킨 파이.

레이디 가가는 할리퀸을 연기하면서 “촬영이 끝나고도 나는 할리와 헤어지지 않았다”(<롤링 스톤스>)라는 생각에, 할리퀸의 마음 상태를 노래한 새 앨범을 만들어 발표했다. 9월27일에 발매된 새앨범 《Harlequin》은 실제 영화에 삽입된 곡들과 영감을 받아 새로 작곡한 곡 등이 섞여 있는데 타이틀곡 <Happy Mistake>가 할린의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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