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룩백>의 성취는 동명의 단편 만화를 적절히 계승하는 동시에, 연출자의 특색까지 놓치지 않으며 첫 장편애니메이션을 완성한 오시야마 기요타카 감독의 역량으로부터 큰 힘을 받는다. 그의 실력은 어느 순간 깜짝 등장한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분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페이스 댄디>로 와타나베 신이치로와, <데빌맨 크라이베이비>로 유아사 마사아키와 협업했고. TVA <플립 플래퍼즈>를 감독하며 20년간 최정상 애니메이터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기 때문이다. 3D와 AI가 틈입하는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오시야마 감독은 손 그림으로 <룩백>을 그리며 후지노와 쿄모토의 우주와 같은 눈동자, 그 속에 담긴 감정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룩백>의 동세와 정적을 만들어냈다.
- <룩백>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나.
전력을 다해 만든 영화인 만큼 국경을 넘어 한국 관객에게도 그 마음이 닿은 것 같아 기쁘다.
- 원작 만화와의 차이도 궁금하다. 후지노와 쿄모토가 그리는 4컷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한 이유가 뭔가.
다양한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후지노의 만화 재능이 비범하게 개화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은 목표가 가장 컸다. 또 이 작품엔 만화를 보여주는 표현이 반복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 그것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직관이 들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제작 초기부터 밀어붙였다.
- 후지노와 쿄모토의 첫 만남 이후 후지노가 논밭을 뛰어다니는 장면이 한국 관객 사이에서 명장면으로 꼽힌다. 원작보다 더 강세 있는 움직임과 긴 시간,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을 선택한 이유는.
후지노는 라이벌에게 패배한 감정을 느낀 후, 얼굴엔 드러나지 않지만 무척 고통스러운 1년을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만큼은 후지노가 하늘로 솟구칠 만큼 기뻐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최대한 다이내믹하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구도와 컷을 설계했다.
- 원작은 컷이나 프레임의 공백 때문에 차분하고 담담한 인상을 주는데, 애니메이션은 후지노의 달리기 신처럼 더 감정적인 연출이 많다고 느껴진다.
우선 만화엔 음악이 없고, 작가가 인물의 등을 보여주는 묘사를 대사 없이 점묘하는 방식을 택했기에 담담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그저 만화를 계속 그려나가는 나날을 현실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다만 애니메이션에선 후지노의 노력을 단시간에 부각하기 위해 감정적 연출을 강화했다. 또 영화는 물리적 특성상 중간에 감상을 그만두기가 어렵기 때문에 관객들이 집중력을 유지하고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고 싶었다.
- 결말에 대해 말하자면, 후지노가 만화를 다시 그리게 된 원동력을 무엇이라 생각했나.
후지노와 쿄모토의 진로가 갈린 이후에도 후지노는 쿄모토의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서 비로소 과거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각오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후 후지노의 완전한 회복을 보장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적어도 마지막엔 후지노에게 응원의 메시지만큼만은 전하고 싶었다.
- 마지막 장면에 대해 사소하지만 한국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있다. 원작의 마지막 컷에선 후지노가 짐볼 위에 앉아 있는데 애니메이션에선 의자에 앉아 있다.
짐볼에 앉으면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후지노의 움직임이 조금 이상하고 특이한 동작이 되어버릴 수 있었다. 이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후지노가 책상을 마주하고 있는데 몸이 위아래로 흔들린다면 관객이 후지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방해될 수밖에 없다. 후지노가 의자에 앉아 있더라도 그의 등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에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댄 자세로 앉는다는 대안을 생각해냈다.
- 작품 초반에 후지노가 방에서 혼자 만화를 그릴 땐 책상에 거울이 있어 후지노의 표정이 다채롭게 보이지만, 쿄모토와 만화를 그릴 땐 거울이 강조되지 않는다.
초반부에 애니메이션에서 특별히 긴 1분30초의 컷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거울에 비친 후지노의 모습을 그렸다. 관객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후 둘이 함께 만화를 그릴 때도 거울이 놓여 있긴 하지만 그때는 거울을 특별히 강조할 이유가 사라졌다. 쿄모토와 함께 있으니까. 이외에도 이번 작품에서는 거울이나 다양한 물체에 피사체가 비치는 표현을 아주 중요하게 그려내려 했다.
-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하는 과정에서 중시하는 기준이나 태도가 있나.
모든 표현과 창작은 어떤 방식으로든 2차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원작도 어떤 원천이나 감정에서 영향을 받아 쓴 2차 창작의 일종이기 때문이고, 그 원작을 애니메이션화하는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원작이든 그것을 기반한 새로운 작품이든 작품의 이야기를 창작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소화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어떠한 창작물도 원작을 그대로 좇는 것으로는 원작을 능가할 수 없고 자칫하면 열화된 복사본에 그칠 위험이 크다.
- 최근 <룩백>을 비롯해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창작에 관한 청춘물이 한국에서 보편적 인기를 끌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때라고 본다. 그러므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창작에 관한 일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지고, 이런 소재의 작품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제주도에 갔을 때 한국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최근 일본 학생들과 관심사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나도 요즘엔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자주 보고 있으니 양국의 교류나 공감대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룩백>은 만화가뿐 아니라 모든 창작자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다.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나.
내가 특별히 어떤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각자가 작품을 보며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 내 역할은 충분하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지만 우리가 발신하는 것을 완전히 신뢰하거나 강요하진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욕심을 부리자면, 극장을 나온 후에도 <룩백>에 대해 이것저것을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