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박(김윤석), 뽀빠이(이정재), 팹시(김혜수), 예니콜(전지현), 잠파노(김수현), 씹던껌(김혜숙). 이런 독특한 이름이 친숙할 정도로 <도둑들>은 큰 성공을 거뒀다. 2012년에 개봉해 관객 1298만명을 모으며 2010년대 들어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로 기록됐다.
<도둑들>은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를 만든 최동훈의 네 번째 장편영화로 한·중 도둑 10명이 활개치는 경쾌한 범죄영화다.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한국팀의 뽀빠이, 예니콜, 씹던껌, 잠파노 그리고 감옥에서 막 출소한 팹시는 뽀빠이의 옛 파트너 마카오 박에게 군침 도는 제안을 받는다.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전설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는 것. 막대한 돈이 걸린 작전을 마다할 수 없었던 이들은 위험천만한 작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도둑들>은 서울, 홍콩, 마카오, 부산 등 국내외 4개 도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중 부산은 마카오 작전 뒤 후반부 하이라이트를 책임지는 주요 장소로 쓰인다. <도둑들>을 제작한 김성민 케이퍼필름 PD는 2011년, 부산 일대를 누리며 진행했던 약 40일간의 촬영 기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도둑들>의 사진을 한장 한장 펼쳐보며 “정열과 의리”가 넘쳤던 시간으로 돌아가봤다.
은밀하고 쓸쓸한 도둑들의 아지트
“뽀빠이는 이제 사장님 소리 듣고 사는 건가, 손 털고?”(팹시) “마카오를 다녀와야 손을 털지.”(뽀빠이) 한국 도둑들의 보스인 뽀빠이와 막 출소한 팹시가 뽀빠이 소유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옥상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것도 잠시, 바로 한탕 벌일 계획으로 넘어가는 영화 초반부 장면이다. 도둑들의 아지트이기도 한 이곳은 옛 서라벌호텔이 있던 곳이다. 1979년, 가장 번화가였던 중구 대청동에 오픈해 부산을 대표하는 고급 호텔로 30년 가까이 운영했으나 2004년 폐업했다. “호텔이라는 거대한 부지가 가진 웅장함과 더는 아무도 찾지 않는 폐건 물의 퇴색한 분위기가 묘한 조화를 이루더라. 어딘가에 뭔가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고 도둑들이 범죄를 모의할 만한 곳으로 이곳보다 더 적합한 장소는 없어 보였다.”(김성민 PD)
아지트에서 뽀빠이가 자랑하듯 들고 있는 향로는 씹던껌과 예니콜이 미술관에서 빼낸 귀한 유물이다. 뽀빠이는 곧 장물아비가 부르는 시원찮은 액수에 적잖이 실망한다. 아지트는 당시 호텔 구역 중 임시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공간을 섭외했다. “낡았지만 독특한 느낌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자 했고 미술팀이 최선을 다해준 덕분에 목적 달성했다. 감독님을 비롯한 제작진과 배우들도 만족해서 이 안에서 모두가 몰입해서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고 김성민 PD는 당시를 회상했다.
<도둑들>의 관객에겐 언뜻 익숙한 계단일지도 모른다. 잠파노가 가까이 다가와 향수 냄새를 맡자 애니콜이 “그렇게 좋니?”라며 능청스럽게 굴던 그 순간을 촬영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해운대 특급 호텔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에서 찍었다. 여기서 찍은 컷들은 짧게 들어갔지만 해안도시에 자리한 호텔에서 뿜어져 나오는 늦은 밤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잠파노와 애니콜의 로맨틱한 관계를 충분히 드러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이곳 부산에서
‘태양의 눈물’ 작전 중이던 도둑들을 태운 경찰차가 바다로 추락하는 장면과 가까스로 차에서 빠져나온 뽀빠 이와 앤드류(오달수)가 전력 질주하는 장면이다. 두 신모두 마카오가 배경이었지만 실제로는 해운대구 동백 공원 주차장 옆 방파제 부지에서 촬영했다. 제작진은 차량 내부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물속으로 떨어지는 위험 요소가 있는 신은 국내에서 소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베테랑 잠수사와 쉽게 연결돼 도움을 받는 등 국내에서 진행하니 모든 면에서 수월했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대책도 완벽하게 세울 수 있어서 안전하게 찍었다. 촬영 장소가 국방부 특별관리지역 이었던 터라 촬영 허가가 필요했는데 부산영상위원회의 적극적인 조율 덕분에 국군수송사령부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동백섬 건너편의 해운대 마천루가 마카오의 화려한 건물들의 전경과 유사하다는 점 또한 장소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김성민 PD)
폭풍 전야, 옛 정취를 담다
“홍콩에서 볼 수는 없지. 3일 후 부산에서 봅시다. 당신이 직접 오고.” 영화 후반부, 탈취한 태양의 눈물을 웨이홍(기국서)과 거래하기로 한 마카오 박이 부산의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다. 촬영장은 실제 부산으로 원도심인 중구 동광동 일대다. 과거의 정취가 살아 있는 공간으로서 화면에 잡힌 오래된 실제 상점들이 거리의 역사를 말해준다. 비슷한 규모로 옹기종기 자리 잡은 작은 화랑, 유니폼 전문점, 오디오 가게. 한가로운 행인들, 서두르는 기색 하나 없이 자전거를 타는 마카오 박까지. 누가 봐도 평범한 한낮의 풍경이지만 이곳에서 곧 영화 하이라이트 액션신이 펼쳐진다. 김성민 PD는 “일상의 한 단면과 많은 인물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보여주기에 이만한 곳이 더 없었다”고 설명하면서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쁨도 함께 전했다.
마카오 박이 웨이홍이 기다리고 있는 맨션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곳 주변에는 웨이홍을 검거하려는 경찰들이 잠복 중이고 내부에는 마카오 박이 빼돌린 보석을 찾기 위한 도둑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 맨션 역시 동광동에 실재하는 부산데파트다. Department(백화점)의 일본식 표현을 쓴 부산데파트는 부산 최초의 현대식 쇼핑센터이자 주상복합건물로 시장 근대화 사업계획에 따라 1969년에 개장했다. 7층 중 지상에는 은행과 사무소, 인삼 제품과 고미술품 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상점 등이 자리하고 지하에는 지하도 상가가 자리 잡았다. 곳곳에 낡은 흔적이 역력하고 세월의 더께가 가득 쌓인 맨션은 홍콩 누르의 쇠락한 분위기를 살린 공간으로 탁월했다. 촬영 당시 제작진은 리모델링이라는 암초를 만나 난항을 겪었으나 부산영상위원회의 전폭적인 중재 덕분에 원하는 그림을 얻을 수 있었다.
끝까지 즐겁게, 안전하게
줄리(이신제)가 웨이홍을 체포하고 팹시와 마카오 박이 따로 탈출하는 마지막 총격 하이라이트 신은 중구 중앙동5가에 있는 부산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촬영했다. 이곳과 함께 부산항 양곡부두를 섭외 하기 위해 제작진은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그러나 김성민 PD는 당시 섭외 과정이 예상보다 수월했던 걸로 기억한다. “실제 국가 시설이자 보안구역을 사용하는 거라 관계기관의 협조가 꼭 필요한 촬영이었다. 미팅에서 만난 부산항만공사 관계 자들은 우리가 왜 여기서 찍어야만 하는지를 깊이 공감해주셨다. 부산에서 영화를 찍는 일에 함께 즐거움을 느끼면서 전 과정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덕분에 별 탈 없이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린 친구인 줄 알았는데.”(팹시) “경찰과 도둑은 언제나 친구지.”(줄리) 여객터미널 안에서 팹시와 줄리가 마주치는 장면이다. 최동훈 감독은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연기자들을 주변에 두지 않고 중심으로 끌고 가니 쓸 때도 재미있고 영화도 독특해”졌다며 많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만들면서 느낀 즐거움을 전했다.
맨션 대격돌, 그 이후
어떤 장면이길래 폴리스 라인과 들것, 특공대 차림의 엑스트라가 필요했던 걸까. 부산데파트 안에서 벌어진 한바탕을 수습하기 위한 장면을 찍기 위해 대기 중이다. 사진 속 초록 간판이 걸린 건물이 앞서 말한 데파트로, 마카오 박과 웨이홍의 보석 거래가 이뤄지기로 한 장소다. 사실 이 거래에는 비밀이 있었다. 마카오 박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웨이홍을 경찰에 넘기기 위한 작전이었던 것. 총성과 고함으로 시끄러웠던 극 중 내용과 달리 현장 상황은 매우 평온했다고 김성민 PD는 말한다. “3일간 도로 일부를 통제하면서 찍었는데 부산중부경찰서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시민들도 협조해준 덕분에 계획된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