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더 부산답게 부산+
부산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었던 5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영화의 배경에 부산이 등장하거나, 부산에서 많은 촬영 일수를 기록한 작품들이다.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부 학생들의 실화를 그린 <리바운드>의 장항준 감독은 “실제 영상에 이 지역이 어떻게 찍히는지까지 다 알고 있기에 해줄 수 있는 조언”까지 들었던 부산영상위원회와의 상세한 부산 촬영기를 전했다. <헌트> <헤어질 결심> <마약왕>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부산을 찾았던 제작진 역시 부산을 “호의적인 부산 시민들의 협조, 부산만이 지닌 휴양지의 여유”(<마약왕> 김진우 프로듀서)로 기억했다. 영화도시 부산을 더 부산답게 만든 영화들을 그러모아본다.
<리바운드> 부산이 기억하는, 포기하지 않는 순간
강양현 코치와 농구부 학생들의 포기 모르는 고군분투를 그린 <리바운드>는 부산 중앙고등학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해체 위기에 놓인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부는 방금 전까지도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던 양현(안재홍)을 신임 코치로 발탁한다. 초짜 코치와 오합지졸 다섯 아이들은 성기는 박자로 조금씩 서로의 페이스를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모두의 기대를 떠안은 가드 기범(이신영)과 부상으로 꿈을 접은 스몰 포워드 규혁(정진운)은 과거의 갈등이 발목을 붙잡지만, 각기 다른 열망으로 끝내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리바운드>는 실화의 터전인 부산 중앙고등학교를 시작으로 비석문화마을, 옛 동부산대학교, 영도대교, 해돋이전망대, 온천천, 충무동 새벽시장, 영주시민아파트, 대연 문화공원 등 총 20곳의 장면을 담았다. 개봉 당시 많은 관객으로부터 “관광지가 아닌 일상 속 부산의 곳곳이 잘 드러난다”는 평을 받았던 만큼 영화는 소담하고 정겨운 부산의 모습을 포착한다. 35일. 한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리바운드>가 자아낸 부산과의 화학작용을 되짚어봤다.
새벽 선착장에서
충무동 새벽시장에서 촬영한 앉은뱅이 횟집이 모여 있는 선착장은 10여년 전의 포차거리를 구현한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이 거리를 찾는 질문 글이 종종 보이지만 현재 부산에 실존하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부산도 많은 게 빠르게 변해서 옛날 분위기를 보여줄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양현과 규혁의 파출소 신을 찍은 자갈치시장 해안파출소 부근에서 진짜 어시장을 꾸렸다.”(이미경 미술감독)
“먹고 자고 농구”
<리바운드>의 중앙고등학교 농구부 연기자들은 장항준 감독의 말 그대로 “먹고 자고 농구”만 했다. 테이크를 여러 번 가기 어려운 플레이 신을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이행하려면 무조건 시간을 들여 연습하는 게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속도감이 생명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결승에 다가갈수록 더 빠르게 밀어붙이는 연습을 했다. 근데 연습하는 사이에 배우들의 농구 실력이 늘어버린 거다. (웃음) 언더도그의 반란을 꾀하기 위해 이를 중재하는 것도 필요했다.”(장항준 감독)
초고속카메라가 포착한 3점 슛
“시나리오상에서도 극적이고 통쾌한 장면으로 다가왔던 안양고와의 4강전, 허재윤(김민)의 3점 슛 득점 장면은 ‘팬텀’ 초고속카메라를 활용해 800fps로 촬영했다. 득점하는 선수와 슛을 넣는 방향만 바뀔 뿐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전술은 열 가지 내외라 관객에게 각각의 플레이가 다르게 전달되도록 고민을 많이 했다. 강 코치가 팀을 꾸리고 훈련하는 전반부는 스포츠영화지만 청량한 분위기를 고양하기 위해 소프트 필터를 사용했고 하레이션과 스모그를 활용하기도 했다. 경기가 주를 이루는 후반부는 채도를 높이고 콘트라스트를 강화하여 선명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구현했다.”(문용군 촬영감독)
10년 전 소품 그대로
<리바운드>를 두 챕터를 나눈다면 첫 번째가 연습 과정,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전국 농구대회다. 10여년 전의 맹렬했던 경기를 구현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쓴 것은 바로 경기장 바닥이다. 지난 몇년 동안 변해버린 코트를 10년 전과 똑같이 구현하기 위해 바닥재에 랩핑을 씌운 상태로 도색칠을 했다. “경기장 안에 있는 소품들도 10년 전의 것으로 모두 바꿨다. 포스터, 플래카드, 의자 하나하나 모두 찾았다. 제작팀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고민했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분위기로 꾸릴 수 있는 것을 찾아냈다.”(장항준 감독) 특히 영화 말미에 흘러가는 당시 사진들과 대조되는 시퀀스가 있어 꼼꼼하고 섬세하게 확인해야 했다. “레트로 소품이라고 해서 보면 당시 분위기를 살리기보다 묘하게 현대화된 디자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결국 찾지 못한 것들은 제작을 했다. 그게 바로 선수들이 앉는 회색 벤치다.”(이미경 미술감독)
네가 사는 그 집
몰수패의 치욕을 맛본 뒤 농구의 즐거움을 깨달은 양현 코치는 차례로 아이들을 찾아가 농구를 다시 해보자고 설득한다. 이 과정에서 기범과 규혁의 집이 나온다. 기범의 집은 연제구 거제동에서, 또 규혁의 집은 감천문화마을에서 촬영했다. 박윤호 PD는 두 아이의 공간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바다가 보이는 곳이길 바랐다.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평지보다 지대가 높은 곳이 적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간을 찾기 위해 정말 발품을 많이 팔았다.” 여기서 놀라운 비밀 하나가 있다. 규혁의 집 외부는 감천문화마을이지만, 내부는 사실 거제동에서 촬영한 교장 선생님(서영삼) 댁의 방 한칸이었다.
학교의 사계절
<리바운드>의 이미경 미술감독이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실화 바탕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실제 아이들이 지냈던 공간을 어떻게 재현해낼 것인지 고민이 깊었다. “농구부 친구들이 성장했던 시기로 돌아가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래서 운동부 친구들을 사전조사했고 십대 아이들 특유의 정리정돈 안되고 땀 냄새 폴폴 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웃음) 강양현 코치의 컴퓨터도 고심했다. 학교에서 대우받는 위치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서 당시 평균적으로 쓰던 컴퓨터보다 한두 단계 아래의 기종을 찾아냈다.” 또 중앙고등학교 아카이빙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학교에서 고이 간직한 농구부의 기록을 보고서 학교의 사계절, 체육관 모습 등 재현 과정에 박차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