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 마키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 <멘> 등 독특한 비주얼과 공상과학적 상상력으로 만드는 작품마다 평단의 주목을 받은 앨릭스 갈런드가 잠정적인 감독 은퇴를 선언했다. 다시 각본가로 돌아가 다른 감독이 자신의 텍스트를 시각화할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본래 <28일후…> <선샤인> 등 영화의 각본을 써 이름을 날린 갈런드는 자신이 쓰고 연출한 모든 영화에서 일관된 인장을 새겨왔다. 그의 신작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또한 흔한 전쟁영화가 아니다. 갈런드만이 건넬 수 있는 질문과 사유가 영화 곳곳에서 산탄하는 갈런드식 전쟁물이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의 개봉을 맞아 앨릭스 갈런드의 세계를 돌아보았다.
“제목에 ‘워’ (War)가 들어가는 바람에 기대했단 말이야. 이럴 거였으면 ‘프레스’(Press)라고 제목을 짓든가.” 한 관객이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의 관객 시사회가 끝난 후 상영관을 나서며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아주 틀린 지적은 아니다. 전쟁영화의 들끓는 스펙터클을 기대한 관객에게 영화가 찬물을 끼얹기 때문이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엔 전쟁영화가 으레 제공하는 한쪽 진영에 선 채 주인공의 생환을 간절히 바랄 기회나 전쟁의 배후에 도사린 거대 세력의 음모가 제공되지 않는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전장을 누비는 종군기자의 포토저널리즘을 다루는 전쟁영화다. 종군 사진기자인 리(커스틴 던스트)와 조엘(와그너 모라)은 내전으로 황폐화된 뉴욕을 뒤로하고 백악관이 위치한 워싱턴 DC로 향한다.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 공습으로 내전을 일으킨 대통령(닉 오퍼먼)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수도로 향하는 길은 어딜 가나 폐허다. 워싱턴에 가면 기자는 모두 처형된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지만 이들은 각자가 수호하는 저널리즘을 실현하기 위해 픽업트럭에 몸을 싣고 우회로를 달린다. 두 기자의 여정에는 <뉴욕타임스> 출신의 전설적 기자인 새미(스티븐 매킨리 헨더슨), 그리고 종군 사진기자 지망생이자 리를 역할모델로 생각하는 제시(케일리 스페이니)가 합류한다.
윤리적 화두와 낯설게 하기
영화는 자연히 카메라를 든 사람이 지녀야 할 윤리를 고민하게 한다. 리는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난 곳에서도, 무고한 시민이 총살당하거나 고문당하는 곳에서도, 심지어 동료 기자가 포로로 붙잡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와중에도 ‘프레스’라 적힌 방탄조끼를 입은 채 필름에 참상을 담는다. 리와 동료들의 피사체는 바로 눈앞에서 피 흘리는 전쟁 피해자들이고, 이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자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본 후 바로 건질 만한 사진으로 기록함으로써 궁극의 한 컷을 완성한다. 예컨대 리는 제시에게 “전쟁과 폭력의 의미에 관해 자문하는 순간 끝없는 수렁에 빠질 것”이라며 “오직 기록만이 기자의 일”이라고 강변한다. 제시는 선배 기자들과 함께 숱한 죽음을 목격하고 그 자신마저 죽음 직전까지 다녀온 후 “평생 이토록 두려운 적이 없었지만 이렇게 살아 있다고 느낀 적 또한 없었다”며 약간은 환희에 찬 어조로 고백한다. 비극을 직시하지만 그 의미는 외면하는 자들. 비극의 지척에서 무감하고 초연해야 비로소 직업적으로 성장했다고 평가받는 자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 네명의 종군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건넬 수밖에 없다. 비극의 순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일은 도덕적으로 온당한가. 타인의 비극을 목적화하고 수단화하는 일은 윤리적으로 올바른가. 타인의 고통에 개입하지 않고 쓸 만한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을 솎아내는 일에만 가치판단을 내리는 일은 언론 윤리에 부합하는가. 폭력을 매체화하는 개인은 직업적 소명과 별개로 불구화된 인간성을 지닌 사람인가.앨릭스 갈런드는 지금껏 윤리적 딜레마를 내러티브에 수반한 장르영화를 만들어왔다. 갈런드의 연출 데뷔작 <엑스 마키나>는 인간 칼렙(도널 글리슨)과 인공지능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의 튜링 테스트를 경유해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인간다움을 대체할 수 있는지 질문했고, 인간적 정체성과 인공지능 정체성의 경계를 탐구했다. 또 인공지능 시대의 주요한 이슈인 정보·기술의 권력화 문제와 여기서 파생하는 공정성, 개인정보 침해 등의 당면 과제를 점검했다. 정보 윤리에 관한 갈런드의 질문은 결정론과 양자역학의 논리하에 개인정보의 조합이 과거 그리고 미래의 시뮬레이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브스> 속 팀 데브스의 핵심 연구로 이어졌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인간이 자연에 무분별하게 교배, 변형을 시도하며 환경을 착취하듯 자연 역시 생태계를 교란해 인간을 위협하고 끝내 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호러영화의 문법으로 구현해냈다. 절멸을 앞둔 인간 탐구는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이전에 갈런드가 각본가로서 대니 보일과 함께 작업한 좀비 아포칼립스물 <28일후…>, 우주 재난물 <선샤인>으로부터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네버 렛 미 고>에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 그대로 생명공학과 생명윤리 사이에 첨예하게 상충하는 논리를 인간의 질병 치료를 위해 제작된 세 복제인간의 사랑과 우정으로 풀어냈다.
정작 앨릭스 갈런드는 자신이 던지는 화두 앞에 유보적 태도를 취한다. 영화의 태도가 모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진의 퀄리티를 제외하고 유혈사태에는 질적 판단을 가하지 않으려는 리의 태도처럼, 갈런드의 영화는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되 이를 체화하는 주인공의 심리에 이입할 여지를 원천 차단하며 메시지와 스토리 사이에 한뼘의 거리를 둔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청각 자극을 맥락과 무관하게 활용한다. 경찰이 폭력을 동원해 시위 현장을 진압할 때 영화는 난데없는 로큰롤 사운드트랙을 깔고 기자들이 트럭에 올라 참사 현장을 취재할 땐 디스코 리듬의 힙합 음악을 재생하며 요상한 박진감까지 만들어낸다. 총격과 산불이 이어져 자연이 훼손되는 장면엔 목가적인 컨트리음악이 흐른다. 이토록 소리로 충만한 영화는 믿음직한 동료가 참변을 당해 기자들이 오열하며 비명을 지르자 대사를 포함해 사운드 전체를 음소거한다. 시각과 청각 사이에 이격을 둠으로써 장면 전체를 낯설게 만드는 갈런드 특유의 데페이즈망(이상한 환경에 인물이나 사물을 배치해 충격을 주는 초현실주의 기법.-편집자)식 연출은 그의 다른 작품에도서 드러난다. <데브스>의 기업 사옥 한가운데 뜬금없이 서 있는 거대한 소녀상이나 <멘> 속 로리 키니어가 한적한 시골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비주얼로 수없이 탈바꿈하며 선보이는 보디 호러가 한축에 있고, <멘> 속 굴다리를 지나 기괴한 음향으로 반영돼 돌아오는 하퍼(제시 버클리)의 노래,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서 죽은 자의 목소리로 사람을 유인해 위해를 가하는 괴수, <엑스 마키나>의 네이든(오스카 아이삭)이 즐기는 디스코음악이 다른 축에 있다. 갈런드는 윤리적 화두의 충돌과 낯선 요소의 중첩이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고 믿는다. 올해 초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의 인기 방송 <모닝 에디션>에 출연한 갈런드는 “영화를 통해 주장하고 싶은 바는 언제나 있지만 그 주장을 관객들이 관심없어 하거나 수용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그래도 된다고 믿는 편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아도 좋다”는 연출론을 밝혔다.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정리하며 <시빌 워: 분열의 시대>를 둘러싼 정파적 논쟁을 일축했다.
훼손과 분열의 비주얼리스트
앞서 언급한 대로 앨릭스 갈런드는 독창적인 비주얼리스트다. 몇해 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소설가와 각본가를 거쳐 영화감독이 된 만큼 특별한 비주얼을 중요시한다”고 고백한 만큼 갈런드의 영화를 보고 나면 미장센 하나는 어떻게든 관객 마음속에 남기 마련이다. 갈런드는 특히 신체 훼손으로 시각적 충격을 전달하는 데 능하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참혹한 내전의 실상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니 당연히 무기와 피를 동반한 테러 묘사가 서슴없이 등장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갈런드의 예술적 참신성이다. 팝아트풍 그라피티나 크리스마스 마켓의 풍경 아래 벌어지는 고문과 살상, 피카소의 <시체 구덩이>를 연상시키는 구덩이 속 시체들이 뒤엉켜 있는 숏 등은 폭력이 일상화된 삶에서 얼마나 잔혹한 일이 대수롭지 않게 자행될 수 있는지를 응시한다. 갈런드는 거의 악취미적으로 잔인하고 기괴한 미장센을 영화마다 개발해내고 이왕 만든 김에 자신이 창조한 숏을 별거 아니라는 듯 뉴스 화면처럼 골똘히 응시하는 악취미가 있다. 살점을 도려내는 장면을 찍는 데엔 데뷔 초부터 도가 텄다. <엑스 마키나>에서 인공지능들이 마치 식빵을 소분하듯 피부를 떼어내는 숏이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속 뱃가죽을 절개한 후 우글거리는 내장을 가만히 쳐다보는 숏, <멘>의 나체의 남성이 또 다른 남성을 줄줄이 출산하는 장면 등은 종래에 여성 캐릭터들에게 모종의 해방감을 선사하기까지 한다. 데이비드 크로넌버그와 쿠엔틴 타란티노에 이어 물밀듯 쏟아지는 폭력의 묘사가 어떻게 정화의 미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논의해봄직하다.
앨릭스 갈런드가 여러 작품을 통해 줄곧 그리고 쓰는 형상은 분열이다. 이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참고로 작품의 영어 원제에는 부제에 붙은 ‘분열’이 없다)에 드러나는 미국 정치와 언론을 위시한 세계의 극단적 양극화, <멘> 속 보통의 남성성이 여성들에게 가하는 신체적, 사회적 공포, <엑스 마키나>에서 칼렙과 네이든 사이에 서서히 금을 긋는 인공지능 에이바의 심리적 조종 등으로 종합할 수 있다. 반면 분열은 글자 그대로 갈런드의 이야기에 생물학적 영감을 주기도 한다. <네버 렛 미 고>의 복제인간, 세포의 분열과 증식으로 새로운 삶과 죽음이 탄생한다는 리처드 도킨스식 개념을 전제로 이야기를 써내려간 <서던 리치: 소멸의 땅>, 분자의 분열이 다중우주를 낳고 이를 통해 양자적 미래를 잉태할 수 있다는 <데브스>의 세계관이 그러하다.
리 밀러와 커스틴 던스트의 눈빛
작중 대사에도 드러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보그> 소속의 종군기자로 활동한 리 밀러와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속 리 스미스의 이름이 같은 건 우연이 아니다. 직접 히틀러의 욕조에 들어가 몸을 씻는 리 밀러의 유명한 사진을 오마주한 리 스미스의 숏 역시 영화 초반에 제시된다. 한편 앨릭스 갈런드 영화의 시그니처인 고뇌하는 인간의 눈 클로즈업숏 또한 <시빌 워: 분열의 시대>에 등장한다. 그간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내털리 포트먼, <멘>의 제시 버클리, 심지어 갈런드가 각본으로만 참여한 <선샤인> 속 킬리언 머피도 무방비의 공포 앞에 흔들리는 인간의 눈빛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전적이 있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속 커스틴 던스트는 조금 다르다. 그가 연기한 리 스미스는 눈으로 동요하는 법이 없다. 산적한 시체를 뒤적일 때도 리는 업무 메일을 확인하는 직장인처럼 무심하게 시선을 내리꽂는다. 약간의 권태와 무기력마저 스치는 커스틴 던스트의 눈빛은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에서 케이트 윈슬럿이 보여준 투박한 표정을 떠올리게 하는데, 마침 케이트 윈슬럿은 올해 공개된 리 밀러의 전기영화 <리>에서 주연과 제작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