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부탁해>(JTBC)가 돌아왔다. 5년 만에 “원조 국민 쿡방”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예전 모습 그대로. 김성주와 안정환은 여전히 특유의 입담과 적절한 ‘깨방정’ 진행으로 게스트와 요리사들이 프로그램에 편안하게 스며들게 한다. 서로를 ‘디스’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절친’인 요리사들의 요리 대결도, 요리하는 장면을 보다보면 어느새 군침이 도는 것도 익숙하다. 에드워드 리, 최강록, 이미영, 박은영 등 2024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했던 요리사들이 새롭게 투입된 것 빼고는 변한 게 없다. 심지어 불균형한 성비까지 그대로다.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은 프로그램에 독일까, 약일까? 포맷이나 진행 방식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대중문화 생태계에서 게으른 기획이라 여겨지기 쉽다. ‘올드’한 것으로 취급되어 외면당할 수도 있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인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계급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에 치이고 최근 몇년 동안 그런 사회의 축소판인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아온 탓일까? 요리사가 게스트의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15분 내에 요리를 완성하여 승패를 가리는 경쟁 구도지만 누구도 탈락하지 않아서 좋다. 오늘 패배한 요리사를 다음주에도 볼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안심되는 일인지 몰랐다. 승자에게는 ‘별’을 달아주며 리스펙하고 패자에게도 ‘다음 기회’가 주어지는 세계. 경쟁하는 관계지만 다급한 상황이나 상대 요리사가 실수하면 은근슬쩍 돕기도 하는 세계. 시차 적응이 안돼 깜빡 잠들거나 말재주가 없어도 너그럽게 이해되는 세계. 이런 순한 맛 세계가 이 독하고 매운맛의 세계에 잠긴 우리를 잠시 구원한다.
check point
<냉장고를 부탁해>의 세계가 순한 맛일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에서의 패배가 요리사들의 존재감에 영향을 미치거나 생존과 직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최현석 요리사처럼 오히려 ‘인간미’를 획득하는 효과가 있다. ‘탈락’과 ‘생존’의 경계가 종잇장처럼 얇은 긴장감 높은 현실을 사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트릭 아트’ 같은 프로그램. 현실은 현실이고 예능은 예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