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간첩 리철진> <공공의 적> <라이터를 켜라>의 이문식 [2]
2002-07-26
글 : 이영진

비결 3 계산하지 마라

“이창동 감독님한테 욕많이 먹었어요. 카메라가 어딨는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기만 했으니까.” 대학로에서 소문난 재주꾼도 카메라 앞에서는 잠시 당황했다. <초록물고기>에서 깡패 역을 맡았던 그는 “아무리 깡패라지만, 한석규 같이 비싼 배우를 진짜로 때리기엔 부담스러웠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가 비로소 ‘감’을 잡은 건 <간첩 리철진>에서 임원희, 정재영, 정규수 등과 만나 인상깊은 4인조 택시강도 역을 맡고 나서부터다. “흥행만 됐어도 좀 일찍 뜰 수 있었는데. 하하. 그때 <매트릭스>랑 붙어서 정신 못차릴 정도로 밟혔죠.” 그뒤 <행복한 장의사> <봄날은 간다> <선물> <달마야 놀자> 등 1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조연의 서러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특히 공연 도중이라 고사했던 모 영화의 경우, 제작사쪽에서 사정사정해서 밤낮으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공연과 촬영을 번갈아 하긴 했는데, 촬영이 끝나고서 제작부장이 그에게 몇푼 안 되는 50만원의 개런티 중 10만원만 깎자고 했던 일은 그가 죽여왔던 분통을 건드리기도 했다.

“피눈물도 없는 잔인한 역할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그는 한국영화의 조연들에게 주어지는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못마땅하기도 하다. “사실 저보고 소박하네 뭐하네 그러지만 어떻게 알아요. 제 안에 악랄한 게 도사리고 있을지. 근데 아직까지 한국영화는 척 보면 ‘아, 저사람 악인이구나’ 대번에 알아보는 캐릭터밖에 없어요. 보는 사람들로선 당연히 긴장이 떨어지지요.” <공공의 적>의 산수 이후 ‘도끼빗’ 꽂고 ‘빨간 양말’ 신는 역할들만 들어온다며 그는 숨겨놨던 ‘쓴소리’를 털어놓는다.

그런 불만은 자신에게로도 향한다. “제 연기의 출발은 ‘무식함’이거든요. 계산 못한다는 거. 느낀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그게 원칙이었는데. 요즘 절 보면 타협하는 것도 같고, 무감해지는 것도 같고. 그 자체로 행복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러다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데, 그때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너 왜 이렇게 달라졌니”라고 물으면 어떡할지 모르겠다는 그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에 “공동체 마을을 함께 꾸리고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건실한 꿈을 간직하고 있는 한 그가 던져주는 웃음이 쉽게 변질되진 않을 것이다.

차승원이 본 이문식

시골 아저씨 성품이 어디 가겠어요

제가 아니라 문식이 형이라구요?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저에 대해 좀 물어보세요,

예? 아니라구요? 문식이 형. 제 부하로 나오시느라 고생 좀 하셨죠. 술자리에서 제 인생 상담해 주시느라 힘드셨죠. 처음엔 참 서먹서먹한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이제는 1년에 한두번 전화통화가 전부라도 평생 만나고 싶은 동창 같은 친근한 느낌이 드네요. 그러고보니 우리 술자리에서 연기는 이래야 한다, 영화는 저래야 한다 뭐 그런 이야기는 쏙 빼놓고, 사는 이야기만 했네요. 하긴, 그럼 어때요. 형처럼 삶이 연기고, 연기가 삶인 사람한테는 술마시고 그런 이야기 하는 게 정석이죠. 근데 형은 왜 말 안 놓는 거예요. 자신이 불편하다고, 동생 불편하게 하면 쓰남. 연세도 많으신 분께서. 요즘 조연배우 캐스팅 1순위라면서요? 선수들은 이미 다 알아요. 소문났는데 뭘 숨기려고 그래요. 보통 나이들어 성공하면 옛날 생각 싹 잊어버리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거 되게 밥맛인데. 형은 더 겸손하려고 하는 걸 보면 신기해요. 하긴, 시골 아저씨 성품이 어디 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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