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간첩 리철진> <공공의 적> <라이터를 켜라>의 이문식 [1]
2002-07-26
글 : 이영진
`옆집 아저씨`의 피도 눈물도 없는 연기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생긴 게 이래서인지 몰라도, 6개월 전쯤 됐을 거예요. <공공의 적>에서 산수 역을 맡아 오만 가지 불쌍한 표정을 지어 세간에 얼굴을 좀 알렸잖아요. 모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해서 갔는데. 먼저 사진부터 찍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죠. 근데 뒤늦게 올라온 사진기자가 글쎄 나말고 내 옆에 서 있던 매니저를 끌고 가는 거예요. 별 수 있나요. 그냥 웃고만 있었죠.”

이문식(36)에게선 사람 냄새가 난다고들 한다. 스스로도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라고 말한다. 웃으면 생기는 세줄 눈주름이며, 입가에 고인 동안의 미소는 처음 만나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여기에 만나는 사람을 붙잡고서 구수한 사투리를 곁들여 재미난 이야기를 보너스로 대접하는 것도 그의 특기다. “나한테 가장 큰 형벌은 아마도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상대만이 그에게 녹아나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몸이 달아 캐릭터를 쫓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알아서 그를 닮아간다. 이건 과찬이나 거짓말이 아니다. 보면 안다. <공공의 적>의 산수와 이문식은 한몸이다.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이 없다. <간첩 리철진>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택시강도 또한 마찬가지다. 일부러 꿰맨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건 서른여섯해를 살아오는 동안 그가 희로애락 광대의 삶을 기꺼이 받았들였기 때문이다. 그의 삶의 첫장은 산골소년 이야기로 시작된다.

비결 1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산골소년 이문식에겐 TV드라마만큼 세상에서 좋은 것은 없었다. 절벽 아래로 사랑했던 여인이 떨어지자, 흙에 얼굴을 묻고서 오열을 터뜨리는 사내의 내막을 절절히 이해하진 못했어도, 그는 그때 보았던 드라마 <빨간 능금이 열릴 때까지>를 지금도 기억한다. 오죽했으면 여주인공 김영애를 이상형으로 모시며, 다음회가 찾아올 때까지 오뚜기 식품 광고를 보고, 또 보고 그랬을까. 그가 항공대를 때려치우고 뒤늦게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유턴한 것은 그런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탤런트가 되겠다던 꿈은 이내 사그라든다. “원래 그런 거 있잖아요. 자기 얼굴 자꾸 보면 정드는 거. 이 정도면 탤런트 해도 되겠다 싶어서 연영과엘 갔는데 돈많고 잘생긴 애들투성이데요.”

그는 일찌감치 중앙도서관의 ‘올빼미’가 되기로 작정한다.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도 그곳에서 만나 안면을 텄다. 그렇다고 영영 ‘꿈’과 담을 쌓은 것은 아니었다. 황석영의 <돼지꿈>을 올린 무대에서 그는 세 마디 단역을 시작으로 김지하의 마당극 <밥>에서 자신의 연기에 웃는 이들을 보며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해마다 공중파 방송의 탤런트 시험에 응시하기도 했다. 매번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그 무렵, 현 청년필름의 김광수 대표가 ‘접선’(?)을 해왔고, 뒤늦게 사회과학 공부를 하면서 급기야 그는 과 학생회장 선거에까지 나서게 되고 당선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임수경 방북사건과 관련, 법정 소란죄로 감방에 갇히게 된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전망에 대한 고민이 슬슬 고개를 들이밀던 차에” 영원한 ‘싸부’ 최형인 교수가 그를 면회온다. 남동생 옷가지들까지 모아서 가져다 주기도 했던 최 교수는 그에게 다짜고짜 “연극, 정말 안 할 거냐”라고 묻고선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에서 물장수 역을 그에게 덜컥 맡겼다. “과가 생긴 지 3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였는데, 문예회관 대극장에 섰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그때 처음으로 삯바느질 하시던 어머니도 올라오셔서 나를 봤다.” 그러나 그 전율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어 <심바세매>에서 늙은 경찰 역으로 연장공연을 하던 중 ‘영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비결 2 연기는 살아내는 것

군대에서도 그는 ‘유명세’를 떨쳤다. 장기자랑 때마다 ‘명물’ 소리 들어가며 좌중을 웃기곤 했던 그는 유격 훈련 중엔 어김없이 장교를 상대로 ‘1인극’을 펼쳤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끄떡하면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그 앞에서 장교들은 번번이 속아 넘어갔고 그는 주로 총 대신 주전자를 들고다녔다. 지루한 군생활을 그렇게 버텨내던 중 그는 말못할 사연 때문에 목숨을 끊을 시도까지도 했다. “죽자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보여요. 어떻게 죽을 수 있나만을 고민하는 거지. 죽을 결심하고 목맬 워커끈도 준비했겠다, 소주 한병 챙길 목적으로 PX에 갔는데, 글쎄 어리버리한 이등병이 처음엔 술을 안 내주는 거예요. 그러다 내 눈에 살기를 보고선 슬그머니 내주더라구요. 챙겨서 뒤돌아서는데 아, 이 어리버리 군바리가 내 뒤통수에 대고 ‘소주 1병은, 이 상병님 앞으로 외상 달아놓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한껏 비장했는데, 웃음이 피식 나오더라구요.”

군대를 다녀온 뒤 그는 93년 한양 레퍼터리에 들어간다. 선배이자 군대 고참이기도 했던 설경구를 따라 ‘삐끼’까지 하면서 처음에는 창단 극단의 설움을 톡톡히 맛봤지만, “다들 젊고 열심인 극단”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대학로에서도 한참 후미진 세미예술극장까지 관객을 유인하는 데 성공한다. 1년에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200만∼300만원이던 시절이었지만, 궁핍은 커다란 문제가 아니었다. ‘프리’ 선언을 한 뒤 극단을 나와 만난 연극 <라이어>는 3년 동안 장기 공연에 돌입했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그때 만난 연출자 양혁철은 그의 연기에 살을 붙인 사람이라는 점도 그가 <라이어>를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필모그래피

1967년 11월13일 전라북도 순창 출생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극단 한양 레퍼터리

<초록물고기> 깡패 역

<비트> 구청직원 역

<미지왕> 택시운전사 역

<러브스토리> 편의점 주인 역

<간첩리철진> 택시강도 역

<행복한장의사> 동네양아치 역

<봄날은간다> 녹음실 선배 역

<선물> 어린시절 친구 역

<달마야놀자> 대봉스님 역

<공공의 적> 양아치 역

<일단 뛰어> 돈가방 주인 역

<라이터를 켜라> 찐빠 역

<빅 하우스 닷 컴> 출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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