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찌푸린 양미간이 심술맞아 보이고, 한일자를 그리며 앙다문 입술이 고집스러워 보이는 남자. 연녹색 눈동자의 표정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세상에 무서울 거 하나 없다는 듯 옹골차 보이지만, 때론 바람 한 줄기에 휘리릭 꺼져버릴 듯 불안하고 가녀리기도 하다. 안면 근육이 마비된 건 아닐까 의심스러워질 만하면, 왼쪽 입술이 위로 비스듬히 올라가며,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헷갈리는 미소가 흘러나온다. 소리내어 웃는 일은, 물론 없다. 지루할 만큼 진지하고 성실한, 매사 단호하지만 그만큼 상처받기도 쉬운, 무뚝뚝하고 냉소적인 인상의 이 남자. 바로 미국인이 사랑하는, 미국의 얼굴 해리슨 포드다.
올 여름, 해리슨 포드는 꽉 찬 예순살이 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환갑을 맞은 동세대 액션 스타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의 원기는 예전 같지 않지만, 해리슨 포드와 그의 추종자들은 지칠 줄 모른다. 해리슨 포드는 처음부터 그들과 길이 달랐다. 아놀드나 실베스터처럼 근육질 몸매와 괴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평균치의 지성과 감성, 그리고 완력을 지닌 ‘보통 사람’이었다. 그가 보여준 것은 위기 상황에 맞서는, 보통 사람들의 영웅적인 활약상. <스타워즈> 시리즈의 불량스러운 파일럿 한 솔로에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고지식한 고고학 교수 인디아나 존스로, 다시 <패트리어트> <긴급명령>의 CIA 분석관 잭 라이언으로, <에어포스 원>의 미국 대통령 마샬로, 해리슨 포드는 대중이 공감하고 동조하고 대리만족할 수 있는, 그런 영웅의 모습을 체현해왔다. 영국의 한 영화잡지가 최고의 스크린 스타로 인디아나 존스를 선정하며 밝혔듯 대중은 “핸섬하고 ‘스마트’하고 ‘섹시’한 액션 영웅”을 애타게 기다려왔고, 때문에 해리슨 포드를 역사상 가장 흥행력 있는 배우로 기네스북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명백히 대중이 사랑하는 그의 모습은, 예의 그 ‘억울한’ 듯한 얼굴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액션 영웅의 이미지다. 하지만 해리슨 포드는 “관객이 내게 뭘 원하는지,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하는지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매번 다른 성격의 영화에서 다른 부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목표이자 야심이라는 것이다. 해리슨 포드의 필모그래피는 그것이 ‘가진 자’의 ‘여유’나 ‘자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블레이드 러너>의 어둠과 혼란, <위트니스>의 낭만, <워킹걸>의 코믹함, <랜덤 하트>의 나이브함, <왓 라이스 비니스>의 악마성 등 꾸준히 그리고 가열차게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도전을 거듭해왔다. 늘 결과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악역으로 등장할 때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영웅이길 바라지만, 난 쓸데없이 수십명씩 사람을 죽이는 역할 따윈 하지 않을 거다.”
그는 이 ‘선언’을 다시금 확인하기라도 하려는 듯 <K-19>를 택해, 냉전시대 소련에서 미사일 테스트 임무를 수행하는 핵잠수함 함장 역할에 도전했다. 러시아 악센트로 말하고, 레닌 초상화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은 낯설지만, ‘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대원들의 희생을 독려하는 독불장군의 카리스마는 영락없는 ‘해리슨 포드표’다. “개인주의자가 아니라 집단에 충성하는 영웅이고, 관객이 쉽사리 익숙해지고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려 10년 만에, 해리슨 포드는 <인디아나 존스4>로 돌아온다. 환갑이 지난 만큼, 그에게 이번 출연은 전과 다른 의미의 ‘고행’이 될 터다. 하지만 이런 의혹의 눈길에 꿈쩍할 해리슨 포드가 아니다. “나이가 무슨 문제인가? 인디아나 존스는 나이도 안 먹나?” 하긴, 50대 중반에 귀를 뚫고, 60살에 새로운 연인을 만나고, 여전히 ‘도전’과 ‘액션’이 고픈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