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밀애>의 두 배우 [2] - 이종원
2002-10-23
글 : 황혜림
사진 : 이혜정
이런 사랑 해보셨습니까?

이종원이 돌아왔다. 안방극장의 든든한 지주로 연기를 떠났던 적 없는 그지만, 스크린으로 돌아온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8년 만이에요. 강산에 몇번 주름 잡혔다 펴졌을 시간이죠” 신세대 남녀의 계약동거를 그린 신승수 감독의 코믹멜로 <계약커플>에 출연한 게 94년. 그는 네 번째 영화 <밀애>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장염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 오느라 예정보다 조금 늦게 스튜디오에 들어선 그는, 배우로서는 보기 드물게 명함을 내밀며 서글서글하게 인사를 건넸다. 괜찮냐는 물음에 쓱 웃더니 상관없다면서, “아이들이 먼저 걸려서 다같이 앓았는데, 이제 거의 나았다”고 말한다. 그렇지, 그는 어느새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그러니까 10대들이 의자를 넘어뜨리며 무수히도 흉내냈던 리복 광고의 청춘 스타로 떠오른 뒤로도, 참 오랜시간이 흐른것이다. 흰 남방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 사진 촬영 때문에 드러낸 다부진 몸매는 아무래도 ‘아저씨’로 보이진 않지만.

사진 컨셉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이미지컷들을 꼼꼼히 살피며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는 그는, 모델 출신답게 촬영에 열심이었다. “설정 좀 그만하라”는 매니저들의 놀림에도 카메라를 쏘아보는 눈빛은 끄떡없다. 유학을 준비하다가 거리에서 우연히 모델로 발탁된 게 88년. 집안의 반대로 용돈도 못 받고, 토큰 2개 달랑 들고 충무로를 드나들던 그는, 리복을 비롯해 광고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그 직후 <열일곱살의 쿠데타> <푸른 옷소매> 등 2편의 영화도 찍었지만, 주무대는 역시 TV. <짝>의 풋풋한 비행기 승무원부터 <젊은이의 양지> <청춘의 <꼭지>의 성공을 꿈꾸는 젊은 야심가까지, 인기 드라마의 스타로 입지를 굳혀왔다.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했지만, 방송을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때로 겹치기 출연을 할 만큼 바쁜 방송 스케줄 탓도 있지만, “영화사에서 볼 땐 드라마 연기자란 인식이 강한” 때문인지 시나리오도 많이 들어오진 않았다고. 지난해에는 첩보영화를 할 뻔했는데, 계약 직전에 영화가 무산돼 본의 아니게 7개월을 놀기도 했다. 다시 <순정> 등 드라마로 돌아갔던 그는, 올 초 히말라야를 등반하면서 새삼 “영화라는 우물을 파겠다”고 마음먹었다. “산을 오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더 늦어지면 못할 것 같더라”며, 300∼400만명이 들고 흥행에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파이란>처럼 배우의 대표작이 될 만한 영화, “인정받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적어도 2년 동안은 드라마 제의가 들어와도 사양하고 영화를 하겠다고 벼만기다릴 무렵, <밀애>를 만났다.

게임처럼 시작한 불륜의 관계에 빠져드는 <밀애>의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야한 것을 떠나서 어렵다”는 게 솔직한 느낌. 조용한 마을에서 병원을 하는 인규는 미흔에게 불륜의 유희를 제안하는 남자. 장난처럼 시작한 관계에서 예기치 못한 감정의 함정에 걸려드는 인규가 되기란, “이 영화를 한 것 자체가 모험”이라고 토로할 만큼 쉽지 않았다. 노출과 정사장면도 많고, 거기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는데, 저런 사랑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첫 2주 정도는 수년 만에 돌아영화현장에 적응하느라 헤맸지만, “더 찍죠”는 있어도 “그만 찍죠”는 없었다. <밀애>에 원없이 빠졌다가 나온 지금은, “불륜영화라기보다 애정영화, 흔하지 않은 사랑이야기로 봐줬으면” 하는 게 그의 소박한 바람. “카피가 격정멜로인데, 걱정멜로라고 하더라구. 걱정되는 멜로”라고 웃지만, 오렇맙스크린으로 관객과 만난다는 긴장감도 슬쩍슬쩍 스캑 그 싫지 않은 긴장을 오래 품기 위해, 그는 <나비>를 차기작으로 점찍었다. 삼청교육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멜로 <나비>에서 군부의 대리인 황 대위로 악역을 연기할 그를, 당분스크린에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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