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드라큐라2000>
2001-04-17
시사실/<드라큐라2000>

그는 왜 드라큘라가 되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 또 하나의 드라큘라 이야기.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이후 교회를 저주하며 흡혈귀가 된 브람 스토커 원작소설 속의 드라큘라와는 달리, <드라큐라2000>의 드라큘라는 애연에 매여 있지 않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목 한쪽을 파고드는 드라큘라식 번식, 그리고 여자들을 향해 손을 뻗치는 뇌쇄적인 눈빛은 그대로 살아 있지만, 영화 후반에서 관객은 전적으로 종교적인 데 기원을 둔 새로운 드라큘라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새롭다 못해 다소 엉뚱하고 급작스레 거창해져버리는 이 영화의 결말은, 그러나 어쨌든 이 작품을 이전까지 만들어진 여러 드라큘라 영화들과 구분짓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이다.

영화는 드라큘라 이야기를 2000년 런던과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옮겨 상당부분 재구성한다. 무덤 같은 골동품 창고에 묻혀 있던 이야기를 몰래 훔쳐내어 미국행 비행기로 훌쩍 옮겨 태우는 것이다. 매리를 순결한 여인으로 지켜내려는 반 헬싱/사이먼 대 그녀를 흡혈귀로 만들려는 드라큘라의 싸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이름부터 성스러운 ‘버진’ 레코드 가게의 점원 매리를 둘러싼 이 싸움은 때로 <매트릭스>식 공중부양까지 구사하며 스릴있으면서도 코믹하게 펼쳐진다.

감독 패트릭 루시에는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 시리즈 등 공포영화의 편집을 주로 맡아온 편집기사 출신. 웨스 크레이븐은 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다. 촬영감독은 <와호장룡>으로 오스카 촬영상을 받은 피터 파우. 드라큘라가 거머리에 뒤덮인 채 관에서 일어나는 장면과 매리의 환각장면 등 몇몇 부분은 꽤 공포스럽지만, 흡혈 묘사 등 대부분의 장면들은 오싹하게 무섭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드라큘라의 기원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은 반면 묘사에서는 관습적인 수준에 머무름으로써 이 작품은 어딘가 균형을 잡지 못한 영화가 돼버린 느낌이다.

최수임 기자 sooee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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