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일상 속에서 술로 일탈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꼭 술 깨는 오후엔 따뜻한 햇볕에 몸을 데우면서 생각에 빠져드는 것을 즐긴다(물론 대부분은 수분 섭취와 잠을 자지만).
지나간 일기장을 뒤지듯 마음속으로 낙서를 하면서 지나간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그러다가 얼굴이 벌게지는 일이라도 생각나면 이내 이불 속으로 숨어버리지만 기분 좋은 일이나 가슴 뭉클한 기억들이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서성이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결의(?)를 다지곤 한다. 그런 기억들은 지금을 사는 나에게 새로운 힘이 되고 활력이 되며 지침이 된다.
<상계동 올림픽>을 처음 접한 때가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선배들과 함께 본 노이즈가 잔뜩 들어간 사운드와 간간이 사라져버리는 이미지들. 처음엔 뭐 그렇고 그런 운동권 비디오인 줄만 알고 봤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뭔가 모르는 정신적인 충격에 휩싸였다고 할까. 투박한 내레이션 너머로 허물어져가는 집들 사이로 희망이 꿈틀거리며 생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고 손아귀에서 땀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첫 대면은 끝났고 시간을 잊은 채 2년이 흘렀다. 물론 내 기억 속에서 <상계동 올림픽>은 시간 속에 묻혔다. 첫 만남은 노이즈 잔뜩 낀 화면처럼 먹구름같이 먹먹하게 끝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영화니 영상이니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군대에 갔고 거기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영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단편영화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영화를 한번 해보자는 결심. 주변을 기웃거리게 되었고 그러다가 만난 것이 ‘영상창작동아리 한누리’였다. 지금은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진실된 삶을 영상으로 담아내는’이라는 앞구호가 붙은 영상창작동아리 한누리의 시작은 비디오 하나와 고장난 텔레비전이 전부였다. 부족했지만 따뜻한 의지가 모인 공간, 그곳에서 <상계동 올림픽>을 다시 만났다. 첫 만남 이후에 기억 속에서 지워진 다큐멘터리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먹먹했던 가슴에 후련한 빗줄기가 뿌리는 듯했다.
상계동 173번지 철거촌. 그곳에서 카메라와 상계동 철거민은 하나가 되었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슬픔과 분노를 희망으로 지켜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 밥 먹고 자고 지내면서 그들을 가슴 깊이 담아낸 김동원 감독. 나에게 누가 연출자고 누가 주민인지 모르는 헷갈림은 시간이 지나가도 지워지지 않는 그 작품만의 진실로 기억되고 살아난다. 물론 김동원 감독은 이 작품 하나로 무척이나 큰 짐을 지게 되었지만, 그의 다큐멘터리를 아직도 볼 수 있는 기쁨을 관객이 누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하튼 우울과 몽상만으로 끝날 수 있었던 20대에 빛줄기처럼 찾아온 영화 <상계동 올림픽>은 아직도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작품이고 또 나태한 나의 삶에 채찍이 되어주는 힘이다. 나의 이런 수줍은 고백은 나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지 싶다. 간간이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상계동 올림픽>은 자신을 망친(?) 주범이라는 고백들을 아직도 듣고 있으니 말이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사람 여러 명 조졌다”라고 말하면서 신나게 웃던 그 술자리가 생각이 난다. (^^;;) 한편의 영화가 결코 세상을 나아지게 할 수 없지만 그 영화로 하여금 다양한 변화가 생겨난다면 언젠가 우리 사회가 변화하지 않을까. 상계동엔 <상계동 올림픽>이 더이상 없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억압받는 사람들이 모두 상계동 주민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상계동 올림픽은 계속될 것이다. 행복한 상상에 맘껏 희망의 술잔을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