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프랑스의 홍상수 편애 이유 [1]
2003-03-14
글 : 성지혜 (파리 통신원)

파리가 홍상수에 빠진 날

한 감독의 세 작품이 한 도시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건 희귀한 일이다. 파리의 홍상수가 그랬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이 지난 2월26일 한꺼번에 선보인 것이다. 게다가 이곳 매체들은 홍 감독을 거의 최상급 찬사로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 평단은 이젠 꽤 두터워진 한국의 작가주의 감독 중에서도 유난히 홍상수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관심을 나타낸다. 파리의 성지혜 통신원이 그 편애의 이유를 따져보았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세 작품이 동시에 지난 2월26일 파리에서 개봉했다. 이미 칸영화제나 파리영화제,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제 등을 통해 비평가나 시네필들에게 소개된 이 작품들은 그동안 비평계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개봉을 기다려왔는데 ASC라는 용기있는 배급사에 의해 마침내 파리의 3개관을 비롯해 지방 4극장, 전국 7개관에서 개봉됐다. 문화예술지 <앵로퀴티블>(Inrockuptibles)은 뒤늦은 개봉이지만 작품들이 하나도 신선함을 잃지 않았다며 세 작품이 동시에 개봉돼 한 영화의 관람경험이 다른 영화들을 보는 데 반향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개봉방식에 환호를 보냈다. 일간지 <리베라시옹> 역시 시간차가 있지만 뒤늦은 개봉을 반기며 <생활의 발견>이 제외된 것에 아쉬움을 보였다.

홍상수는, 여전히 새롭다

홍상수 감독에 대한 프랑스 평단의 관심은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세 작품의 동시개봉을 계기로 이곳 언론들은 영화란의 가장 중요한 기사로 이를 다뤘는데 감독과의 인터뷰와 세 작품을 관통하는 평을 전면을 할애해 실으면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리베라시옹> 평의 마지막 문장은 이곳 언론이 홍상수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을 잘 요약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세계를 단지 장면화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세계를 관객의 뇌와 살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이는 감독이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불안감에서 추출해낸 독창적인 스타일과 세계관의 힘에 의해 가능해진다. 홍상수 감독은 멀찍이 서서 자신 스스로에 존재하는 낯선 모습을 응시하고 관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한국영화에 대한 인지도가 미비했던 4∼5년 전에 비해 이제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거나 프랑스에 개봉되는 한국영화 수는 늘었다. 칸영화제 초대나 스크린 쿼터투쟁, 부산영화제의 성장 등으로 한국영화가 마침내 자기 존재를 알리면서 여러 감독들이 프랑스 평단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제 명실공히 거장으로 인정된 임권택 감독뿐만 아니라 이창동, 김기덕 감독 등의 신작은 평론가들의 관심을 모은다. 그렇지만 이곳 평단의 홍상수 감독에 대한 관심은 이들에 비해서도 유난스러 보인다. 이미 세계의 가장 우수한 영화들을 파리에서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프랑스 평론가들은 여기에 덧붙여 영화제 참여를 통해 새로운 재능의 발견에 총력을 기울인다. 작가주의 비평 전통대로 상업영화감독으로 치부되는 기존 감독들의 작품들을 재발견, 재해석해낸 것도 프랑스 비평이 이룬 큰 성과의 하나지만 비평가들이 가장 힘을 모으는 것은 경쟁적으로 새로운 감독들을 발견해내고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미 거장으로 인정된 임권택 감독의 작품을 평할 때보다 홍상수 감독과 같이 자신들에게 발견할 기회를 준 새로운 젊은 감독들을 옹호할 때 더욱 열정이 넘친다. 물론 작가주의 비평 전통에서는 한번 작가로 인정한 감독들의 실패작조차도 감싸안으려는 포용적인 태도가 있었다면 신인감독의 발견에 총력을 모으는 현재의 비평가들은 선택한 감독을 작품별로 까다롭게 평가한다. 홍상수 감독은 예외적으로 이제까지 발표한 전 작품이 고른 평가를 얻어냈다. 홍상수 감독의 열렬한 지지자 중 하나인 피에르 르상은 “홍상수 감독이 놀라운 것은 데뷔작부터 4편의 영화가 모두 고르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점이다. 매 영화에서 감독의 재능이 다시 확인되고 여전히 창작에너지가 넘쳐남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돼지…>나 칸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강원도의 힘>과 <오! 수정>에 이곳 비평가들이 한목소리로 찬사를 보내는 것은 피에르 르상의 지적을 확인시켜준다. <아름다운 시절>로 주목받았지만 다음 작품이 이어지지 않은 이광모 감독이나 <섬>으로 소수의 열렬한 지지자를 얻었지만 <나쁜 남자>로 그 지지를 잇지 못한 김기덕 감독 등과 비교해 홍상수 감독이 또렷이 도드라지는 것은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영화를 발표하면서 작품마다 팽팽하게 높은 수준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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