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청명한 하늘에 펼쳐진 뭉게구름, 잔잔한 호수에 비친 숲의 일렁임, 대나무숲의 가지와 잎새를 스쳐가는 바람소리, 고흐 그림의 강렬한 색채, 로댕의 조각에 불끈 솟아 있는 근육 같은 것은 인간의 감각기관이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미적 대상이다. 이 여인, 모니카 벨루치도 그렇다. 그녀의 신체는 그리스 신화가 숨쉬던 시절 존재했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주조된 듯하다. 목탄으로 그린 듯한 진한 눈썹, 오뚝한 콧날에서 도톰한 입술로 이어지는 명료한 윤곽, 실크처럼 반짝이며 물결치는 풍성한 검은 머리, 여체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온갖 신비와 비밀을 집약시킨 대리석 조각 같은 몸매, 벨루치가 모델로서 경력을 시작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녀를 그리고, 그녀를 사진에 담는 것은 거기 이미 존재하는 절대적인 관능의 선을 포착하는 일일 따름이다(<말레나>가 상영됐던 베를린영화제에 취재갔던 한 사진기자는 그녀가 나타나자 자신의 손이 신들린 듯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눈부신 외모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가 됐지만 사실 벨루치는 아직 모델에 가까워 보인다. 사람들은 여전히 “<라빠르망>에 나왔던 그 예쁜 여자 있잖아”라고 말하거나 “이탈리아 글래머”라고 부르길 즐긴다. 이건 <말레나>에서 묘사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처럼 완벽한 여자라면 평범한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 거라는 선입견이 배우로서의 벨루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와 공연한 <태양의 눈물>과 <매트릭스> 연작에 캐스팅되면서 최근 벨루치를 발견한 미국 언론은 그녀를 유럽에서 건너온 새로운 섹스심벌로 부각시키고 있다. ‘제2의 소피아 로렌’은 찬사에 가깝지만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비교하는 기사를 보면 좀 어색하다. 벨루치는 이미 10년 전에 코폴라의 <드라큐라>에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녀가 <돌이킬 수 없는>처럼 도발적인 영화에 목말라했던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다. 벨루치는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루는 뱅상이 집에 와서 가스파 노에(감독)가 우리와 함께 포르노를 찍고 싶다고 하기에 거절했다는 말을 했어요. 저는 매우 화를 냈지요. 뭐? 가스파한테 ‘노’라고 했다고. 미쳤어? 내가 얼마나 그와 같이 일해보고 싶었는데, 라고 소리쳤죠. 가스파는 시나리오를 사탕발린 언어가 아닌 뭔가 다른 식으로 상상하길 좋아해요.”
<돌이킬 수 없는>에서 벨루치는 현실에서 그런 것처럼 실제 연인인 뱅상 카셀과 친밀한 감정을 나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웃고 떠드는 자연인 벨루치의 모습은 무척 낯설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생생함으로 그려진다. 강간장면에서 등장하는 모델 같은 모습과 상반되는 이런 이미지는 여신 벨루치가 아니라 자연인 벨루치에 주목해달라는 주문처럼 느껴진다. 9분에 걸친 끔찍한 강간장면을 참을 수만 있다면 관객은 벨루치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환희를 맛볼 수 있다. “가스파 노에가 처음으로 현실적인 실제의 여인, 웃고 괴로워하고, 말하고 감정을 지닌 여인, 감동시킬 수도 있고, 파괴시킬 수도 있는 여인, 그런 역을 준 겁니다. 항상 유리를 통해 제 자신을 쳐다보던 제가 그 유리를 깨부순 거죠”라는 벨루치의 말은 사실이다. 그동안 그가 맡은 인물은 대체로 환상의 여인이나 신화의 여인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은 그녀의 천부적 절대미가 아니라 생의 활기가 만드는 상대적 아름다움에 카메라를 들이민 첫 영화이며, 그녀의 타고난 외모가 아니라 노력과 용기와 지혜가 빚어낸 결과에 집중하는 첫 작품일 것이다.
벨루치는 지난해부터 할리우드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태양의 눈물>, <매트릭스> 연작, 멜 깁슨이 연출하는 <더 패션> 등이 줄지어 개봉할 예정이다. 아마 할리우드 역시 그녀의 신체적 자산을 활용하는 데 혈안이 되겠지만, 벨루치는 자신이 걸어갈 길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미는 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생물학적 순간이고, 10년 뒤에는 똑같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돌이킬 수 없는>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파괴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