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영화. 작열하는 지중해의 햇빛을 받고 자란 제우스의 후예들은 시끄럽고 먹기 좋아하며 파티를 즐기는 정열적인 사람들이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철저한 그리스식 가족문화 속에서 사는 그리스계 미국인인 툴라와 맘씨 좋은 앵글로색슨 이안과의 결혼과정을 다룬다.
음악도 로맨틱코미디영화에 어울릴, 할리우드에서 많이 들어보았던 차분한 스트링과 그리스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국적인 음악을 적절히 배분하고 있다. 오리지널 스코어는 크리스 윌슨과 알렉산더 젠코가 나눠 쓰고 있다. 알렉산더 젠코는 <맨 온 더 문>에서도 신선한 음악을 들려주었던 사람. 전통적인 그리스 악기의 음색과 아코디언,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 서구 악기들의 음색을 적절히 섞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접한 그리스 음악은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중동지역과 유럽을 잇는 관문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둘의 음악적 문화가 잘 배합된 느낌이다. 피크로 뜯는 전통적인 그리스 현악기의 울림은 아랍의 전통 기타라 할 수 있는 ‘우드’의 소리 색깔과 매우 흡사하다. 왼손은 순간적으로 농현하고 비브라토를 주며 오른손은 짧게 끊어 치는 이국적인 운지법이 근동지역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제모폰토스, 에만, 에브 등의 음악뿐 아니라 알렉산더 젠코의 오리지널 스코어에서도 이 현악기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릭 웨딩 밴드’로 명명된 밴드의 음악이나 에브의 음악은 터키의 음악을 조금 서구화한 듯한 기분. 우리로 치면 ‘해금’ 비슷한 역할을 하는 스트링 악기의 소리가 3박자-4박자로 끊어지는 4분의 7박자의 독특한 리듬을 타고 흥겹게 울려퍼진다. 노래 중간에 펼쳐지는 솔로 플레이는 더욱 중동음악의 영향을 실감케 한다.
원래는 오프-브로드웨이의 모노드라마였던 것을 영화화해서 그런지 영화의 전개 자체가 상당히 독백적이고 연극적이다. 이러한 차분한 전개과정과 그리스식의 떠들썩한 잔치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보통 사람의 페이소스랄까, 뭐 그런 것. 미국에서 이 영화가 성공을 거둔 이유는 그리스식 삶의 방식이 매력적인 이국 취향으로 작용해서만은 아니다. 그리스의 축말고 정작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결정적인 다른 축 하나는 이안과 그 부모의 관용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영화 속에 내재된 그 관용의 축이 은근히 미국 사람들을 만족시킬 만한 영화. 결과적으로는 미국이란 나라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잘 어울려 사는 곳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영화는 물론 그리스의 이국적인 음악을 소개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것 때문에 관객이 너무 생소하게 느끼지 않도록 로맨틱한 무드의 배경에 평범하게 어울릴 음악을 섞어넣는 일에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와 같은 ‘배려’와 ‘관용’은 아마도 영국식, 혹은 미국식 예절을 몸에 익히고 사는 어쩌면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태도를 지니고 있을지 모를 조용한 중산층의 정서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없이 애인과 가서 보면 한없이 편안할 영화. 그러나 지금 같이 수상한 시절에는 자꾸 묻게 된다. 그렇다면 무자비한 전쟁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