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이민용표 착한 영화` <보리울의 여름>
2003-04-22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 Story

한적한 보리울 마을의 성당에 30대 초반의 젊은 주임신부(차인표)가 찾아온다. 그곳에는 단정한 자태의 원장수녀(장미희)와 털털하기 그지없는 우남 스님(박영규)이 미묘한 갈등을 이루고 있다. 보리울 마을의 새 기운은 축구에서 비롯된다. 보리울 마을팀 아이들이 읍내 축구팀에 도전했다가 형편없이 무너지고 햄버거를 ‘헌납’당한 뒤, 축구이론에 해박한 우남 스님에게 축구감독을 부탁한다. 또 말썽꾸러기들이 주축이 된 성당 아이들도 축구팀을 꾸려 주임신부가 감독을 맡게 되면서 양팀이 경쟁에 들어간다.

■ Review

<보리울의 여름>은 악다구니 같은 여름 한날의 소동 속에서 한 가닥 진실을 ‘선동’하던 <개같은 날의 오후>와 달리 아주 ‘착한 영화’다. 애초부터 악의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인간들이 쏟아져나와 너스레를 떨며 소동을 벌이다가 행복하게 화해한다. 못된 인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갈등을 마련하고 해결의 쾌감을 높이기 위해 극소수를 인위적으로 배치했을 뿐이다. 사실감을 증발시킨 악의가 위기감을 주기는 어렵다. <집으로…>의 못된 손자나 <선생 김봉두>의 퇴폐 교사가 진실로 못된 인간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슬픈 현실이 진짜가 아니라며 안도할 수 있었다. <보리울…>의 못된 인간들이 갖는 비현실성은 이들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러티브의 긴장감은 어디서 생겨날까. 흥미롭게도 착한 캐릭터들 곳곳에서 대립각이 돌출한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 곤란할 지경이다. 이것이 ‘이민용표 착한 영화’의 힘이다. 정색하고 달려들었으면 감당키 어려웠을 대립각들이 애초부터 평화로운 인물들 속에서 시빗거리로 떠오를 가능성을 미연에 없애버린 것. 이제 안전하고 즐거운 갈등의 세계를 즐기면 된다.

너스레에 관한 한 노하우를 쌓고 쌓았을 박영규는 가장 문제적 인물이라 할 우남 스님을 맡아 첫신부터 ‘기습’을 감행한다. 새로 부임해오는 주임신부와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초등학생 형우를 보고 우남 스님이 반색한다.

“니가 형우 맞나? 많이 컸다. …아부지를 봤으몬 꾸벅 인사부터 해야제.” 물론 마을 사람들에게 이들은 부자지간이 아니다. 우남은 아마도 출가 전에 낳았을 형우를 방학 동안 잠시 머물기로 한 신자의 아들로 위장한다. 스님 아버지라는 낯선 존재감 때문에 형우는 적잖이 갈등하겠지만, 스님의 과거나 솔직과감한 작금의 행실은 비난거리가 되지 않는다. 스님은 또 내놓고 곡차를 즐긴다. 술김에 주임신부에게 자신의 첫사랑을 털어놓으며 “청승을 떨고”는 다음번에는 당신 차례라고 다짐한다.

그렇지만 우남은 신심을 생활화한 충직한 승려다. 주임신부와 만나던 첫날처럼 틈만 나면 기싸움을 벌인다.

“목도리처럼 찬 거, 그거 뭐라카능교?”“아, 이거요? 로만 칼라라고 합니다.”“로만 폴라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네예. 푹푹 찌는 여름철에 폴라 입고 갑갑해서 우찌 삽니꺼? 우리 불교는 자윱니더. 더우면 벗고 런닝고만 입고 이리 삽니더. 수행자가 옷가지 같은 것에 구속받으면서 무슨 수행을 하겠습니꺼. 하하하.”

우남의 진짜 적수는 젊은 주임신부가 아니라 대단히 금욕적이고 끊임없는 노동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원장수녀다. 쇼핑, 특히 예쁜 옷 사기를 좋아하는 젊은 바실라 수녀(신애)에 비하면 원장수녀는 안타까움이 절로 들 만큼 고지식하다. 우남(‘어리석은 남자’란 뜻이 아닐까. 실제 법명은 ‘운암’인데 사람들 부르기 편한 대로 고쳐버렸다)과 ‘웬수’(아이들은 원장수녀를 줄여서 이렇게 부른다)로 상징되는 불교와 천주교의 대립은 적대적이지 않다. ‘웬수’를 끝내 자유롭고 유쾌한 영역으로 끌어내는 이는 주임신부의 측면지원을 받는 ‘우남’이다.

대립은 계속된다. 보리울 마을(혹은 보리울 아이들)과 읍내(혹은 읍내 아이들)는 계급적으로 부딪치고, 씩씩한 축구선수 동숙이나 똘똘하고 당찬 순옥 같은 소녀는 어리석은 남성을 대변하는 듯한 소년들과 성차로 대립한다.

우남과 `웬수` <원장수녀>로 상징되는 불교와 천주교의 대립은 적대적이지 않다. `웬수`를 끝내 자유롭고 유쾌한 영역으로 끌어내는 이는 주임신부의 측면지원을 받는 우남이다.

정작 아찔한 건 느슨하게 펼쳐지는 이런 갈등이 아니다. 소년들이 늦은 밤 원장수녀와 바실라 수녀 방을 훔쳐볼 때, 혈기왕성한 김 신부와 해맑은 바실라 수녀를 투숏의 화면으로 잡아챌 때다. 원장수녀가 텔레비전 드라마에 빠져 “둘이 헤어지려 하고 있어”라고 안타까워할 때, 아이들이 속옷 입은 바실라 수녀를 엿보며 농짓거리를 주고받을 때, 무더운 여름날 신자들 집을 방문하다 시원한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는 김 신부와 바실라 수녀를 카메라가 조용히 응시할 때, 작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어쩌려고…. 물론 착한 영화는 모든 걸 평화롭게 매듭짓는다. 우남 스님의 경우처럼 주임신부와 수녀를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로 낮추기 위해 인간적 ‘약점’을 살짝 노출하거나 암시했을 뿐이다.

소박함이 과잉에 빠져들 때, 순수를 자꾸 더 하얗게 치장할 때 오히려 그 미덕은 갉아먹힐 위기에 처한다. <보리울의 여름>은 이따금 그 함정 속으로 위태롭게 다가선다. 그게 착한 영화의 한계이기도 할 것이다.

이민용 감독 인터뷰

"현장 분위기가 꿈처럼 좋았다"

- <개같은 날의 오후>(1995)로 주목받는 감독이 됐다가 당시로선 대작이었던 <인샬라>(1996)로 ‘쓴맛’을 봐야 했던 이민용 감독이 각고의 시간 끝에 세 번째 작품을 만들었다. 한때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대작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에둘러온 긴 시간에 아쉬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 긴 시간 끝에 작품을 내놓은 소감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건 현장 분위기다.

배우, 스탭 모두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일하면 결과도 좋게 마련이다. 여름날의 촬영현장은 꿈결같이 느껴질 정도로, 인생에서 다시 올 것 같지 않을 만큼 좋았다. 게다가 스탭과 배우도 영화를 보고 만족스러워하고. 결과를 떠나서 이미 감사하는 마음이다.

- 대사가 아주 찰지다가도 갑자기 범상해지기도 한다. 어느 선에서 조율을 했나.

상업영화에서 보편적으로 끌어들이는 큰 사건을 일부러 배제했다. 시골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했는데 그러자니 경쟁력의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스님, 신부, 수녀의 3각 대립으로, 3자간의 화학반응으로 재미를 주려고 했다. 예컨대 우남 스님의 캐릭터는 삼류 땡추 같은 것과 선불교 같은 게 섞여 있는데 짓궂게 보이면서도 내공이 있어 보이도록 했다. 이웃집 남자 같다가도 불교를 표출하기도 하고.

- 성직자의 인간적 면모가 많이 나온다.

종교적인 계율과 엄중함을 표방할 종교영화는 아니니까. 수녀 방은 어떤 남성도 보지 못했을 텐데, 상상으로 만들었다. 수녀가 야한 속옷을 입기도 하고 피부관리를 하기도 한다는 건 직접 들은 이야기다. 또 스님 중에서 술 드시는 분도 꽤 있지 않은가. 종교를 모욕하지 않는 선에서, 관객이 받아들이는 데 큰 부담없는 선에서 묘사했다.

- 배우들의 진짜 면모를 극중 인물에 투사한 것 같은데.

장미희 선배는 평생 수녀처럼 독신으로 사는데 커리어우먼의 독신 여성처럼 계율중심적인 면이 있는 반면 독신이기 때문에 소녀적 감성을 잊고 있지 있는 게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가면서 어쩔 수 생기게 마련인 모성적 느낌도 고려했고. 박영규 선배는 우남 스님 같은 자신의 인생역정이 반영됐다고 했고, 차인표는 겸손하고 성실하고 반듯해서 신부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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