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살인의 추억> 두 배우 김상경, 송강호 [1]
2003-04-23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이혜정

송강호와 김상경이 앉아 있다. 생김생김도, 성격도, 심지어 술먹는 취향도 다른 두 사람은 서로가 ‘이상형’이 아님이 분명하다. 헐뜯고, 미워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골 형사와 서울 형사가 처음부터 삐걱댔듯이, 박두만과 서태윤이 단 한번도 손을 맞잡고 “우리 한번 잘해보자구” 식의 낯간지러운 파이팅을 외치지 않았듯이, 그럼에도 결국엔 서로 비슷하게 분노하고 닮아갔듯이, 송강호와 김상경은 결국 끈적한 혼합보다는 영리한 배치 속에서 빛나는 커플이다. 이것은 <살인의 추억>이라는 덫의, 혹은 봉준호라는 ‘꾀돌이’의 전략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기 화장실 다른 칸에 앉아 있지만 같은 목적을 위해 힘을 주어야 하는, 얼굴을 맞대고 살가워질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떨어질 수도 없는 등이 붙은 쌍둥이 같은 운명을 짊어져야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 운명을 누구보다 제대로 이해하고, 결국엔 운명 이상의 결과물을 세상에 배설해냈다.

송강호가 말하길

김상경, 고전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상당히 모던하더라 김상경을 처음 보았을 때 연기하는 톤이나 외모가 왠지 클래식한 사람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그의 취향을 살펴보건대 그는 상당히 모던한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 쇼핑품목이나 좋아하는 영화스타일까지 그는 정말 모던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얼핏 보면 고지식한 면이 강한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김상경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친구가 아닐까?.

그동안 말은 못했지만, 나 감정있다 이건 술먹는 스타일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씩이라도 매일매일 촬영 끝나고 술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공동경비구역 JSA> 찍을 때처럼!), 김상경은 회식이나 무슨 날이 있으면 한번에 왕창 몰아서 세게 마시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김상경이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 방식이 좀 이상한 것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그래서 상경이와는 술먹을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내, 참다못해 2번, 딱 두번, 그에게 술먹자고 권했다. “우리 간단하게, 진짜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자!” “아… 형님 나도 진짜 마시고 싶은데 오늘 목이 부어서….” “오늘은 어때? 딱 한잔….” ”이걸 어쩌죠?… 감기에 걸려서….” 그러나! 나는 들었다. 그가 전미선씨가 약국신을 찍던 날, 자기 촬영도 없는데 촬영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술먹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까지 참 마음이 안 좋다. (웃음)

쪽팔려서 고백 못했지만, 나 용서해줘 사실 나는 아직 <생활의 발견>을 보지 못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솔직하게 고백을 했더랬다. “그래, 내 꼭 챙겨서 볼게!” 그러나 그러고도 한참은 볼 기회가 없었고, 계속 안 봤다는 말을 하기가 뭣해서, 촬영 중반쯤부터는 마치 그 영화를 본 척하기를 시작했다. ”앗하하하! 그 ‘캔 유 스픽 잉글리시’ 그거 너무 기막힌 대사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물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였다. 아… 미안하다, 상경아. 나 아직도 못 봤다.

김상경이 말하길

송강호, 웃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웃긴 사람 아니더라 <살인의 추억>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강호 형을 사석에서도 한번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영화로만 봤으니까 당연히 되게 코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너무 웃길 거다, 늘 재밌는 말만 할 거다, 이렇게. 그런데 실제로 만나고 나니 아니더라. 그러니까 배우의 특성이 있더라. 굉장히 섬세하고 욕심도 많은. 털털하다거나 엉성하다거나 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같이 연기하는데도 섬세하고 욕심이 있더라. 나는 내가 열심히 빠져서 연기했다고 생각하면 모니터도 안 쳐다본다. 근데 강호 형은 모니터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약간이라도 만족 못하면 항상 테이크를 다시 가는 사람이다.

그동안 말은 못했지만, 나 감정있어요 지난해 12월 양수리 세트장에서 촬영할 때 난 체중을 한참 빼야 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점점 미쳐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느 날 촬영이 끝났는데 강호 형과 친한 신하균이 한잔 하자고 찾아왔다. 강호 형이 하균이 얼굴이나 보고 가라며 그 자리에 오라더라. 당시는 살을 빼려고 밥도 안 먹을 땐데, 가보니 도가니 수육을 먹고 있더라. 내가 원래 고기를 좋아하는데, 도가니 수육은 진짜 좋아하는데… 먹을 수가 없었다. 한 10분 앉아 있는데 눈물이 찔끔 나더라. 강호 형이 정말 얄미웠던 건 “하나 먹어라-”, 이러고선 “맞아, 너 빼지?”, 이랬을 때였다. 그땐 가슴이… 아파서….

쪽팔려 말 안 했는데, 나 미안해요 강호 형도 그랬을 텐데, 촬영을 하는 와중, 난 강호 형과의 묘한 긴장감을 즐겼던 것 같다. 더 친할 수 있고, 더 잘 맞출 수 있었는데 내가 원래 묘하게 어긋난 걸 좋아하는 탓에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강호 형은 나와는 굉장히 다른 사람이다. 임필성 감독도 봉준호 감독에게 그러더라. 주연의 조합을 잘한 것 같다고. 서로 달랐기 때문에 다른 성격의 인물을 잘 연기할 수 있었다고. 서로 아주 친한 사이면 미묘한 게 절대 안 나온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 형은 결국엔 함께 쿵작쿵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석에서는 더 친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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