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 멍청하고 소심하다고? 그게 재미 있잖아 ˝,애덤 샌들러
2003-05-15
글 : 박은영

솔직히 <미스터 디즈>의 애덤 샌들러는 영 아니었다. 작은 피자가게를 운영하던 시골 남자가 생면부지의 삼촌으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으며 인생 대역전을 맞이하지만, 날개없는 천사에 다름 아닌 이 소박한 남자는 그 거액을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희사한다는 이야기. 거기에 우리가 알던 애덤 샌들러는 없었다. 수십년 전 게리 쿠퍼의 역할을 별다른 고민없이 물려받은 듯한 애덤 샌들러는 착한 남자 콤플렉스와 자아도취 증세가 도를 넘어 보였다. 유머도 페이소스도 없는, 애덤 샌들러의 연기는 정말이지 생뚱맞아 보였다.

애덤 샌들러가 우습거나 찡한 건, 그가 열두살짜리 남자애처럼 굴 때였다. 할머니 집을 지키기 위해 골프 선수가 되려 한다거나(<해피 길모어>), 태클에 재능을 보여 풋볼 선수로 발탁된다거나(<워터 보이>),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생아를 입양하려 한다거나(<빅 대디>), 자기 앞가림은 못하면서 남의 결혼식 축가를 도맡아 부른다거나(<웨딩 싱어>) 하는 식으로, 철없는 짓을 퍼레이드로 선보일 때였다. 잘하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잘생기지도 않은, 주변부 청년의 표상. 애덤 샌들러는 언제나 실없고, 철없고, 충동적인 것이 꼭 사춘기에 갓 접어든 십대 소년 같았다. 혹은 스스로 성장을 거부하는 어른아이, 사회적인 성공과는 담을 쌓은 루저의 전형이었다. 십대 소년들은 친구를 바라보듯, 여성들은 남동생을 바라보듯, 애덤 샌들러를 좋아했고 재밌어했다. 그렇다면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애덤 샌들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애덤 샌들러는 ’사랑의 강펀치’에 맞아 맥을 못 추는 여린 남자가 되어 나타났다. 일곱 누이의 간섭과 희롱 속에서 자라나 여자 앞에 나설 용기가 없는 숙맥 같은 남자. 때로 폭력적인 충동이 튕겨나오지만, 차마 남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남자.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에 감복해, 조롱하는 세상과 대번에 맞장뜰 수 있게 된 남자. 애덤 샌들러는 이 영화에서 전과 같고 또 다르다. 우리가 알아온 그 소심한 루저가 사랑에 빠진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칭찬에 인색한 평론가 짐 호버먼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애덤 샌들러의 매력에 대한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호평한 이 용감한 캐스팅으로, 애덤 샌들러 안에 잠자고 있던, 어둡고 나약한 ‘남성’은 깨어날 수 있었다.

애덤 샌들러는 최근작 <성질 죽이기>에서 괴상한 성격이상자들로 가득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떠밀려 참여하는 비교적 멀쩡한 남자 역할을 맡았다. 역시 기존 캐릭터에서 약간 변주된 인물. “왜 그렇게 멍청하고 소심한 역할만 맡는 거죠?”라는 질문에 대한 애덤 샌들러의 답은 명쾌하다. “내가 자라면서 그런 것들을 보고 웃고 재밌어했으니까. 아무것도 해낼 것 같지 않던 사람이 결국 뭔가를 해내는 이야기가, 난 좋았다.” 애덤 샌들러는 그 자신이 분신들과 닮아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라이브 코미디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불편해, 영화 작업을 선호하게 됐다고 말할 정도로 숫기가 없다. 넓고 얇은 관계를 꺼려, 개인 프로덕션에서 옛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다. 잘난 척하지 않는, 위협적이지 않은 이 남자는 그래서 종종 그의 어마어마한 몸값을 잊게 만든다. 양지에서 음지를 지향하는 이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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