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다른 방식의 로맨틱코미디,<베터 댄 섹스>
2003-05-20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Story

조쉬와 씬은 시드니의 한 파티에서 마주친다. 런던에 거주하는 사진기자 조쉬(데이비드 웬햄)는 파티에서 만난 씬(수지 포터)과의 낭만적인 하룻밤을 상상한다. 의상디자이너인 씬 역시 외지에서 온 여행객과의 부담없는 섹스를 원한다. 경쾌한 육체의 거래로 시작된 둘의 관계는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자 감정이 끼어들며 불편해진다. 조쉬와 씬은 이제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곧 런던으로 돌아가야 하는 조쉬. 조쉬와 씬은 서로의 감정을 고백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한다.

■ Review

자유로운 만남을 격려하는 낯선 곳에서의 로맨틱한 파티. 사진기자 조쉬는 시드니에서 만난 씬을 바로 그 기회가 허락한 흥미로운 상대쯤으로 여긴다. 책임과 관계의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없을 외지인. 씬은 그렇게 지루한 일상에 찾아온 흔적 없을 기회라고 여기며 조쉬를 선택한다. ‘2일간 탈선이라, 내가 가는 것도 알고. 정말 입맛당겨.’ 조쉬는 그렇게 생각한다. ‘재미있겠어. 귀찮게 매달리지 않을 테고.’ 씬도 그렇게 생각한다. 떠나야 할 조쉬나 남아 있을 씬 모두가 기대고 있는 생각은 바로 이것이다. 사랑이라는 말 따위는 당장 옷을 벗어야 만족을 얻을 육체의 욕망에 밀려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일은 엇갈린 방향으로 흐른다.

둘 사이에 씬의 친구 샘이 등장하고, 서로가 감정을 따져 묻고, 싸우고, 또 화해하고, 시간에 비해 격하게 진전된 관계는 감정의 주름들을 만들어놓는다. 예정된 작별을 확인한 뒤에야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던 두 사람은 3일 만에 그런 계약이 성사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일생 동안의 만남과 작별을 3일 만에 압축한 듯 조쉬와 씬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사랑이라는 몹쓸(!) 감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호주의 영화감독 조나선 테플리츠키의 데뷔작 <베터 댄 섹스>는 어떻게 섹스와 사랑이 서로를 부르는지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다. 공허한 믿음보다는 작은 디테일들로 그 점을 보여준다.

우선, <베터 댄 섹스>는 욕망을 무시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랑밖에 없다고 설파하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인 조쉬와 씬은 섹스를 즐거워하고, 편안해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 행위를 구경거리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이 만나 하는 일이라고는 침대 위에서의 속삭임밖에 없지만, 정작 관객이 보는 건 인물들의 신체 일부(그것도 눈의 쾌락을 무시하는 수준의 신체들, 말하자면 얼굴 표정 혹은 하반신의 사소한 부위)와 정사 중에 내뱉는 속마음의 표현이 거의 전부다. 그렇다고 <베터 댄 섹스>가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에선 로맨틱한 톤을 강화하기 위해 대개 섹스를 생략하는 것에 반해 <베터 댄 섹스>는 섹스 자체를 옹호한다.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는 과정이 무엇이 되었건, 결국 사랑의 힘은 운명의 상대를 예정된 갈등 속에서 짝지어준다는 미덕을 갖고 있다. <베터 댄 섹스>는 그 약속을 믿지 않는다. 끝없이 연기되며 남의 일처럼 보이는, 그래서 ‘영화 같다’는 말이 횡행하도록 하는 그 환상의 구조를 벗어나 섹스와 사랑의 함수관계를 질문한다.

결국, 조쉬와 씬은 마치 <비포선라이즈>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의 근처까지 간다. 하지만, 영화는 섹스가 목적이라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 관계 속에서 사랑을 배워간다고 주장한다.

결국, 조쉬와 씬은 마치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의 근처까지 간다. 하지만, 영화는 섹스가 목적이라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 관계속에서 사랑을 배워간다고 주장한다. 조쉬와 씬은 서로를 사랑하기보다, 섹스를 사랑했지만,그러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것이 그 둘만의 경험만은 아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다. 호주 감독 조너선 테플리츠키는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가 주저없이 당도하는 그 목적지에 귀납적인 사례들을 덧붙이며 돌아서 간다. 조쉬와 씬은 카메라 앞에 앉아, 사실 섹스가 목적이었지 그렇게 끌린 편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또는 그와 그녀의 친구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섹스론을 펼쳐낸다. 허벅지를 핥을 때가 좋다거나 잠에서 덜 깼을 때가 좋다거나 등등. 상쾌한 웃음은 잘 짜여진 판타지가 아니라 모두가 알고 느끼는 그런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들에서 온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다. 조쉬와 씬이 만나 겪는 3일간의 시간은 삶의 압축판처럼 보여진다. 관심을 갖게 되고, 질투를 느끼고, 서로를 이해해야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삶의 여정에서의 그 모든 선택들을 단 3일 동안의 짧은 만남에 담아내고 있다. 호주판 로맨틱코미디라고 불러도 무방할 <베터 댄 섹스>는, 그러나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가 다루는 주제 안에서 방식을 달리하고, 시선을 따로 둠으로써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 조너선 테플리츠키 감독 인터뷰

“연애의 ‘실제상황’ 그렸다”

어떻게 이 영화의 주제를 고안했는가. 저예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단순한 이야기구조로 3일 동안의 만남을 연구해볼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실제로 시드니에 거주하는 한 여자와 런던에서 지낸 적이 있다. 이런 것들을 기초로 조쉬와 씬 사이의 관계를 세밀화하기를 원했다.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와 <베터 댄 섹스>의 차이는. 대부분의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들은 섹스의 언저리에 있거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는 커플들을 설정하거나, 판타지를 보여주거나, 혹은 캐릭터 중 한 명의 완벽한 소망충족에 초점을 맞춘다. 일반적으로 무척 감정적으로 된 판본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종종 그런 로맨틱코미디에서 관객은 ‘행복하게 영원히’ 살게 되는 연인들이라는 엔딩에 남겨진다. 말할 것도 없이 그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베터 댄 섹스>가 판타지보다는 끌리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행동하게 되는 실제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베터 댄 섹스>는 모던한 연인 사이의 성적 행동을 더 집중적으로 탐구해본 것이기 때문에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경계 바깥으로 나가보려 노력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은 <베터 댄 섹스>지만 섹스가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조쉬와 씬 사이의 섹스와 그 태도가 재미있고, 친밀하고, 건강한 것으로 보이길 원했다. 영화속에서 섹스는 종종 불쾌한 장애나 판타지로 묘사된다. 하지만, 나는 긍정적인 톤으로 영화를 만들기를 원했다. 섹스는 재미있으며, 즐겁다. 섹스는 인간관계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고, 열린 실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웬햄과 수지 포터와의 작업은 어떠했는가. 그들과의 작업은 멋진 경험이었다. 둘 모두 똑똑하고 재능있는 배우들이다. 특히 영화에서 두 사람은 그들 사이의 강한 화학작용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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