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거 참,감각 좋다 <베터 댄 섹스> OST
2003-06-02
글 :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이 영화의 광고문구에 “딱 요즘 여자와 딱 요즘 남자가 만났다”는 말이 눈에 띈다. 딱 요즘 여자와 딱 요즘 남자라…. 원 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그들 말이다. 이런 영화 찍기, 쉽지 않다. ‘딱 요즘’이니 누구나 공감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게 함정이기도 하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또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둔하게 그려냈다가는 지겹다는 소리 듣기 딱이다.

그런데 <베터 댄 섹스>는 최소한 지겹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 것 같다. 조너선 테플리츠키라는 젊은 감독의 데뷔작답게, 영화가 톡톡 튄다. 화면은 감각적이다. 침대에 누워 있는 두 남녀를 비추는 첫 장면은 꼭 침대 광고 같고 그 다음에 나오는 소품들의 클로즈업은 액세서리 광고 같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택시장면은 꼭 콘돔 사용을 권장하는 서양 공영방송의 광고 비슷하다. 음악이 감각적으로 거기에 맞아 돌아간다. 이력을 보니 감독은 뮤직비디오로 명성을 날리던 사람이란다.

물론 뮤직비디오처럼 장면장면이 음악과 맞아나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장편영화 하나 전체를 어떻게, 뭐하러 그렇게 하나. 그렇게 한다고 좋은 영화가 되면 또 모르지만, 그랬다가는 좋은 영화가 될 확률이 점점 낮아진다. <베터 댄 섹스>는 어느 때 음악이 나와야 하고 어느 때 쉬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음악을 다루었다. 장면전환과 이어지기도 하고 끊기기도 하며 때로는 장면전환을 유도하기도 한다. 점잖게 넘어가야 할 곳에서는 점잖게 넘어가고 휙휙, 젊은 뮤직비디오처럼 해야 할 장면에서는 또 그렇게 한다. 하여간, 결론적으로, 감각적인 영화다.

음악을 맡은 사람은 데이비드 허시펠더. 호주 영화계에서는 영화음악의 큰손 가운데 하나로 통한다. <샤인> <엘리자베스> 등으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유 앰 아이(You Am I)라는 특이한 이름의 밴드가 노래를 넣어주었고 호주에서 제일 유명한 가수로 정평이 나 있는 카일리 미노그가 부른 노래도 들어 있다. 그 노래는 약간은 우아한 스탠더드 재즈풍이다. 요새는 테크노적인 노래도 하는 카일리 미노그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는 조금 뜻밖이다. 그러나 과연 명가수답게 멋지게 소화한다. O.S.T 앨범은 호주쪽의 올스타 멤버들이 모인 격이다. 이만큼 유명한 이름들을 동원하여 만든 영화면 확실히 밀어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감독의 신선한 감각이 보증수표였던 셈이고.

이렇게 감각적으로, 뮤직비디오처럼, 광고처럼 영화를 만드는 것은 성공적인 트렌디영화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해답처럼 보인다. 어떻게 젊은 사람들의 감각에 공감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을까? 감각적으로 만들 것. 무조건. 그런데 보다보면 이런 영화는 또 질리는 구석이 없지 않다. 너무 고양이처럼 약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매력적인 화면과 재치있는 구성 앞에서 마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입을 다물고 그 감각 자체에 담담해진다. 그럼 어쩌라고? 뭐 그렇다는 거지. 휴. 영화 만들어놓고 좋은 소리 듣기 정말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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