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조지 클루니 감독 데뷔작, <컨페션>
2003-07-25
글 : 김영희 (한겨레 기자)

낮엔 피디 밤엔 킬러‥꽉찬듯 텅빈 삶

조지 클루니의 감독 데뷔작,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의 찰리 카우프만 각본, 스티븐 소더버그 제작, 샘 록웰·드루 배리모어·줄리아 로버츠·조지 클루니 출연에 브래드 피트, 매트 데이먼의 카메오까지…. <컨페션>(원제 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은 여러모로 화제를 모을 만한 작품이다. 게다가 소재인 척 배리스라는 실존인물의, 소설 같은 자서전 자체가 흥미롭다. 60~70년대 미국 텔레비전의 인기 프로그램이자, 방송을 저질 쓰레기통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한몸에 들었던 <데이팅 게임> <신혼부부게임> <땡쇼>의 피디인 척 배리스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CIA의 청부킬러로 동유럽 등지에서 33명을 죽였다고 주장한 것이다. 클루니는 다큐멘터리 같은 실존인물들의 인터뷰에 황색 톤의 텔레비전 쇼 같은 낮생활과 블루 톤의 누아르 분위기의 밤생활을 교차해가며, 가벼운 팝송처럼 배리스의 이중 삶을 깔끔하게 스케치해나간다.

별 것 아닌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는 길로 스파이의 생활을 선택한 배리스(샘 록웰)는 평범한 삶에 신물난 인간들이 가짐직한 이중적 욕망의 투사체다. 보기에 따라 <컨페션>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그러하듯, 사람들을 정신분열로 몰고가기 딱 십상인 70년대 미국 대중문화의 이면을 엿볼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방송에 열광하는 대중들은 신형 냉장고를 얻기 위해 기꺼이 배우자를 팔아먹고(<신혼부부게임>), 음치임을 조롱당하면서도 텔레비전에 나오려 기쓰는(<땡쇼>) 모습을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 벌거벗은 몸으로 뉴욕의 모텔 방 안에 서서 배리스가 “개뿔도 못 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텔레비전에선 레이건의 취임연설이 흘러나온다.

클루니의 데뷔작은 보다 야심찬 작품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생존인물이란 점 때문인지, 클루니는 시대의 숨막힐 듯한 공기와 그 속에서 절망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촘촘히 실어나르기보다는 흥미로운 삶을 산 사내의 이야기에서 딱 멈춰버린다. 배리스는 자신이 만들어간 프로그램을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구원의 대상은 히피 같은 기질의 페니(드루 배리모어)뿐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느껴지는 배리스의 낮생활에 대한 고민은 충분하지도, 깊지도 않다.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대중은 애정을 담은 풍자의 대상이 아니라, 배리스의 삶의 풍경일 뿐이다. 그를 청부킬러로 이끄는 CIA 요원 조지 클루니나 줄리아 로버츠가 밋밋하게 보이는 건 당연하다.

줄리아 로버츠는 영화 속에서 “자신을 경멸하는 자는 경멸할 줄 아는 자신을 존경한다”는 니체의 말을 들려준다. 그것이 배리스의 변명이자 미국 대중문화 생산자들의 자족적인 자기 변명처럼 들린다면 너무 심술궂은 해석일까. 샘 록웰은 이 영화로 올 베를린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안았다.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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