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큼 성공할 것 같은 영국영화에는 무조건 ‘제2의 <풀 몬티>’가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큼 <풀 몬티>는 영국 영화계에서 적은 예산으로 성공한, 잘 만들어진 코미디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이지 제2의 <풀 몬티>가 나타난 것 같다. <캘린더 걸스>는 요크셔의 평범한 중산층 여성들이 옷을 벗는, 여성판 <풀 몬티>라 할 만한 스토리에 흥행성적도 좋아서 지난 9월5일 개봉, 조니 뎁이 이끄는 <캐리비안의 해적들: 블랙펄의 저주>의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탈취했다.
<캘린더 걸스>는 지난 1999년 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요크셔 데일즈의 부녀회에서는, 그 지역에서 존경받던 한 회원의 남편이 백혈병으로 죽고, 그가 치료를 받았던 병원이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하자 그해에는 좀 특이한(!) 달력을 만들어 팔기로 한다. 부녀회 회원들의 누드사진을 담은 이 달력은 그 지역에서는 물론, 영국과 미국 언론에까지 알려지면서 당사자들이 생각지도 못한 대히트를 했다. 미국에서는 그해 만들어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달력보다 많이 팔렸다나. 사진들은 매달 이들이 하는 주요 활동인 빵굽기, 잼 만들기 등을 담았고, 중요한 부분들은 사려깊고 요령있게 가려졌다.
할리우드가 이렇게 좋은 이야깃거리를 그냥 지나칠 리 없어서, 디즈니의 자회사인 브에나비스타가 영국 회사인 하버프로덕션을 끼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결과, 지금의 <캘린더 걸스>가 있게 됐다. 물론 영화는 실제 이야기를 뼈대로 해서 좀더 유머스러운 상황들이 가미됐다. 줄리 월터스(<빌리 엘리어트> <해리 포터>)와 헬렌 미렌 같은 쟁쟁한 영국 여배우들의 호연과 앙상블도 이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영화감독은 <세이빙 그레이스>로 이미, 작은 마을에 사는 영국의 중년 중산층 여성의 이야기를 코믹하고 유머스럽게 다루는 데 빼어난 솜씨를 보여준 나이젤 콜이 맡았다.
이 영화는 실제의 주인공들이 만들었던 달력처럼 따스한 유머와 함께 영국식의 밉지 않은 짓궂음을 보여준다는 게 중평이다. 한편에서는 영국영화는 왜 항상 계급을 중심축으로 한 영화들만 성공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힘들고 못사는 노동계층 사람들의 유머와 애환(<트레인스포팅> <풀 몬티> <스위트 식스틴> <빌리 엘리어트>)과 중산층 이상 사람들의 낭만적이고 즐거운 삶(<노팅 힐>)으로 성공하는 영국영화의 타입이 정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