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감독 이재용의 스타일 분석 [1]
2003-10-02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감독 이재용을 구성하는 7가지 키워드

충돌과 조화의 미학을 찍는다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스타일리스트는 이명세 감독이다. 그러나 멋진 이미지에 버금갈 만큼 알맹이가 얼마나 알찬가 하는 점에서 그의 스타일은 갈증을 일으키곤 한다. ‘디자인됐다’는 인공미를 주저없이 뿜어내는 이현승, 민병천의 비주얼은 빼어나지만 독창적인 세계 구축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허전함이 남는다. <정사>와 <순애보>를 거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이른 이재용 감독의 영화들은 스타일리스트의 자의식을 앞선 감독들만큼 드러내지 않지만 ‘이재용 스타일’이라 부를 만한 일관된 그 무엇을 보여준다. ‘이재용 스타일’에선 스타일이 형식이자 곧 내용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경계 안에 머물러서는 그 전모를 밝히기 어렵다. 드라마와 캐릭터가 전복적인 듯하면서 끝내 위험하지 않고, 섹스의 공간과 상황을 변태스런 지경으로 몰고 가도 퇴폐로 흐르지 않으며, 사랑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듯하면서 사랑의 판타지로 끊임없이 회귀하는 기저에는 형식이 곧 내용인 이재용 감독의 스타일이 작용한다. 그 스타일이 홍상수 감독과 같은 일상성의 영화와 만나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까? <순애보>는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쓸쓸한 일상이라는 점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통하지만 그 일상이 지닌 맥락은 ‘독립적’이다. <순애보>의 일상은 인간 특히 지식인의 속내를 차갑게 비관적으로 해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간의 삶을 비루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나 체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도 않는다. <순애보>의 일상은 온화한 개인주의로 가득 차 있다.

‘이재용 스타일’의 핵심은 이질적인 것들이 부딪치는 ‘충돌의 미학’에 있다. 극과 극이 충돌하지만 거친 파열음이 일어나기는커녕 기묘하게 일어나는 조화가 매력적이다. 제목들부터가 그렇다. <정사>는 안토니오니의 <정사>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질퍽한 적나라함을 느끼기 딱 좋다. 물론 영화는 그렇지 않다. 양식미 넘치는 우아한 사극을 만들면서 ‘스캔들’이라 이름 붙이는 것도 엇나가는 방식이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가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통해 만난다고 했던 영화의 제목이 <순애보>다. 이재용 스타일을 살피게 해주는 키워드들 역시 대체로 충돌되는 어휘로 구성된다.

1. 코스모폴리타니즘

‘이재용 스타일’에 어떤 기저처럼 깔려 있는 것이 코스모폴리타니즘이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조선시대 사대부와 처자들이 아무리 휘젓고 다녀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게 <스캔들…> 풍경이다. 바로크 음악과 사극의 양식미라는 이질적 요소가 충돌해 이토록 어울릴 수 있다는 건 정말 이상하다. 가채를 뒤집어쓴 상류층 부인네들의 방 안에 서양 망원경과 시계가 툭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다. 무엇보다 <스캔들…>은 비슷한 시기, 지구 반대편의 서양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한 원작을 꼭 찍어 그대로 옮겨왔음에도 수입품이란 티가 잘 나지 않는다. 각본·연출은 물론 편집까지 도맡아 개인적 취향을 가장 잘 드러낸 <순애보>는 같은 시간, 다른 나라의 다른 도시에 살지만 결국은 다르지 않는 조건을 사는 한국과 일본 젊은이의 일상을 대차대조표처럼 보여줬다. 일본에서 일본의 배우들과 찍은 <순애보>의 반쪽은 마치 일본인 감독이 연출한 것처럼 일본 안에 푹 젖어 있는 느낌이다. 이국적 취향은 세 영화의 결말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주인공들이 <정사>에서 브라질의 리우로, <순애보>에선 알래스카로, <스캔들…>에선 연경으로 떠나가버린다.

감독의 말 >> “프랑스 원작소설로 <스캔들…>을 만들기로 하고 우리의 옛 좌식문화를 조사하면서 애초 구상을 우아하게 그려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예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서 그곳 문화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어볼까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대주의라는 오해는 하지 말아주길. 확실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내 인생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영화는 백일몽처럼 나를 세상 모든 곳에 데려다주었다(심지어 그는 중학생 때 영화에 등장한 뉴욕 거리가 아주 익숙해 뉴욕 지하철을 어떻게 타면 되는지 감이 잡힐 정도였다). 내 삶을 보면 고향인 유성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한국 밖으로 끊임없이 떠나고 있다. 떠난다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정사>에서 서현(이미숙)이 브라질로 떠나는 건 어항 속에 갇혀 살던 여자가 스스로 새로운 자아를 찾아 자기 삶을 살기 시작하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늘 양가감정이 있다. 브라질은 원시적인 낙원의 이미지가 있지만 동시에 병들고 가난한 저개발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다. 알래스카는 순수하고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지만 유린네이션이란 포르노 사이트가 만들어지는 곳이고 알코올중독의 원주민이 수두룩한 곳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안에 한 가지 면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2. 이성주의 vs 감성주의

우연찮게도 <스캔들…>과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는 한 여인네가 겨울 호수의 빙판 아래로 빠져죽는 장면이 나온다. 기구한 운명에 휩싸인 여인네를 삼켜버린 얼음 구덩이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클로즈업도 비슷하게 배치돼 있다. 그러나 두 얼음 구덩이의 느낌은 다르다. 김기덕의 얼음 구덩이는 욕망의 슬픈 운명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투박한 즉물성의 이미지다. 이재용의 얼음 구덩이는 그 드라마적 기능은 같되 비할 데 없이 탐미적이다. 여인네가 고이 간직했던 붉은색 목도리는 눈과 얼음의 차디찬 흰빛과 곱게 대비를 이룬다. 또 목숨을 빨아들인 구덩이에 떠 있는 얼음 조각들에는 곱고 투명한 얼음 결정체가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처연한 운명과 예쁘고 고운 이미지의 충돌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순애보>에서 잠시 멈칫거렸을 뿐, <정사>와 <스캔들…>은 현란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결코 방정맞거나 과장스런 기교로 빠져들지 않는다. 늘 멈춰 있는 듯 조용히 움직인다. <정사>의 숨막힐 듯한 미장센의 미학은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미술에만 20억원을 들여 ‘스타일리시한 사극’의 본때를 보여주는 듯한 <스캔들…> 역시 화려하되 침착하다. 이미지가 드라마를 압도하지 않고 드라마가 이미지에 대한 미적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런 이재용 스타일은 감성적으로 다가오지만 그 감성이 이성으로 단단히 제어되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재용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계몽군주’로 불린다(대부분의 감독이 모든 걸 자기 중심적으로 처리한다는 점에서 ‘왕자’로 불리는 것과 비교해). 모든 스탭이 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맡은 바 일을 각자 완벽하게 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주의·주장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배려깊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감독의 말 >> “스타일 있는 감독이란 개념이 왕가위나 라스 폰 트리에처럼 기교 넘치는 현란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나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디테일을 꼼꼼히 계산하면서도 그것이 내용과 얼마나 부합되는가부터 본다. 카메라가 왜 그렇게 움직여야 하는지 나 스스로 설득할 수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다. 내 머릿속의 그림이 그대로 다 드러나길 바라지만 전체의 흐름이 먼저다. 큰 왜곡보다 안정되고 균형미를 이룬 미장센을 좋아해서 핸드헬드조차 써본 적이 별로 없다. 내 기본 성향은 미화보다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에 있다. 얼음 구덩이 장면에서도 사람이 빠졌을 때 어떻게 빠졌을까부터 연구하자는 주의다. 그런데도 그 얼음 구덩이가 미학적으로 느껴진다면 내가 워낙 예쁘고 아름다운 걸 좋아한 결과일 거다.”

3. 전복성 vs 판타지

그의 영화는 한결같이 성(性)스러우면서 성(聖)스럽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섹스라는 소재는 예상 밖의 공간과 상황, 관계에서 등장한다. 먼저 유사 근친상간. <정사>에서 서현과 지현 자매는 우인과 차례로 관계를 가졌을 것이고, <스캔들…>에서 사촌지간인 조원(배용준)과 조씨 부인(이미숙)은 만나기만 하면 섹스를 공모하고 기약한다. <정사>에서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제사를 지내는 동안 며느리는 집을 빠져나와 공공장소인 오락실에서 동생의 약혼자와 에로틱한 정사를 벌인다. 엄숙함에 대한 전복적 도전은 <스캔들…>에서 똑같이 차용된다. 사돈댁 사당에서 엄숙한 제의가 치러지는 동안 별채에선 기생과 질펀한 놀음을 벌인다. <스캔들…>에서 조원과 숙부인(전도연)이 환희에 차 벌이는 정사신은 비록 전신 노출이지만 지극히 교과서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싱거울 지경이다. 이재용 스타일이 빛을 발하는 건 아무리 변태스런 설정을 해놓아도 그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순애보>에서 우인이 동사무소 안에서 또 공공 화장실에서 아주 이상한 짓을 해도, 아야가 포르노 사이트에서 어떤 아르바이트를 해도, 아야의 동생이 그런 누이의 몸을 관음해도, 아야의 어머니가 스와핑을 시도해도 그건 비정상의 행위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전복성 속에 사랑의 판타지가 꼭 끼어든다. <정사>의 서현은 안락한 중산층의 삶을 버리고 동생의 애인과 먼 타향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이뤘을 것 같다. <순애보>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래스카에서 만난 우인과 아야는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들은 애뜻한 순애보를 써내려갔을 것이다. <스캔들…>에서 조씨 부인과 조원은 유혹과 배신의 험난한 게임을 헤치고 사랑의 완성을 이뤄내고야 말았다.

전복성과 판타지가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건 양쪽 모두 딱 그럼직할 정도만 존재하도록 배치하는 솜씨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않는 중용과 절제는 이재용 스타일의 또 다른 키워드다.

감독의 말 >> “사실 엄숙함을 잘 못 견딘다. 엄숙함은 감정이입이나 몰입이 돼야 가능하다. 예컨대 교회나 절에서 기도하는 게 나에겐 불가능하다. 몰입이 안 되고 자꾸 거리감을 두게 된다. 이런 성향 때문에 경건한 제사와 아주 사적인 혹은 금기적인 섹스를 대비시키고 충돌시키는 걸 좋아하는 건지 모른다. 또 사랑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완벽한 그 무엇이 있을 거란 판타지를 갖고 있지만 그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에 대해서는 회의하는 편이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고 결론내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단정짓는 것을 늘 유보한다. <정사>의 엔딩도 상업영화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끝냈을지 모른다. 브루클린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이정재가 담배를 피우고 있고, 카메라가 그 위로 올라가면 이미숙이 백인 남자 밑에 누워 있는 거다. 행복은 약속될 수 없다. 다만 있을 수 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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