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야드비가의 베개
2001-05-23
야드비가

Story

매혹적인 여인 야드비가(일디코 토트)와 결혼한 온드리스(빅토르 보도)는 온몸이 폭발할 듯한 기쁨과 기대를 갖고 첫날밤을 맞이한다. 그러나 야드비가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동침을 거부하는데, 결혼 전에 사귀던 바람둥이 법률가 프란시(로만 루크나르) 때문이라는 사실이 곧 알려진다. 아내를 잃을까봐 두려워진 온드리스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 경찰 밀정 노릇까지 떠맡지만 야드비가와 프란시의 관계가 정리되기는커녕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아이까지 맡아 기르게 된다.

Story

초하(初夏)를 향해가는 극장가에는 또 하나의 정격 드라마 한편이 내걸린다. ‘또 하나’라 함은 헝가리영화인 <야드비가의 베개>가 운명에 사로잡힌 캐릭터와 남자배우의 연기력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드라마라는 점에서 한국영화 <파이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야드비가의 베개>는 자의식 강한 여성관객에게 편치 않은 감정을 줄 소지가 다분하다. “여자로 변신한 악마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울부짖는 온드리스에게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야드비가의 불륜은 맹목적이고, 그런 야드비가를 끝내 사랑하는 온드리스의 고통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남자를 파멸시키는 요부’ 모티브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거두고 본다면, 이 영화는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의 에너지가 스크린에 음화(陰畵)로 찍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질투에 사로잡힌 오셀로가 순결한 데스데모나의 목을 조른 것과 달리 질투에 사로잡혔으나 순수한 남자가 어리석고 뻔뻔스러운 여자 때문에 스스로 죽음에 이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온드리스 역을 맡은 빅토르 보도는 성적인 에너지와 사랑, 질투 등으로 광란하는 젊은 남자의 얼굴과 육체를 과격하게 그려내 보이는데, ‘저것이 혹시 헝가리안 랩소디를 통해 감지했던 헝가리적인 에너지가 아닐까’ 싶을 만큼 낯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슬로바키아 분리주의와 반유대주의 등 국가와 민족, 인종이 얽힌 헝가리사회의 정치적 소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으나 감독의 주된 관심사는 운명과 사랑, 성적인 에너지의 무한한 힘과 파괴적인 충동, 대를 잇는 카르마 등에 놓여 있다. 온드리스가 군에 입대하던 날 야드비가의 모습이 사라진 플랫폼에 오랫동안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과 온드리스의 시신 앞에서 기도하며 오열하는 한 남자의 비밀을 겹쳐 놓으면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카르마’가 해명된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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