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환상적 캐스팅의 로맨틱코미디 <러브 액추얼리>
2003-11-03
글 : 이지연 (런던 통신원)
크리스마스용 종합사랑세트

크리스마스 얘기를 하기에는 다소 때가 이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여기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 광고가 TV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직 얼떨떨하기는 하지만, 두달 뒤면 뭔가 멋진 시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을 주는 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금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두달 남았다고 치면, 그 절반 정도인 한달 뒤에 도착할 영화 <러브 액추얼리>는, 각양각색의 사랑의 맛을 담은 크리스마스용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다.

영국 연예계 스타 한데 모은 캐스팅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노팅 힐>의 제작팀이 내놓은 이 영화의 감독은 리처드 커티스. 세 영화의 각본을 썼던 커티스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러브 액추얼리>는 세 영화들이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로맨틱코미디의 세계를 이어간다. 그 전의 영화들과 차이가 있다면, 이 영화는 하나의 사랑 이야기로 풀려나가는 게 아니라 아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다양한 사람들을 모두 쟁쟁한 스타들이 연기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선물세트의 포장인 영화의 포스터가 깔끔하게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 포스터에 나타나는 열명의 배우 중에서 언뜻 눈에 띄는 유명(!) 배우들만 해도, 휴 그랜트, 콜린 퍼스, 에마 톰슨, 로완 앳킨슨, 리암 니슨. 중년의 록스타를 멋지게 연기해서 쇼를 혼자 훔쳐간 것 아니냐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은, 빌 나이티에 의하면, 이 배우들이 모여 리딩을 할 때 만약 거기에 누가 폭격이라도 했다면, 영국 연예계 전체가 휘청했을 거라고.

어떻게 이런 환상적인 캐스팅이 가능했을까? 프로듀서인 던컨 켄워시에 의하면 첫째, 리처드 커티스의 훌륭한 대본을 모두 마음에 들어한데다, 둘째, 지금까지 쌓아온 워킹 타이틀의 명성과 친분관계, 셋째, 모두가 조연인 일종의 앙상블영화이기 때문에 설령 영화가 망한다 해도 각 스타들의 명성에 금이 갈 위험부담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스타들이 출연했지만 오히려 개런티 협상에서는 유리한 점도 있어서, 두명의 스타,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했던 <노팅 힐>보다 제작비가 적게 들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랑은 가득히(Love is all around)’라는 전제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이 영화에서 휴 그랜트가 맡은 역할은, 독신의 영국 총리. 어떤 사연으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다우닝가 10번지를 휴 그랜트에게 내주게 되었는지 그 사연은 알 수 없으나, 그의 방에 농담처럼 걸려 있는 마거릿 대처의 초상화는 이 총리가 영국 보수당 출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프로듀서인 켄워시에 의하면, 처음에 커티스와 자신은 이 새 총리가 노동당 출신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작업을 했는데, 막상 영화를 끝내놓고 보니 보수당 출신처럼 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다고 영화에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휴 그랜트가 영국 총리를?

아마 실제였다면 역대 영국 총리 중 가장 사랑스러운 총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휴 그랜트의 상대역은 영국에서 장수하는 최고의 인기 TV드라마 <이스트 엔더스(East Enders)>의 스타인 마틴 매커체온이 맡았다. <이스트 엔더스>에서도 그랬지만, 평범하고 서민적인 이미지에, 자신이 남자친구에게 채인 이유는 허벅지가 굵어서라고 믿는 이 순수한 아가씨의 모습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주인공 브리짓을 연상시킨다. 매커체온 자신이 지적하듯이, 이 캐릭터는 보통의 여자들이 주인공과 동일시할 수 있는 평범함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국의 관객에게 미안한 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영국 사람들만이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을 영화 속 여기저기에 숨겨두고 있다는 점이다. 매케체온처럼 이 영화는, 영국 사람들에게, 이 쟁쟁한 영화배우 스타들보다 더 친숙하고 더 인기있는 TV스타들을 영화 스크린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을 준다. 한국 관객은, <선생님(Teachers)>이라는 이제 세 번째 시리즈까지 만들어진 TV드라마 스타인 앤드루 링컨이나 <마이 패밀리(My Family)>라는 TV코미디에서의 어리숙한 청년 역할을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보여주는 크리스 마셜의 능청스런 연기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영화가 제공하는 스타들의 성찬은 너무나 풍요로워서, 한국의 관객도 한두명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스타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 이다. 몇 가지 힌트를 던지자면, <슈팅 라이크 베컴>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키이라 나이틀리,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미스틱 리버>에도 출연한 로라 리니, 그리고 인터내셔널 마켓을 의식한 탓인지 포르투갈의 인기 가수이자 배우인 루키아 모니즈가 콜린 퍼스의 상대역으로, 독일 MTV스타라는 하이케 마케슈가 요염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로라 리니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구릿빛 피부의 섹시남은 브라질에서 온 촉망받는 배우 로드리고 산토로이다. 아!, 그리고, 살짝, 카메오로 클라우디아 시퍼가 나온다는 얘기도 있으니 직접 확인하시길… Happ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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