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3 | 카메라 앞에 서기
이 무렵 알음알음 지인들의 소개로 영화촬영장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카메라가 어딨는지도 모르고 뛰라면 뛰고, 서라면 서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아는 후배의 소개로 단역으로 출연했다 수모를 당한 <러브스토리>(1996)와 <초록물고기>(1997)를 잊지 못한다. “비디오점 주인이었는데, 배창호 감독님은 보폭이나 손높이까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오면 다시 가야 해요.” 연극을 했다면서 그것 하나 단박에 못해낸다고 타박을 먹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
구박이라면 이창동 감독 또한 뒤지지 않았다. 심혜진에게 수작 걸다 한석규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양아치 중 한명으로 나왔던 그는 상대가 상대인지라 집단 구타하는 장면에서 멈칫거리다 감독으로부터 “니네 뭐하다 온 새끼들이냐?”는 불호령을 들어야 했다. 참다 못한 이 감독은 직접 시범을 보이기까지 했고, 상대배우인 한석규가 “우리 한번에 갑시다. 괜찮으니까 힘껏 쳐요”라고 다독인 다음에야 간신히 주먹을 뻗을 수 있었다.
“단역배우로 투입되면 기부터 죽어요. 아는 사람도 없지. 카메라도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는데다 하루종일 기다려야지. 주인공이야 떠들면 되는데 단역은 긴장하고 있다가 부르면 가서 해야지. 사실 배우라는 족속은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똥구멍 살살 긁어줘야 더 잘하거든요. 그건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똑같아요.”
“이제서야 풀리는구나” 싶을 때도 없지 않았다. <미지왕>(1996) 오디션에 응했는데, 지원자 3∼4천명 중 4차 오디션 끝에 20명 안에 들었다. 주인공은 절대 미남이 아닌 사람을 뽑는다기에, “나도 될 수 있구나”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히어로는 조상기로 결정됐고, 그는 달랑 인사말 하나 있는 택시운전사 역할을 맡았다. 이후 <돈을 갖고 튀어라> <이재수의 난> 등의 오디션을 보러 다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1998년에 <간첩 리철진>과 <행복한 장의사>, 두 작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후 <봄날은 간다>(2001)의 녹음실 선배 역, <선물>(2001)의 어린시절 친구 역 등으로 잠깐 등장한 게 전부였다.
지치지 않고 진득하게 밀어붙이는
말년 병장 때 휴가 나가서 합동공연 하는 걸 봤는데 둘다 술을 한잔 해야 서로를 아는 스타일이라 그때는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그러다 귀대했는데 어느 날 머리 밀고 식기판 들고 있는 걸 보니 문식이었다. 조수로 차출하려고 꽤 힘을 썼지만 포병이라 불발에 그쳤다. 가장 많이 어울린 건 한양레퍼토리 시절이다. 둘다 포스터 엄청 붙이러 다녔다. 노인 역할을 해도 분장을 안 지우고 집에 가는 게 취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한양대 병원 뒤쪽에 있는 문식이 자취방으로 몰려가서 난장판을 벌이기도 했다. 재밌는 건 명절 때만 되면 우울증에 빠지는데, 공연 끝나면 만취해서 택시 붙잡고 “전주, 전주” 승강이를 벌이곤 했다. 이후에 <공공의 적> 찍을 때는 웃긴 얼굴에 심각한 표정을 짓는 문식이 때문에 NG만 9번 냈다. 심지어 김성복 촬영감독도 2번이나 냈다. 다른 스탭들도 너무 웃겨서 베드신도 아닌데 다들 자리를 피했을 정도다. 별명이 개문식인데, 술버릇에서만 기인한 건 아니다. 지치지 않고 진득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한 배우다.
설경구(배우)
<라이터를 켜라>(2002)는 카메라 강박증에 걸려 있던 그가 처음으로 “마음껏 놀았던 작품”이다. <달마야 놀자>(2001)의 대봉 스님 역으로 “1천만원이라는 목돈을 만져봤고”, <공공의 적>(2002)의 산수 역으로 “웃기는 배우라는 인식을 강하게 남겼던” 그는 찐빠 역으로 <라이터를 켜라>에 합류한다. “장항준 감독이 오케이를 냈는데, 영 맘에 안 들어요. 이미 장비들은 다 옮긴 상태였는데 한번만 더 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걸 들었던 이관수 프로듀서가 김성복 촬영감독에게 슬쩍 물었는데, 배우가 원하면 가야지, 하면서 장비를 원위치로 다시 옮기라는 거예요.” 결국 애초 찍은 컷이 최종 편집본에 남았지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배우 대접해준 그날을 두고두고 입에 올렸다.
크고 작고 가림없이 지금껏 맡은 캐릭터들에 그는 애정을 느낀다. “제가 맡은 역할들이 대부분 안 풀리는 인생들이잖아요. 다 꼬인 인생들인데, 그런 인물들에 애착이 많이 가요. 사실 한발만 나가면 다 그런 사람들이잖아요.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나요?” 다만 <나비>의 도철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더한 것도 사실이다. “출연분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제가 한 역할 중 극중에서 그 인물의 개인사가 도드라진 유일한 배역이었으니까요.”
산전수전 4 | 죽기 살기로 덤비기
“아, 여그서 죽기로 했으면 죽는 것이제 추잡스럽게 시방 뭐헌다요! 깨끗허게 갑시다~ 옛말에 호랭이는 죽어서 거죽을 냄기고 사람은 이름을 냄긴다고 안 허요~.”(<황산벌>의 거시기 대사 중)
배우란 “칼날 위에 선 직업 같다”며 매번 “죽기 살기로 덤벼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전투적 조연관’을 갖고 있다. 조연이라는 게 주인공 빛나게끔 옆에서 거들고 도와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등하게 싸워야 하는 거죠. 모든 걸 주인공 시점으로 끌고가버리는 영화는 재미없잖아요” <어 퓨 굿 맨>의 마지막 장면에서 펼치는 잭 니콜슨의 무게있는 항변을 그는 기억한다. <라이터를 켜라>의 봉구 같은 역할은 언젠가 탐나는 역할이다. “300원짜리 라이터를 되찾으려고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결국 손에 넣잖아요. 영웅 없는 세상이라지만, 그래서 주위 모든 사람이 영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죠. 그걸 보여주고 싶어요.”
“재학 시절엔 겨울에 술먹다가 대학병원에 들어가서 잔 적이 많아요. 거기가 훨씬 따뜻했거든. 참, 경찰서도 많이 갔죠. 깨어나보면 경찰서인 적도 많았으니까. 술먹고 두 사람하고 시비붙었다가 공사장으로 도망친 다음 한 시간 동안 각목 들고 혼자서 기다린 적도 있고. 그럴 때 지녔던 긴장이 나중에 연기할 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이문식은 기이한 술버릇으로 유명하다. 그와 관련된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는 영화인들이 꽤 있다. 본인 스스로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웃으면서 “술 먹으면 시비도 곧잘 붙는 다혈질”인데다, “한때는 도벽도 있었다”고 털어놓기까지 한다. 그런데 훔친 목록을 듣고 나면 웃을 수밖에 없다. 어디서 들고 왔는지 모를 이쑤시개, 주인집 아주머니가 담궈놓은 동치미 등이었고, 심지어 버스정류장에 놓인 긴 의자를 옮긴다고 끙끙거렸다고 하니, 미소를 지을 수밖에. “돈을 벌었으니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며 “북한 어린이를 돕는 등의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는 평범함을 뒤쫒는 별종 인간으로도 ‘쭈욱’ 살아갈 것이다.
드러나지 않고 묻어가는 걸 아는
처음에 김성복 촬영감독이 찐빠 역으로 문식이 형을 추천했을 때 ‘나까’ 배우인 줄 알았다. 일단 한번 만나보자고 해놓고 나서는 “뭐 했던 사람이냐”고 알아봤더니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의 녹음실 선배로 나왔던 배우라고 하더라. 누구인 줄은 몰랐지만, 전에 영화를 봤을 때 너무 좋은 이미지의 배우라고 여겼다. 드러나지 않고 묻어가는 연기가 쉽지 않은 건데. 맡을 배역과는 정반대의 캐릭터였지만 그런 배역을 소화할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촬영 때 자신이 지금까지 한 역할 중 가장 대사가 많다고 해서 너무 신경쓰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입에 붙는 대로 가달라고 했었는데, 나중에 편집할 때 보니까 너무 욕이 많아서 심의에 문제 생기는 줄 알았을 정도로 질펀했다. 게다가 같은 장면인데도 테이크마다 욕 내용이 달랐을 정도이니. 술버릇은 우리집에서 술먹다 헤어진 뒤 내 차와 (류)해진이 차를 조금 파손한 것말고는 모른다. 정말로.
장항준(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