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부터 <태양은 가득히>까지, 영화를 낳은 원작소설 10選
이건 정말 해묵은 이야기다. 영화와 문학이 피를 섞은 것은 영화가 줄거리를 갖게 된 무렵부터니까 말하나 마나다. 두 장르가 엮이는 방법도 시대와 더불어 가지를 쳤다. 각색은 기본. 잉마르 베리만, 크리스토퍼 햄튼, 장 콕토, 데이비드 마멧 같은 ‘투잡스’도 많았고, 비슷한 시기 탄생한 모더니즘 문학과 영화는 시간과 이미지를 편집하는 법을 서로에게 배웠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영화가 세를 불린 뒤로는 새로 나온 영화의 사진으로 표지를 갈아치운 고전의 개정판이나, 시나리오의 행간을 메워 이야기를 얽은 ‘영화소설’까지 서점 한 코너를 번듯이 차지하게 됐다. 그렇지만 “영화는 영화이고 문학은 문학이다”라고 잘라 말하는 냉정한 관전평이 여전히 우세하다. 만약 정말 위대한 문학이라면 언어라는 매체에 꼭 들어맞는 내용을 지녔다는 뜻이니 숙명적으로 좋은 영화로 냉큼 변신할 수 없다는 명쾌한 논리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학과 영화를 서로의 빛에 비추어 읽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즐겁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를 본 다음에도 공복감이 가시지 않아 서점으로 달려간 경험이 당신에게도 몇번쯤 있지 않은가? 여기 모은 10권은 그런 허기를 만족스럽게 채워주는 책들이다. 그렇다고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전쟁과 평화>를 다시 정독하자는 제안은 아니다. “그 영화가 소설이었다고?”라고 한번쯤 갸웃할 만한, 그러나 각색영화가 발휘한 매력 플러스 알파의 재미를 갖춘 책들을 권한다.
위험한 마음의 고백
영화 <리플리> - 소설 <태양은 가득히>
우리에게는 그다지 악명이 높지 않지만, 톰 리플리는 상당히 유명한 사기꾼이다. 리플리처럼 독신으로 세계를 주유하다가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1995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그녀는 히치콕 영화 <스트레인저>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는 일곱권의 소설에 그의 사기행각을 담았는데, 그중 <태양은 가득히>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이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와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리플리>로 영화화된, 시리즈의 제1권이다. 좀더 세련되고 원숙해진 중년의 리플리를 실물로 보고 싶다면 존 말코비치 주연의 2002년작 <리플리의 게임>이 있다.
인색한 고모네 집에서 친부모에 대한 험담을 들으며 살아가던 젊은이 톰은 집을 뛰쳐나와 뉴욕에서 시시한 사기로 연명한다. 톰을 아들 디키의 아이비리그 친구로 오인한 선박 재벌 허버트 그린리프는 가업을 계승할 생각을 잊고 이탈리아에서 유유자적하는 아들을 설득해 미국으로 데려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린리프의 돈으로 대서양을 건너 디키를 만난 톰은 그를 아버지의 세계로 끌어내기는커녕 자신이 디키의 세계로 빠져든다. ‘엿보는 톰’은 디키의 아름다운 육체와 윤택한 삶을 동경의 시선으로 어루만지고 디키의 여자친구 마지를 증오한다. 결국 디키는 사랑을 통해 톰과 하나가 되거나 아니면 죽어야 한다. 디키를 살해한 톰은, 타고난 모방의 재능으로 디키 그린리프를 사칭하며 위험천만한 가면놀이를 벌인다. 톰의 도주를 그린 후반부는 독특한 이탈리아 기행문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톰 리플리는 완전범죄자가 아니라 완전한 범죄자다. 그의 동기는 질투와 고독이며 그에게 범죄는 윤리의 영토 밖에 존재하는 일종의 예술이다. 메소드 배우의 집중력으로 디키를 연기하는 순간 톰은 세계가 자신의 청중이라고 느낀다. 그의 실존과 비즈니스는 하나다. <로리타>의 주인공 험버트를 혐오하면서도 연민하듯이, 독자는 비뚤어진 리플리의 독백을 외면할 수 없다. 앤서니 밍겔라의 영화 <리플리>와 소설 <태양은 가득히>의 비교는 감독의 귀족 취향을 부각시켜 거꾸로 흥미롭다. 계급의 격차를 강조한 탓에 영화의 리플리는 동일시보다 동정을 부르는 인물에 가깝고 주드 로와 기네스 팰트로가 분한 디키와 마지는 소설 속 인물보다 총명하고 매력적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우아한 커플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와 랠프 파인즈처럼.
강호를 비웃으며
영화 <소오강호> <동방불패> - 소설 <소오강호>
김용은 ‘신필’(神筆)이라고 불리는 무협작가다. 그는 <녹정기>를 마지막으로 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그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봉우리처럼 육중한 무게를 잃지 않고 있다. 대륙과 개인의 운명을 한데 누벼넣고, 수십명의 인물들에게 흔치 않은 과거와 무공을 부여하는 대가. <소오강호>는 그런 김용이 써낸 열다섯편의 소설 중에서도 유독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오강호>는 두 가지 무공비급을 두고 다투는 비정한 무림세력들보다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품을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소오강호>는 김용의 소설로서는 보기 드물게 역사와 거리를 둔다. 자유분방한 청년 영호충은 화산파의 대제자지만, 정(正)과 사(邪)를 넘어 우정을 나눠온 두 고수가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강호의 정의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다만 사부의 딸 악영산과 인연을 맺고 평생을 함께 보내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나 은거하고 있던 화산파 고수 풍청향이 그에게 독고구검을 전수해주면서, 영호충은 파란에 휩쓸리게 된다. 그는 벽사검보를 훔쳐 절정의 검법을 연마했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사랑하는 악영산의 마음마저 새로 들어온 제자 임평지에게 빼앗긴다. <소오강호>는 많은 이들에게 무협이라기보다는 절절한 애정소설로 다가갔다. 악영산이 복수에 눈이 먼 임평지에게 살해당하면서도,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죽는 장면은, 김용이 단지 남자들만을 위한 작가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영호충 역시 가장 사랑받는 김용의 인물 중 하나다. 그는 군자라고 자처하지 않으며, 분방하고, 호기가 있다. 그 때문에 그는 일정한 검법없이 상대방의 초식에 따라 변화하는 독고구검의 계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강호를 비웃으며’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정파와 사파 모두를 희롱하면서 자유로운 한 영혼에게 마음을 준다.
<소오강호>는 <소오강호> <동방불패>, 두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중 <소오강호>는 오악검파 내의 암투를, <동방불패>는 밀교의 음모를 중심으로 떼어내어 각색했다.
가족과 패밀리
영화 <대부> - 소설 <대부>
나폴리 출신의 작가 마리오 푸조가 1969년에 쓴 시칠리아계 이민 가족의 이야기인 <대부>의 완역판은 벽돌만큼 두텁지만 기관총처럼 읽힌다. 훌륭한 소설이나 영화가 흔히 그렇듯이 <대부>의 도입부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의 요체를 던진다. 막내딸 코니의 화기애애한 결혼식이 정원에서 열리는 동안 대부는 내실에서 억울한 사연을 탄원하는 하객들에게 피와 권력으로 정의를 베풀어줄 것을 약속한다. 두 가지 서약은 모두 다정한 입맞춤으로 봉인된다.
갱을 미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옹립한 정전답게 <대부>는 마피아 세계의 메커니즘을 인류학자의 관찰력으로 해설한다. 그러나 영화학자 제임스 모나코가 지적했듯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나 마리오 푸조의 소설이 대중을 휘어잡았던 괴력은 <대부>의 액션이 아니라 <대부>의 가족드라마에서 솟구친다. 아버지와 아들, 남자와 여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가족이 직면하는 사생활과 비즈니스의 갈등 같은 보편적 테마를 <대부>는 신화의 권위로 그려낸다(“이게 어디로 봐서 사업상의 일이야?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은 매일 먹어야 해.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야”라고 마이클은 반문한다). 가족의 질서는 패밀리의 질서로 확장된다. 비토 코를레오네는 그의 친구와 이웃에게 불공평한 법을 무시하고 정의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이상적인 가부장이다. 코를레오네의 공평무사한 제국은, 사실 정의의 복잡한 상대성을 무시한 환상이다. 그러나 마리오 푸조는 “왜 이 존중할 만한 남자들이 도둑과 살인자가 됐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만큼은 대부의 셋째아들인 마이클 코를레오네를 통해 철저히 답한다. 패밀리 비즈니스의 방관자였으나 가족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은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심연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리고 ‘민간인’으로 사는 꿈은 아들 딸의 세대로 넘긴다.
소설 <대부>는 영화 <대부> 1, 2편의 내용을 아우른다. 1947년 뉴욕 마피아 전쟁을 중심에 둔 1, 4, 5, 7부가 1편에 해당된다. 마피아의 시스템이나 기원부터 읽고 싶다면 <대부2>에 그려진 비토의 청년 시절로 돌아가는 3부부터 펼쳐도 무방하다. 말론 브랜도의 위협적 카리스마와는 색깔이 다른 온화한 돈 코를레오네, 루시, 줄스, 조니 폰테인 같은 주변 인물의 전사, 마피아의 행동 수칙과 제왕학의 세세한 레슨도 책만의 도락이다. 마초 판타지가 징그럽다면 <대부>는 힘든 도전이다. 남자들이 지옥에서 불타는 동안 여자들은 천국에 가겠지만 세상일만큼은 남자가 적임자라고 공언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대부>는 비토 코를레오네식으로 말하자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라면 거기에 대해 말하지 마. 아무리 해도 그건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야. 너는 그냥 하면 돼. 그리고 잊어버려” 같은 대사의 비애에 무감동할 수 있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거의 완벽한 소설”
영화 <포제션> - 소설 <소유>
닐 라뷰트는 <포제션> 시나리오 초고를 쓰는 데 1년 반이나 걸렸다. 그러고도 그는 작가에게 혼이 날까봐, 작가가 문학적인 무언가를 요구할까봐 불안했다고 말했다. <포제션>은 100년 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를 추적하는 로맨스지만, 그것만으로는 원작의 매혹적인 토양에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부커상 수상작인 <소유>는 여러 편의 문학작품을 한데 뒤섞은 태피스트리와도 같다. 켈트와 부르고뉴의 전설,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간 듯 고풍스러운 일기와 편지, 레즈비언 성향이 있는 시인이 은밀하게 써내려간 환상동화, 언어가 찬란하게 빛나는 시, 미스터리와 멜로를 동시에 달성한 서사. 이것이 <소유>라는 한편의 소설인 것이다.
<소유>는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랜돌프 애쉬와 크리스타벨 라모트, 현대의 영문학자 롤랜드 미첼과 모드 베일리, 각각의 사랑이 굵은 줄기를 이룬다. 영문학자 롤랜드는 오래된 책장 사이에서 애쉬가 어느 여인에게 쓴 연서를 발견한다. 애쉬는 단 한번의 스캔들도 낸 적이 없는 성실한 남편으로 알려져왔다. 롤랜드는 애쉬가 누구를 사랑했는지 추리하다가 라모트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녀를 연구하는 모드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소유>는 무엇보다도 여자들의 소설이다. 고대와 중세,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소유>의 여인들은 성(性) 때문에 고통받는다. 긴머리를 고집스럽게 감추는 모드는 혼자 있을 때만 여성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그 고통은 아름다움의 원천이기도 하다. 차가운 비늘을 반짝이는 인어 멜루지나의 전설은 <소유>를 관통하는 이미지. 그리고 버림받은 요정과 시인과 영문학자가 복귀하는 순간, <소유>의 들판- 말 그대로 들판- 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소유>를 “거의 완벽한 소설”이라고 칭송했다. 사랑의 결과만을 바라는 성급한 독자라면 이 더딘 소설에 답답해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느긋해진다면 이만큼 매혹적인 향연도 없을 것이다.
실패에 관한 매력적인 보고서
영화 <블랙 호크 다운>-소설 <블랙 호크 다운>
소설 <블랙 호크 다운>은 미군의 작전 개시와 함께 시작된다. 소말리아의 군벌 아이디드 휘하의 참모 두명을 낚아챈다는 백주대낮 납치작전. 워싱턴이 미덥지 않아했고 작전을 계획한 게리슨 소장도 여러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임무였다. 하브 지디르 부족의 중심지인 바카라 시장 인근 건물을, 소말리아 주둔 유엔군조차 기피하는 이곳을 미군이 뻔뻔스럽게 쳐들어가는 형국이었다. 단 두명을 잡기 위해, 블랙 호크 헬기 8대를 포함한 항공기 19대와 험비 9대가 동원된 차량 12대가 마른 공기를 가르고 조용히 잠입해 들어갔다. 레인저와 델타포스 소속 군인 160명은 같은 마음을 나눠 갖고 있었다. 한 시간 내로 임무를 완수한다. 그리고, 그외에 불필요한 잡념은 버릴수록 편하다.
이 책은 1993년 10월3일 소말리아의 군벌 보좌관 두명을 납치하려는 미군 특수 부대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아이디드파간의 전투를 세밀히 그린 전상서다. 이날의 작전은 건물의 네 귀퉁이를 장악하는 계획부터 어긋났다. 미군이 총구를 겨누기도 전에 모가디슈 시민들은 쌓았던 분을 터뜨렸다. 두대의 블랙 호크 헬기가 미국이 지원한 유도탄을 맞아 차례로 추락했고, 시민들의 총질을 감당 못한 미군은 무기력하게 시내에 갇혀버렸다. 한 시간짜리 작전이 다음날 아침에야 끝이 났다. 미군 사상자는 90명가량. 그뒤로 열배가 넘는 소말리아인들이 죽거나 다쳐 길거리에 널브러졌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기자였던 마크 보든은 96년초부터 조사 작업에 착수해 3년 뒤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이 매력적인 보고서는 세계의 심판자를 자처하는 거대한 나라 미국이 일개 주(州)에나 빗댈 만한 작은 나라에서 얻어간 실패담을 담아 미 국방성조차 감동시켰다.
달리 감동했을까. 에필로그와 역자후기에는 미국인 특유의 자긍심과 애국심이 어김없이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 당시 전투 속에 미군들만 존재하진 않았었다는 점을 수시로 상기시켜주고 있다. ‘모가디슈 작전’으로 소박하게 끝날 수 있었던 임무가 ‘모가디슈 전투’로 불릴 수밖에 없게 된 진저리치는 상황을 작가는 난생처음 실전에 투입된 군인의 시각과 그 군인의 육중한 뜀박질을 뒤에서 지켜보는 소말리아 소년의 시선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리들리 스콧이 영화화한 <블랙 호크 다운>이 간과했던 점이 여기서 멀지 않다. 전우애가 감도는 한가로운 저녁과 소름돋게 짜릿한 출격 화면만 기억한다면 이 책의 메마른 글자들은 훨씬 더 딱딱히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마크 보든은 블랙 호크 슈퍼 61호기가 추락하는 장면에만 17쪽을 할애했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영화에서 그저 쓰러지는 또 한명의 흑인쯤으로 묘사되었을 소말리아 시민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