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박찬욱이 몰랐던 박찬욱의 모든 것 [2]
2003-12-05
글 : 변성찬 (영화평론가)

B무비의 매력

변 | 당신이 느끼는 B무비의 매력은 무엇인가?

박 | B무비의 뛰어난 작품들은 장르 안에 있으면서도 거기에서 많이 벗어나기도 한다. 돈이나 시간이 부족한 것을 참신한 아이디어로 커버하고 넘어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 즐겁다. B무비의 걸작에서 보이는 그 시대의 통상적 가치관에 역행하려고 하는 태도도 좋아하고.

변 | ‘공식 기록’(<씨네21 영화감독사전>)에 따르면, 당신이 ‘예술영화, 작가영화로 출발해 장르영화를 거쳐 B급영화, 컬트영화 등 다양한 영화에 애정을 표해온’ 감독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그런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 | B무비라고 할 수 있는 영화는 데뷔작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상황이 어쩔 수 없기도 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상황 속에서, 그래도 뭔가 개성이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니까. 좋은 B무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B무비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그냥 상업영화고, 작가주의나 아트영화는 전혀 아니고, 컬트는 어차피 관객이 만드는 것이니까 작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문제일 것이고. 단지 내가 히치콕 광으로 시작했으니까 작가영화에 대한 숭배나 그런 것은 분명 있었다. 젊은 나이에 현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런 환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일을 해보니까 영화라는 게 혼자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런 걸 알게 되면서 작가주의와는 완전히 결별했다. B무비에 대한 열광은 더 오래되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래서 그때는 내가 앞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면, 어차피 크게 돈을 버는 영화를 하게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럴 자신도 없었기 때문에, B무비가 하나의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했다. 첫 작품은 그렇게 해서 만들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그것이 한국에서 참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B무비는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지 일부러 그것을 한다는 것은 우습지 않나?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올드리치 같은 B무비의 장인들은, 누구든지 돈 많이 쓰고 스타를 쓰면서 그렇게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의 한계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걸작이 태어나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송강호가 파악한 <올드보이>의 핵심

<올드 보이>

변 | 여러 가지 점에서 극중 이우진은 감독 자신의 분신처럼 보인다. 유지태가 시니컬한 당신의 말투를 통해 이우진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어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우진이 관객을 향해 던지는 그 대사(“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의 의미는 무엇인가?

박 | 그 대사는 분명 이우진의 입을 통해서 관객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제기하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송강호씨도 그런 말을 하더라, 이 영화는 그 한마디로 응축되는 영화다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당신 참 똑독한 배우야라고. (웃음)

변 | 혹시 그것은, 기억을 잊은 채로만(또는 최면을 통해서만), 그런 의미에서 환상을 통해서만 근원적 욕망과 대면할 수 있고 기억을 가진 채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대한 의문이면서, 동시에 영화(특히 A급 장르영화)라는 근본적인 환상의 도구에 대한 자의식적 물음이었던 것은 아닌가? 예스냐 노냐로만 대답해달라.

박 | …(한숨)… 예스라고 그러자(웃음)… 내 입으로 뭐라고 말하긴 그렇고 그렇게 써준다면, 고맙게 읽기는 하겠다. (웃음)

변 | 앞으로의 영화에 대한 계획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올드보이>에서 ‘악행의 자서전’ 설정이 소재적으로만 머무른 것이 아쉬웠다. 당신의 화법과 궁합이 잘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잘 발전시켰더라면 좋은 블랙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단편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를 보면서 참 기분 좋게(의미가 가볍다는 뜻이 아니라)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는 호흡이 긴 장편의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은 없나?

박 | 나는 아직까지는 영화에서 최고의 가치가 긴장과 밀도라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미덕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바로 어제 집사람하고 똑같은 얘기를 하기는 했다. <믿거나…>처럼 그렇게 날이 곤두서 있지 않은, 느리고 여유있는, 가급적 따뜻하면 더 좋을, 그런 영화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지금 <쓰리> 다음으로 하려고 하는 영화 중 하나가 노숙자 이야기인데, 그것을 하게 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뱀파이어 이야기라면 또 역시 <올드보이>같이 곤두서 있고 자극이 강한 그런 영화가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소재가 뭐냐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먼저 얘깃거리에 끌리고 거기에 맞는 스타일이 그 다음에 따라가는 편이다. 그런데 노숙자냐 뱀파이어냐 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슬아슬한 경계, 내게는 어렵지 않다

<올드 보이>
<공동경비구역 JSA>

이 대목에서 비장의 카드를 꺼내본다. 그의 진정한 영화적 욕망과 이후 그의 영화가 취하게 될 커다란 방향의 진실을 ‘짜내기’ 위해서, 미리 준비한 장황한 질문서를 그에게 제시하고 단답형 대답을 강요해보자. 질문서: 1. 내 생각에 당신의 미래는 세 가지 길 중 하나일 것 같다. 그것은 또한 <올드보이>의 주인공 앞에 놓인 세개의 길과도 상통한다. 다음 중 당신은 어떤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가장 많다고 생각하는가? 첫째, <공동경비구역 JSA>로의 회귀 또는 A급으로의 길(‘바보’가 됨으로써 행복하게 살기). 둘째, 초기 영화(<달은 해가 꾸는 꿈>)로의 회귀 또는 완전한 B급으로의 길(최면의 도움없이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며, 고통 속에서 그것을 그대로 향유하며 살기 또는 죽기- 순교. 완벽하게 옷 벗기, <감각의 제국>의 무삭제판처럼 초라한 그것을 가리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보일 듯 말 듯한 관음증에서 벗어나기). 셋째, <복수는 나의 것> 또는 <올드보이>와 같은 AB형의 길(이것도 저것도 아닌 ‘괴물’의 길. 내가 이것인지 저것인지 계속 물으며 살아가기. 아슬아슬한 경계 위의 스릴 즐기기 또는 ‘자기 검열’의 소모적인 고통).

변 | 특히 ‘곤두서 있고 자극이 강한’ 그런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간다면, 한국 관객과의 관계에서 볼 때, 한국 관객의 수준이 아니라 그 취향과 문화적 체질 때문에 늘 위험부담이 있는 것 아닌가?

박 | 나는 왔다갔다 할 것 같다. 내가 안 할 것 같다라고 느끼는 것은, B무비적인 분위기를 유희적으로 즐기는 그런 영화들이나 <감각의 제국>이나 도그마영화들처럼 완전히 날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런 영화들은 못할 것 같다…. 천상 그러면 여기서는 1번 아니면 3번일 텐데… (웃음)… 3번의 길이 나한테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흥행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감당해야 할 문제이고, 일부러 흥행이 안 될 영화를 하지는 않으니까. 만들 때는 이런 것이 체질이고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 항상 즐겁게 일을 하고 그것을 즐기는 편이다. 때로 정말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는, 뭔가 호소하고 싶은 게 있을 때는,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그런 영화도 해야 할 것이다. 가령, 늘 이야기하면서도 못 만들고 있는 인혁당 얘기 같은 것은 그런 화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마음속의 상상훈련대로 잘된 것인가?… 모르겠다…) 어쩌면 완전한 해답은 그의 말 속에서가 아니라 이후 그가 만들어갈 영화 속에서 찾는 것이 더 올바른 태도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감독 박찬욱은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남다른 경로를 거쳐왔고 또 걸어갈 특이한 한국 감독의 한 ‘유형’으로서 늘 우리의 관심 속에 남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올드보이>에 대해 남은 질문 세 가지

<올드보이>, 해피엔딩인가?

하나. 마지막 장면에서 오대수는 기억을 잊는 데 성공한 것인가. 그건, 나도 모른다. (웃음) 최민식씨는 물론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연기한 거다. 그건 배우로서는 당연한 생각 같다. 왜냐하면, 웃다가 얼굴이 일그러지는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을 했는데 그런 연기를 하려면 당연히 실패했다고 생각해야 할 거다. 그러나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양단간에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불분명하게 만들려고 했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으면 했다. 그렇게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둘. 오대수의 분리장면에서 유리창에 비친 오대수가 괴물 오대수인가. 일반적 영화에선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사라지는 존재로 그리곤 하지만 나는 반대로 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유령처럼 반사된 모습이 계속 살아가야 할 오대수이고 현실 속으로 걸어가는 오대수가 죽어야 하는 오대수인 편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왜냐고는 묻지 말아달라. (웃음)

셋. 이우진이 최면술사에게 오대수의 기억을 지워주라고 주문한 것인가. 사실 그런 장면을 찍기도 했다. 편집에서 없어졌는데, 마지막 펜트하우스에서의 대결이 시작되기 전에, 최면술사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이우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냥 이렇게 전해주세요, 행운을 빈다라고.” 기억을 지워주는 그 마지막 눈밭장면조차도 이우진의 커다란 플랜 안에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찍었다가, 너무 분명하게 설명해서 모호성을 없애는 듯한 느낌이 들어 빼버렸다. 그때 싱긋이 웃으면서 그 대사를 하는 유지태의 연기가 참 좋았었는데, 그게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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