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3 한국영화계를 돌아본다 [1]
2003-12-12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글 : 이영진
관객이 따지기 시작했다, ‘웰메이드’ 적중

제작·투자자 10인이 말하는 올해의 한국영화 7문7답

지난해 이무렵 한국 영화계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금융자본의 철수가 기정사실화되면서 2003년을 시련의 계절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기회였다. 2003년 한국영화는 질적, 양적 성장을 거듭했고 대다수 제작자들은 지금 한국영화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과연 그들은 올해 어떤 사건을 겪었고 어떤 영화를 인상깊게 봤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강우석, 박동호, 차승재, 최완, 심재명, 오정완, 김미희, 이춘연, 정태원, 김동주 등 대표적 제작, 투자자 10인에게 7개의 질문을 던져 그 답을 들어봤다.

이강복 대표 퇴진 뜻밖의 사건 - 강우석_감독

1.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CJ엔터테인먼트의 이강복 대표가 그만둔 게 가장 큰 사건이 아닐까. CJ를 대표하는 인물로 오랫동안 영화 일을 했는데 승진한 거 같지도 않고 갑자기 바뀌어서 놀랐다. 실로 뜻밖의 사건이다.

2.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무엇인가? 지난해 연말에 예측한 대로 퀄리티가 떨어지는 영화, 말장난에 치중하는 영화, 저급한 영화들이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잘 만든 영화,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영화, 내공이 느껴지는 영화가 대접받는 상황이 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3.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무엇인가? <올드보이>다. 엽기적인 소재인데 관객을 끌고가는 힘, 사건을 전개하는 솜씨 모두 만족스러웠다. 박찬욱 감독이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에 있었던 거 같은데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4. 올해 한국 영화계를 돌아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어떤 것인가? 아직도 제작의뢰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 너무 많다. 올해 몇몇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렇지 못한 수많은 영화들이 처참하게 죽어나갔는데 그런 실패를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5. 올해 자신의 활동과 사업에 대해 자체 평가를 한다면? 신인감독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드는 한해였다. 앞으로 영화를 많이 만들고 싶다. 감독으로 일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너무 크다. <실미도> 개봉하고 나면 내년 6월쯤엔 <공공의 적2>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6. 내년 한국영화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 한국영화가 잘될 거라고 보지만 한 가지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가 잘됐을 경우 다시 한번 제작비 많이 쓰는 영화에 확 몰리는 현상이 벌어질까 우려한다. 기본적으로는 어떤 장르든 상관없이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올 거 같다. 장윤현, 장진, 류승완, 봉준호, 송능한 등 재능있는 감독들이 다 내년에 작품을 내놓을 예정 아닌가.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많이 나와서 불꽃 튀는 경쟁을 하는 한해가 될 것 같다.

7. 내년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주목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이다. 제작발표회 때 “작품성이 떨어지지 않는 상업영화를 만들겠다”고 하셨는데 정말 기대가 된다.

코미디 트렌드 하향세 - 차승재_싸이더스 대표

1.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대표의 퇴진이다. 대기업 출신 CEO이지만 영화계에 잘 적응을 했던 인물이고 문제작에도 투자를 많이 했다. 대기업 출신 경영자 가운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뛰어났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퇴진은 사건이다.

2.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무엇인가? 코미디 트렌드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거 같다. 관객이 완성도 높은 영화쪽으로 돌아선 거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동안 비슷한 코미디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관객이 물린 거 아닌가 싶다.

3.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무엇인가? <살인의 추억>이다. 영화를 만드는 여러 요소가 무엇 하나 빠짐없이 오케스트레이션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연출, 연기, 촬영, 미술, 음악, 편집 등 각각의 요소가 잘 맞물린 예라고 할까. 영화제작의 기본이 팀워크와 협업에 있다고 봤을 때 모범적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4. 올해 한국 영화계를 돌아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어떤 것인가? 비용의 상승이다. 마케팅비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이런 상승폭이 지난해보다 훨씬 커졌다고 말할 순 없지만 비용 상승으로 수익을 내는 영화의 편수는 줄어든다는 게 문제다.

5. 올해 자신의 활동과 사업에 대해 자체 평가를 한다면?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다. 생명유지장치가 다시 작동해서 연명하고 있는 느낌이다.

6. 내년 한국영화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 올해처럼 전체적으로 좋을 거 같다. <매트릭스> 시리즈도 끝났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끝나서 할리우드영화의 공세가 약해지지 않겠나. 완성도 높은 영화가 많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코미디 트렌드의 끝물을 탄 영화들이 내년 초에 대거 나와서 내년 상반기에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7. 내년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주목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태극기 휘날리며>다. 최고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로서 흥행잠재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흥행이 전체 한국 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는 점이다. 제대로 준비가 안 된 대작 기획이 뒤를 잇는다면 곤란할 것이다.

<살인의 추억> <바람난 가족> 대박 - 박동호_CJ엔터테인먼트 대표

1, 2.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여러 장르의 ‘웰메이드’(Well-made)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다.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바람난 가족> <장화, 홍련>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끌어낸 여러 작품들이 성공했다. 이들 작품의 성공은 기존 기획·컨셉 중심의 한국영화 제작흐름을 바꿔놓았고, 향후 몇년간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웰메이드’영화 제작열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3.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무엇인가? <살인의 추억>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모처럼 관객-평단-관계자 모두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란 점에서 가장 인상 깊다. 4월 말 개봉한 <살인의 추억>은 올해 유일하게 4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마침내 전국관객(단매 제외) 510만명을 동원해 올해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조폭코미디’로 얼룩졌던 한국영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 본다.

4. 올해 한국 영화계를 돌아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어떤 것인가? 제작비의 전반적인 상승과 전체적인 한국영화 수익성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연간 제작된 60여편 중, 10여편 정도만 크게 흥행되는 ‘부익부빈익빈’ 구조가 심화됐다. 또한 제작비 증가분에 비해 마케팅비 증가분이 큰 점은, 영화흥행을 위해 ‘영화 자체의 퀄리티’ 확보보다는 마케팅이라는 외적 ‘포장’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을 낳았다.

5. 올해 자신의 활동과 사업에 대해 자체 평가를 한다면? 올해 흥행 톱 3까지 CJ 작품이 차지하는 등 그 어느 해보다 큰 성과를 거뒀다. 단순히 관객 수 1위를 차지한 양적인 성공뿐 아니라 작품들의 질적 수준도 높아졌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한해였다. 또한 CJ가 투자배급한 ‘웰메이드’ 작품 성공은 기존 기획·컨셉 중심의 한국영화 흐름을 바꿨다는 점에서 업계 리더로서 합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6. 내년 한국영화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 기획·컨셉 중심의 제작흐름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작품성으로 관객을 공략할 ‘웰메이드’영화가 대거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흐름 향후 3∼4년 정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7. 내년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주목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싸이더스의 <말죽거리 잔혹사>와 힘픽쳐스의 <소금인형> 등을 꼽을 수 있다.

10대 주요 관객으로 부상 - 최완_아이엠픽처스 대표

1.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재미있는 영화, 웃기는 영화에 몰렸던 관객이 완성도를 따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완성도가 중요해지면서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제작사와 감독을 주목하게 됐고.

2.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무엇인가? 멀티플렉스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영화 배급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 10대 영화가 대두된 점을 들 수 있다. 올해는 공포영화가 10대 영화로 성공했는데 모바일 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10대가 중요한 관객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트렌드도 10대 문화의 영향이다. 투자, 배급사의 변화로 주목할 것은 CJ, KM컬쳐, 청어람, 아이엠픽처스 등이 인하우스 프로덕션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수익을 높이기 위해 투자, 배급사가 직접 제작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3.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무엇인가? <살인의 추억>이다. 연기, 완성도, 재미,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켰고 영화제작의 지향점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4. 올해 한국 영화계를 돌아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어떤 것인가? 멀티플렉스간 경쟁이 배급사간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CGV체인이 <위대한 유산>으로 도배된 반면 <영어완전정복>은 홀대를 당했는데 이런 식으로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작비 상승도 여전히 문제다. 요즘 영화를 보면 평균 총제작비가 45억원 정도인데 전국 150만명을 동원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 전국 150만명이 넘는 영화가 1년에 10편도 안 나오는데 이런 구조적 취약점이 문제다. 와이드릴리스로 영화의 회전율이 빨라지고 있다는 점도 염려된다. 한국영화의 관객점유율이 50%에 육박한다 해도 극장에 걸리는 날짜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스크린쿼터는 여전히 중요하다.

5. 올해 자신의 활동과 사업에 대해 자체 평가를 한다면?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와 <영어완전정복>을 만들었는데 2편 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였다. 좀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 같다.

6. 내년 한국영화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몇몇 회사가 계속 각광받을 거 같고 쇼박스가 도약할 가능성이 크다. 롯데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7. 내년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주목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태극기 휘날리며> <역도산>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등.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 - 심재명_명필름 대표

1.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크린쿼터 축소 논의가 다시 시작된 거다. 스크린쿼터 유지는 노무현 정부의 공약사항이었는데 다시 축소하자는 얘기가 나왔고 여론이 98년과는 다른 양상으로 반응했다. 영화계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식의 얘기가 일반인에게 널리 퍼졌고 언론도 필요없는 거 아니냐는 입장을 보였다. 영화계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상황이다.

2.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무엇인가? 조폭코미디를 비롯한 코미디 트렌드가 약화된 반면 수준높은 영화들이 경쟁력을 되찾은 것이다.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바람난 가족> 등이 대표적인 영화다.

3.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무엇인가? <살인의 추억>. 감독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폭넓은 관객과 조우한 사례다. 완성도에서도 돋보였다.

4. 올해 한국 영화계를 돌아보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어떤 것인가? 총제작비 상승에 비해 기타판권에서 나오는 수익이 적어지고 있다. 비디오 시장은 급락했고 DVD 시장은 빨리 커지지 않고 있다. 극장수익에만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문제다.

5. 올해 자신의 활동과 사업에 대해 자체 평가를 한다면? 고군분투했다. 내년 새로운 출발을 기약할 수 있는 의미있는 한해였다.

6. 내년 한국영화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더 올라갈 거 같다. 절대 관객 수도 늘어서 전국 1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영화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올해처럼 완성도 높은 영화가 관객의 호응을 얻을 것 같고 하이컨셉의 영화보다 감독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웰메이드한 작품이 많이 나올 거라고 본다.

7. 내년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주목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태극기 휘날리며>. 국내외에서 얼마나 많은 관객을 불러모을지 궁금하다. 과연 <쉬리>가 했던 것처럼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기능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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