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배우 공형진
2003-12-24
글 : 이영진
사진 : 정진환

공형진이 떴다 하면 촬영현장에 활기가 넘친다. 슛을 기다리며 침묵으로 에너지를 모으는 대부분의 배우와는 달리 그는 짬이 나면 동료들을 배꼽잡게 만드느라 분주하다. 대단한 입심에 더해 팬터마임 한 토막을 선사, 현장을 휘어잡는 일도 잦다. 뭐 그러니 대부분의 스탭들에게 그는 ‘형 아니면 오빠’다. “배우는 업이요, 현장은 자신의 삶의 터전”이니 “맘껏 즐기지 않으면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겠느냐”고 반문하는 공형진. 그를 붙잡고 에너지가 어디서 뿜어져 나온 것인지 찬찬히 물었다.

-여기저기 시상식도 많았다. 수상 못해서 서운하지 않나.

=나라고 받고 싶은 마음 없겠나. 노미네이트 3번 된게 전부다. 내년에 열심히 해야지. 수상 소감은 이미 준비해 놨다. 센 걸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할 당시에는 연출 전공이었다고 들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극장에서 살았다. 제임스 우드 연기가 어떻고, 알 파치노는 또 어떻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러다 재수할 때 친하게 지낸 형이 니가 연극영화과 안 가면 누가 가냐고 하더라. 부모님한테는 나중에 영화과 교수하겠다고 해서 결국 입학했다. 그러다 대학 3학년 때 선배들이 무대에 한번 서보라고 해서 워크숍을 같이 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800개의 눈동자들이 내 몸짓 하나에 쏠리는 거 느끼고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유년 시절에도 끼가 있었나.

=남다르게 웃겼던 것 같다. 수학여행 가면 고작해야 춤추고 미인경연대회 하는데. 난 당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이종환의 디스크쇼를 본떠서 CM이니 시그널송이니 다 카운팅해서 녹음한 다음 토크쇼를 만들었다. 내가 이종환 하면, 친구는 교장선생님 하고. 내가 교련선생님 하면 친구가 이종환 하고. 뭐 그런 식으로 성대모사를 했는데 뒤집어졌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했는데.

=막역하게 지내던 박제현 감독이 당시 연출부 막내였다. 그래서 제작사인 황기성사단에 놀러갔는데. 당시 황기성사단에 계셨던 씨네2000 이춘연 대표가 ‘어, 너 어제 그 놈 아니냐’ 했다. 전날 중대 동문회 체육대회를 했는데 응원하면서 까불었고 그게 눈에 뜨인 거다. 그러더니 시나리오를 하나 던져주셨다. 그걸 보고 있는데 배역이 너무 맘에 드는 게 있었다. 그래서 김성홍 감독님한테 당돌하게 오디션 보게 해달라고 했고 발탁됐다. 이후에 <인생이 뭐 객관식 시험인가요> <비는 사랑을 타고> 2편을 더 찍었다.

-이후 출연작품이 <신장개업>(1999)이다.

=그 중간에 군대를 갔다왔고. 그러고 나서 서울방송에 공채 1기로 뽑혀 활동했다. 근데 거대 조직의 시스템하고 내 생리하고 안 맞더라. 몇 작품 하고 나니까 이러다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기도 하고.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신장개업> <박하사탕> 등에 출연했다. 그때 고민을 풀려고 이후 극단 유에 들어가서 막내 생활을 했다.

-출연작을 보면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 감독들의 영화가 많다.

=그렇다고 키워달라고 한 적 없다. 그랬으면 <쉬리>에도 나왔어야지. 사람 관계란 게 그렇다. 야, 형진이 뭐하나 시키긴 해야 하는데 믿고 맡기기엔 못 미덥고 그렇다고 내치자니 인간적으로 몹쓸 놈 같고. 감독들이 그런 고민하면 안 된다. 그런 고민하게 했다면 내가 여기 있겠나. 이민 갔지. 윈윈이 되어야지 제로 섬이 되면 안 된다. 물론 강제규, 김성홍, 박제현 감독 등과 입봉하기 전부터 자주 어울렸던 사이다. 이춘연 사장님이 월급타면 아구찜 먹고 안 그러면 방배동 팡세라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시켜놓고 6시간씩 야부리까던 시절이었다. 친분도 쌓았지만 영화에 대해서도 많이 듣고 배웠던 때다.

-공형진이라는 이름을 관객에게 각인시킨 영화는 <파이란>이다. 본인 스스로 이 영화에 부여하는 의미는 더 큰 것 같은데.

=시나리오 보면서 이건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민식이 형이랑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실험극장에서 <에쿠우스>를 봤는데 ‘어. 저 배우 누구지? 연기 좀 하네’ 한 다음부터 광팬을 자처했다. 그러다 형이 몸담고 있던 극단 유에 들어가서 알게 된 건데. 어느 날 <파이란>의 대본을 읽어보고 형한테 이야기 좀 해주라고 하셨다. 니가 경수다, 했던 건 아니고. 너도 전투력을 좀 키워야 한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너 몸 좀 달아봐라 하는 거지. 보고 나서 정말 미친 듯이 달았다. 결국 오디션 두번 봐서 됐다.

-그렇게 원하던 최민식에게서 뭘 배웠나.

=연기는 사기치면 안 된다는 거. 민식이 형은 배역을 맡기로 결정한 바로 그 순간부터 무작정 그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공식이 있는 게 아니다. 나랑 같이 밥먹고, 나랑 같이 장난치고, 나랑 같이 농담했는데, 어느 순간 강재가 되어 있었다. 그거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지금은 그거 옆에서 들여다본 것만으로도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어디 가서 돈내고 레슨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최민식을 큰형처럼 여기는 것 같다. 아버지처럼 어려워하면서 따르는.

=다음날 촬영 분량을 떠올리다 형에게 전화했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근데 1분30초 동안 침묵만 흘렀다. 이거 끊어졌나, 싶어 여보세요 그러고. 근데 전화로 1분30초 당해봐라. 공포가 엄습해온다. 쫙 밀려온다.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건가 싶기도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민식이 형이 그랬다. 니가 경수가 되면 돼. 한마디 하고 전화를 끊더라. 이 양반이 나랑 장난하나. 그럼 내가 경수지, 만수야 그랬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지금까지는 경수가 아니었다는 말이었다. 식은땀이 흐르더라. 그 다음부터선 잘 안 물어본다. 누구한테도. 이건 내가 극복해야 하는구나.

-주어지는 캐릭터 자체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일부 작품의 연기에선 과잉 또는 천편일률 아니냐는 비판도 들을 텐데.

=1년 365일 내내 생일일 수 없다. 주인공일 수도 있고 초대받아 축하해줄 수도 있고. 내 몫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다만 <남남북녀> 같은 영화는 내가 캐릭터에 녹아들지 못한 게 눈에 보인다.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런저런 단서 달 것 없이 전적으로 내 탓이다.

-추측이지만, 때론 오버 연기를 원하거나 유도하는 감독도 있지 않나.

=니 혼자 짐을 짊어져라 하는 감독이 어딨나. 다만 현장에서 얌전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보니 현장에서 과묵한 적이 거의 없다.

=그 에너지를 마음속에 담고 있다가 정말로 보여줘야 할 때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건가. 맞는 말이다. 근데 내겐 현장 분위기를 더 좋게 하는 것이 일종의 소명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니가 그런 짓 하느라고 연기까지 이상하다고 하면 말아야지. 아직까진 자신있는 거다. 현장 분위기를 즐기면서 모티브를 얻을 때도 있고, 연기를 하는 연장선이라고 본다.

-시나리오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

=첫장부터 끝까지 한번에 가는 거. 시나리오는 잘 안 본다. 정독 한번 하고 나면. 한번 제대로 읽고 떠오른 캐릭터 형상에 살을 붙인다. 반복해서 보면 굳어진다. 숙지하다 보면 기계적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본인 스스로 현장에서 아차, 싶을 때가 있을 텐데.

=감독에게 자문을 구한다. 현장에서 내가 잘 가고 있는 건가. 혹시 벗어난 건 아닌가요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감독이 신뢰를 주지 못하면 좋은 동료라고 볼 수 없다. 때론 눌러주고, 잡아주고 그게 감독의 몫이니까. 나도 내 것이 정답은 아니니까 같이 길찾기 하는 거고.

-경제적으로 힘든 때도 있었을 텐데. 주연인 <동해물과 백두산이> 개봉을 앞두고 그때 생각나지 않나.

=다들 10년 무명생활을 접으니 기분이 어떠세요, 라고 묻는다. 근데 35년 동안 난 공형진이었다. 무명이 아니고. 내가 무슨 고대 신화에 나오는 무명씨인가. 돈이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 싫어서 사기친 적은 있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거래해온 은행 가서 아버지가 허락했으니 마이너스 통장 하나 만들어달라고. 그 돈있어 술 먹고 나서도 구두끈 안 묶었다. 내 자신감과 미래를 담보로 잠깐 당겨 쓴 돈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아버지 입장에선 내가 파렴치한 경제사범이지.

-다른 꿈을 꿔본 적 있나. 배우말고.

=전에 제규 형은 나보고 넌 절대 배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랬으니 다른 꿈을 꿨겠나. 한눈 판다면 영화기획 정도. 대사만 전문으로 쓰는 작가 하면 잘할 것 같긴 한데. 히딩크 감독이 김남일을 보고 정말로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을 찾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배우가 될때까지는 쭉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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