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 사랑해”라는 글씨가 쓰인 풍선을 밤마다 하늘로 날려보내는 여자 아데나. 날개가 부러져 추락하고 만 천사의 존재로 인해 그녀의 일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순진한 천사는 아데나가 운영하는 아로마숍의 여자들과 이웃집에 사는 게이 차우차우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천사는 아데나로부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아데나는 새로운 사랑에 빠져들지만 천사가 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온다.
Review
여러 모로 이것은 이제 매우 익숙한 이야기이다. 일찍이 빔 벤더스가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릴케의 천사를 지상으로 끌어내린 이래, 많은 천사들이 이곳을 다녀가지 않았던가. 그러나 벤더스의 영화가 ‘감각에 대한 찬양’으로만 읽히고 모방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라벤다>에서 금성무가 분한 천사는 <베를린 천사의 시>의 다미엘이나 카시엘처럼 사색적인 존재는 물론 아니며, 그렇다고 케빈 스미스의 <도그마>에 등장하는 두 천사마냥 닳고 닳은 존재도 아니다. 그저 백지상태의 순수한 영혼을 가진, 성인의 모습을 한 아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다. 결국 <라벤다>는 천사 버전의 <빅>인 셈이다. 하지만 아이의 영혼을 가진 성인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톰 행크스와 달리 잘생긴 금성무의 얼굴은 오히려 장애가 된다.
풍선 하나 들고 도심 거닐기, 불 꺼진 방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혼자 먹는 국수, 방 안 가득 신발을 늘어놓고는 신발들의 춤을 감상하며 혼자 즐거워하기 등등, <라벤다>에는 짐짓 왕가위식 자폐적인 영상들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자폐를 감상적인 고독과 동일시하는 전략이 아직도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감독은 썩 매력적인 장면이라는 듯 물컵에 떨어지는 아데나의 눈물을 접사로 잡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지만 이런 식의 감상은 이젠 조금 거북살스럽다. <라벤다>는 영화사 골든하베스트의 창립 30주년 기념작으로 제작되었고 영화 상영 도중 특수 방향 시스템을 이용해 관객에게 향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감독 엽금홍은 시나리오 작가 및 제작자로도 활동중이며 <라벤다>는 세 번째 연출작이다. <중경삼림> <첫사랑>의 금성무와 <친니친니> <환영특공>의 진혜림이 <친니친니> 이후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
유운성/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