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비디오 시절은 뒤에 남기고…,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의 양수재
2004-01-07
글 : 심지현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배우를 평가하는 데 인간성이 우선은 아니다. 열정, 열의, 사람에 대한 배려, 양보심, 준비성과 같은 덕목이 먼저 튀어나올 땐 왠지 연기력의 부족을 변명하는 듯하다. ‘사람 좋다’는 말 뒤에 곧장 ‘무능력’이 연상된다면 어설픈 선심보다야 재능이 제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를 파는 배우에게 폭넓은 인간관계나 사회 환원에 열심인 모습은 관객의 신뢰를 부추기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인정할 만한 실력도, 폭을 잴 수도 없는 인맥을 가진 신인배우들에겐 그저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밝은 미소를 날리는 수밖에 없다.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에 출연한 많은 단역배우 가운데 유난히 해맑은 눈빛을 지닌 양수재(29)는 그것을 천성적으로 아는 사람 같다. 아니, 그 이상은 모르는 사람이다. <해피 에로…>의 오디션이 열린 지난 2002년 여름. 단역부문에 지원한 그는 감독과 직접 대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짧은 대사 한마디를 쩔쩔매다 참혹한 기분을 안고 물러난 그에게 감독의 후일담이 전해졌다. “좀 짧은 옷을 입고 올 것이지….”

굵직한 얼굴 선과 시원한 바디 라인을 가진 양수재를 극중 에로배우 역에 점찍어 놓은 감독은 그날 그의 긴 팔 옷차림이 영 맘에 안 들었던 눈치. 소식을 전해 들은 양수재는 당장 명동에서 민소매 쫄티를 사 입고, 음료수를 두팔 가득 안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부지런하고 싹싹하게 구는 그에게도 남모를 고민과 의문이 있었다. 26살 때 일년 반 정도 실제 에로배우로 활동한 경험이 있던 그는 막상 첫 장편 데뷔작에서 에로배우 역할을 맡자 적이 당황했다. 지원서에도 일부러 누락시킨 경력인데 감독이나 그 밖의 스탭들이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묻고는 싶어도 누르고 있는데, 단역 선배 하나가 슬며시 다가와 넌지시 ‘그 세계’의 수입이 어떤지 묻는 걸 보고 확 깨달았다. 다 알고 있구나. 심지어 영화가 끝날 무렵엔 차태현도 다가와 “형 나온 비디오 저도 봤어요” 하는 통에 어찌나 민망하던지. 순수하고 열심인 그를 알아본 튜브쪽에서는 새로 찍는 <가족>이라는 영화에 그를 출연시킬 예정이다. 그의 꿈은 원래 보디빌더였다. 운동을 워낙 좋아해 보안업체에 취직했을 때도 3교대 근무를 끝내고 나면 밤을 새워서라도 할당량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채우던 그였다. 사설 경비대에서의 억압된 일상과 호기심이 에로배우의 세계로 그를 이끌었고, 장·단편으로 꾸준히 얼굴을 알린 그의 꿈은 이제 배우다. 보디빌더를 꿈꾸던 건장한 스포츠인에서 배우로, 그의 2004년 서른살 인생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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