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유머 감각을 이해하는 사람들
할리우드 코미디언 계보에 잭 블랙을 분류해넣긴 애매한 구석이 있다. 대신 잭 블랙과 비슷한 감성으로 일하는 동시대인들이 있다. 물론 잭 블랙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마이크 화이트
마이크 화이트와 잭 블랙은 3년간 한 아파트에서 이웃으로 지내면서 친해졌다. 잭 블랙이 “우린 스코시즈와 드니로 같은 관계”라고 했을 때 스코시즈에 해당하는 그는 <척과 벅>으로 200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마이크 화이트의 작가 데뷔작은 <도슨의 청춘일기>. 제작도 했다. <오렌지 카운티>를 써서 잭 블랙, 톰 행크스의 아들 콜린 행크스와 함께 출연했었고, 제니퍼 애니스톤이 주연한 <굿 걸> 역시 쓰고, 출연했다. 잭 블랙은 마이크 화이트가 자신의 유머 감각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벤 스틸러
벤 스틸러도 인디적 감성을 가진 독특한 코미디 배우이자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청춘 스케치> <케이블 가이> <주랜더> 등이 이를 증명해주는 영화들. 벤 스틸러는 잭 블랙이 주연한 TV 코미디물 <힛 비전 앤 잭>(Heat Vision and Jack) 시리즈를 감독·제작했고, 잭 블랙의 야심 프로젝트 <터네이셔스 D: 운명의 제비뽑기>에도 제작자로 나섰다. 올 4월 미국 개봉예정인 배리 레빈슨의 <엔비>에서 잭 블랙과 공동 주연을 맡기도 했다. 또 하나. 그도 MTV의 패러디 단편에 출연했다. <미션 임파서블>을 패러디한 <미션 임프로버블>(있을 것 같지도 않은 임무)에서 ‘톰 크루우우즈’(Tom Crooze) 역할을 맡아 톰 크루즈, 오우삼 감독과 함께 열연한 바 있다. 팝그룹 백스트리트 보이즈 패러디물에도 출연했다.
조엘 갤런
잭 블랙의 절친한 파트너라고 보긴 어렵지만 취향이 유사한 건 사실이다. 90년 이후 MTV 무비 어워드 프로듀서를 맡아오고 있는 조엘 갤런은 다름 아닌 <피어싱의 제왕> <잭 블랙: 스파이더 맨> <미션 임프로버블>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감독이다. 이외에도 <섹스 앤 더 매트릭스> <윌 패럴과 함께하는 패닉 룸> <미라 패러디> 등 몇편의 패러디물을 추가 연출했다. 2001년엔 80년대와 90년대의 할리우드 틴에이저영화를 섞어놓은 장편코미디 <섹스 아카데미>를 감독하기도 했다.
로라 카이틀링어
잭 블랙이 7년 동안 꾸준히 사귀어온 여자친구다. 두 사람은 7년째 동거 중이기도 하지만 잭 블랙에겐 그가 10살 때 부모가 안 좋게 이혼한 기억이 있어서 결혼 여부는 알 수 없다. 동시에 로라 카이틀링어는 유능한 작가 겸 제작자 겸 배우다. TV시리즈 <윌 앤 그레이스>를 쓰고 제작했으며, 네편의 에피소드에서 간호사로 간간이 출연도 했다. 또한 <터네이셔스 D> 시리즈뿐 아니라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대디 데이 케어> <다운 위드 러브>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했다.
밴드 <터네이셔스 D>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세계 최고의 노래들을 만들 수 있게 된 두 사나이
잭 블랙 - “열여섯살이었을 때의 나는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잘생긴 녀석이었어.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에 본거지가 있는 배우 패거리(Actors’ Gang)라는 연기그룹에 있었는데 어느 날 카일이 나한테 기타치는 법을 갈켜줬지.”
카일 가스 - “그리고 나는 잭에게 그랬지, 와 너 노래 꽤 하는데? 한번 뭉쳐보는 게 어때?”
잭 블랙 - “(웃기지 마) 그건 모두 내 아이디어였다구!”
오랜 지기인 카일 가스와 함께 ‘터네이셔스 D’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로큰롤 밴드’를 하고 있는 잭 블랙에게 이 모든 것은 농담처럼 보인다. 하지만 잭 블랙이라는 친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얼렁뚱땅 굉장한 컬트적 인기를 누리게 된 ‘터네이셔스 D’라는 밴드의 역사는 그의 할리우드 커리어만큼이나(사실, ‘그보다 더’일는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 웃기는 듀오가 처음으로 만나서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음악이라는 것을 시작한 것은 1994년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연기자 그룹에서 만난 두 친구는 곧 의기투합하여 코믹메탈 듀오 ‘터네이셔스 D’를 결성했다. 몇몇 영화들의 인상적인 조연으로 이름을 알려오던 잭 블랙은 기네스 팰트로와 함께 연기했던 첫 번째 ‘주연’ 작품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를 통해 유명해졌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그들은 첫 앨범 <터네이셔스 D>를 발표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장난처럼 간주되던 그의 밴드가 일약 위풍당당한 컬트 밴드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세계 최고의 노래들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두 사나이의 모험담’이라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그들다운’ 컨셉의 이 데뷔 앨범은 ‘스파이크 존스’가 감독한 첫 싱글 <원더보이>(Wonderboy)의 비디오 클립으로도 유명해졌지만, ‘뮤지션으로 가장한 뚱보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처럼 간주되어오던 밴드가 음악평론가들에게나 일반 팬들에게 ‘진짜 밴드’로 평가받게 된 첫 번째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스틱스, 러시로부터 레드 제플린과 블랙 사바스까지, 70년대 하드록/헤비메탈의 아버지들을 끌어와 카일의 맛깔스러운 어쿠스틱 기타연주와 잭 블랙의 ‘정신나간 음유시인’ 같은 퍼포먼스로 어안이 벙벙하게 뽑아내는 그들의 앨범은, 제도권 잡지인 <롤링스톤>이 별 3개 반을 아낌없이 헌정할 정도였다.
물론 그들이 ‘돈으로 만들어진 주류 음악잡지’의 헌정에 감사인사를 드렸는지 화장실 휴지 대용으로 썼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물론 전자의 가능성이 높다. 잭 블랙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처음으로 기억하고 즐겼던 노래가 아바의 였고, 오지 오스본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연달아서 말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솔 어사일럼의 싱어인 데이브 퍼너가 위노나 라이더와 데이트하기 이전까지만 그들을 좋아했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뭐 그렇다고 그녀만 비난할 순 없어요. 사람들은 항상 요코만 비난하지만, 사실 비틀스의 해산이 그녀의 탓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처럼”이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거침없는 인디정신으로 조그만 순회공연장을 돌던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뚱땡이 2인조 코미디 컬트밴드’의 시절을 벗어나, 커다란 공연장에서 위저나 화이트 스트라이프 같은 일급의 록밴드들과 함께 공연하는 지금에도 그들이 예전의 막가파 정신을 여전히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기네스 팰트로와 공연하건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작품을 만들건 언제나 ‘재기발랄한 창조력이 가득한 유쾌한 루저’ 잭 블랙인 것처럼, 작은 소도시 공연장에서나 거대한 스타디움에서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는 언제나 ‘어쿠스틱 기타로 자아도취를 노래하는 웃기는 뚱땡이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