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자국 내 시장점유율 40%를 확보하고 동시에 산업적 시스템을 갖춰가면서 아시아에서 홍콩의 빈자리를 채워가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말이다. 바로 그 시기에, 또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영화산업이 부흥기를 맞고 자국영화를 해외에 알리기 시작했다. 3년 전 <씨네21>이 특집기사로도 다루었던 타이의 영화산업은, 그러나 현재 빠른 성장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곳 영화인들에 따르면 올해는 타이 영화계에 매우 중요한 해다. 거품을 빼기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타이. 위기 혹은 기회를 내포한 이곳 영화산업의 스케치를 담고,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짚어준 타이 시네마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지난 1월14일치 <뉴스위크> 한국판은 현 타이 총리 탁신 시나와트라를 커버스토리로 내세웠다. 7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바닥으로 추락한 타이 경제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키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재벌 출신의 탁신 총리는 공공지출의 비중을 늘리고 기업과 개인 대출을 용이하게 한다는 친(親)기업 정책으로 위축된 경제를 정면돌파했다. 탁시노믹스(Thaksinomics)로 불리는 이 전략 덕분에 타이는 예정보다 일찍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상환했고 지난해엔 6.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경제가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다음으로 높은 수치였다.
타이의 영화산업은 그러나 이와 정반대의 분위기로 흘러가는 듯하다. <방콕 포스트> 1면을 연일 장식하는 조류독감의 실태처럼 타이 영화계를 전망하는 현지 관계자들의 표정은 그닥 밝지 않다. <네이션> 기자 출신의 영화평론가 난타쾅 시라순토른은 “올해가 타이영화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마지막 해”라고 잘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타이의 영화산업이 성장했다고 말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타이 영화계가 그런 평을 듣게 된 이유는 광고계에서 흘러들어온 몇몇 인력들이 질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과 세계적으로 지역색 강한 영화들이 주목받으면서 타이영화에도 관심이 쏠렸다는 데 있다.” 일견 동의하기 어렵다 해도 이 말은 분명 타이 영화계의 현주소를 포함한다. 타이 영화계는 지금 짧은 호황의 단맛이 채 가시기도 전에 괴로운 소화불량을 호소하고 있다.
90년대 후반 급격한 성장 이후 부작용 나타나
시암스퀘어에 자리잡은 리도 극장. 방콕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중 하나다.
지난해 타이에서 개봉한 자국영화는 총 48편이다. 97년 논지 니미부트르와 옥사이드·대니 팡 형제, 펜엑 라나타루앙 등 몇몇 젊은 신인감독들이 불씨를 살려낸 이후, 영화산업이 말 그대로 급격한 성장곡선을 그려온 결과다. 99년 <낭낙>이 1억5천만바트를 벌어들인 것을 신호로 해마다 자국영화가 그해 흥행 톱에 올랐다. 지난해 초 개봉한 무에타이영화 <옹박>은 방콕에서만 1억바트를 벌어들였고,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이 걸>은 1억4천만바트를 거둬갔다. 올해 초 개봉한 코미디 <보디가드>는 개봉 8일 만에 5천만바트라는 기록적인 수익을 냈다. 이 팀은 방콕국제영화제 동안 자축 파티를 열어 자신들의 상업적 성공을 만방에 알리기도 했다. 이런 기록들만 본다면 타이 영화산업은 여전히 활기차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개봉작 48편 중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여섯편에 불과하고, 타이 영화계는 결과적으로 6억바트의 손해를 입었다.
원인은 당연한 데 있다.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목격한 외부의 돈들이 영화계로 물밀듯 쏟아져 들어와 수많은 아류작, 혹은 ‘상업적 목적이 매우 확실한 영화들’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하고 낯선 문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타이인들의 성향은 지난 2, 3년간 공포영화와 코미디영화의 유행을 지속시켰다. 독특한 소재로 흥행에 성공한 <마이 걸>도 곧 유행을 가져올 거라며 “우리는 그런 유행에 치우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어느 제작사 관계자조차 “<옹박> 같은 타이식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중급 제작사인 CM필름은 이러한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설립된 지 5년도 채 안 된 이곳은 원래 VCD를 제작하던 회사였다. 불법 DVD보다도 VCD의 인기가 훨씬 높은 타이에서는 VCD 제작사들이 보통 1년에 1억바트씩 수입을 올린다. CM필름의 자본도 이렇게 축적됐다. 잘 팔리는 VCD를 가려내는 안목은 상업영화 제작에 큰 도움이 됐고, 주로 공포물을 제작해 재미를 본 CM필름은 이제 호러영화에 관한 한 일가견 있는 제작사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트렌드에 의존한 제작 경향을 주도한 쪽은 무엇보다 타이의 메이저사들이다. 사실 타이에서는 영화편수가 증가한 것만큼 제작사 수가 크게 늘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이곳은 메이저 제작사들이 안정된 시스템을 먼저 갖추고 산업의 호황기를 맞았다. RS필름과 GMM 그래미픽처스는 각각 종합엔터테인먼트 그룹인 RS프로모션과 GMM 그래미 퍼플릭 코퍼레이션의 자회사다. 필름 방콕은 채널3번 방송사를 소유한 벡테로 엔터테인먼트가 모기업이고, 영화사업만을 꾸리고 있는 사하몽콜필름과 타이엔터테인먼트는 3대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인 SF시네마 그리고 EGV와 각각 ‘긴밀한’ 관계에 있다. 이렇게 안정된 제작-투자-배급시스템과 자본력을 갖춘 상태에서 타이의 메이저사들은 성공한 감독들을 프로듀서로 영입해 수많은 상업영화를 제작해냈다. (신기하게도) 타이 영화산업의 침체기였던 90년대 중반에 들어선 멀티플렉스들이, 이들의 듬직한 출구가 됐다. 손님이 들끓는 상업영화는 방콕 내 스크린 수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메이저 극장 체인 안에 오래도록 자리잡고 편안히 손님을 모을 수 있었다. 성공이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동안 대다수의 영화들은 2주를 못 넘기고 밖으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