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안젤리나 졸리, 에단호크의 <테이킹 라이브즈> [1]
2004-03-23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누가’보다 ‘왜’를 쫓아라

지금 맨해튼에는 3월19일 개봉한 <테이킹 라이브즈>를 홍보하기 위한 대형 포스터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이 포스터에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뒤에서 강제로 끌어안은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절반 정도만 보이지만, 포스터 속의 여자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안젤리나 졸리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도톰한 입술이 너무나 확연하기 때문이다.

몬트리올을 배경으로 하고, 몬트리올과 퀘벡에서 촬영한 이 작품은 다른 스릴러와 달리 누가 했는가 (who-dunnit)보다는 왜 했는가(why-dunnit)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선지 최근 뉴욕에서 열린 기자 회견장에서 감독은 물론 배우들도 영화상의 큰 반전에 대해 비밀을 지켜달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테이킹 라이브즈>는 FBI 프로파일러와 연쇄살인범 사이의 관계를, 이전 영화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다룬다. FBI 에이전트 중 연쇄살인범만을 전담 수사하는 여성 프로파일러 일레이나 스콧(안젤리나 졸리)이 몬트리올 시경의 요청으로 수사를 돕는다. 그녀는 범인이 살인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고 피해자의 신분을 가로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범인은 피해자의 신용카드도 사용하고, 피해자의 집에서 몇주 또는 몇달씩 생활하면서 다음 타킷을 찾는다. 몬트리올 시경과 스콧은 얼마 뒤 연쇄살인범의 범행 현장을 목격한 아트 딜러 제임스 코스타(에단 호크)의 도움으로 사건 해결을 눈앞에 둔 듯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상황과 증거는 수사관은 물론 관객도 예측하지 못했던 곳으로 복잡한 미로처럼 사건을 전개시킨다.

감독을 맡은 D. J. 크루소는 “연쇄살인범은 잡을 수 있지만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을 만들어낸 사람은 잡을 수 없는 것이 큰 문제”라며 “그래서 인간의 본질과 주체성, 그리고 이런 범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좀더 깊이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호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2년 발 킬머가 주연한 <솔튼 시>(Salton Sea)를 감독한 신예. 4300만달러의 제작비가 소요된 이 작품에 대해 일부에서는 <쎄븐>이나 <양들의 침묵>이 연상된다는 평이 있으나, 감독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노토리어스>와 글렌 클로스 주연의 <톱니바퀴의 칼날>(Jagged Edge) 등의 작품과 비교하는 것이 더 가깝다”고 말한다.

배우, 스탭 모두 초호화 캐스팅

마이클 파이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존 부켄캠프가 시나리오를 담당했다. 원작이 연쇄살인범의 시점에서 전개된 반면 시나리오에는 범인을 뒤쫓는 여성 FBI 에이전트의 역할이 새롭게 생겼고, 그 역할이 주인공으로까지 발전됐다. 이후 부켄캠프의 시나리오는 여러 작가의 손을 거치게 되지만, 결국 부켄캠프의 시나리오에 근접한 새로운 버전으로 끝을 맺었다.

<테이킹 라이브즈>는 본래 토니 스콧이 감독을 하려던 작품. 배경이 된 도시는 시애틀이었지만 재정적인 이유로 밴쿠버에서 촬영장소를 변경했다. 이후 사정상 크루소가 연출을 맡게 됐고, 프랑스영화를 좋아하던 그는 프로듀서들을 설득해 영화 배경 자체를 유럽풍이 물씬 풍기는 몬트리올로 바꿨다. “<베티 블루> 같은 프랑스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크루소는 그 때문인지 프랑스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다. <테이킹 라이브즈>에는 안젤리나 졸리와 에단 호크 외에도 영화팬들에게 잘 알려진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한다. 범인의 어머니 미세스 애셔로 출연하는 지나 롤랜즈를 비롯해 <언페이스풀>로 스타덤에 오른 올리비에 마르티네즈, 체키 카요, 장 위그 앙글라드 등이 몬트리올 시경 형사로 출연한다. 또 지난해 <야만적 침략>으로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마리 조세 코르제가 몬트리올 시경 부검 의사로 출연한다. 또 키퍼 서덜런드는 수사관들의 눈을 피해 코스타를 뒤쫓는 미스터리한 인물 하트로 출연한다. 그는 상당히 짧은 시간 영화에 출연하지만 영화에 색다른 에너지를 더해준다.

영화의 긴장감을 한층 더해주는 음악은 <디 아워스>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필립 글래스가 담당했다. 후반부에 나오는 자동차 추격장면은 스턴트맨과 스턴트 코디네이터 출신인 부감독 믹 로저스가 담당했다. 그는 <분노의 질주>와 <매트릭스2: 리로디드> 등의 스턴트 장면을 연출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주인공이다.

크루소 감독에 따르면 졸리와 호크는 배역 선정에도 상당히 신중을 기하는 배우들이다. 하지만 촬영장에서는 다른 배우와 스탭들과 함께 가족처럼 편하게 생활했다고. 프로듀서 마크 캔턴은 “몬트리올이 미국과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촬영 중에는 거의 인근 지역에 고립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라며 “그래서 함께 일하는 스탭과 더 가까워질 수도 있고,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우리 영화의 경우에는 거의 가족처럼 변해갔다”고 말했다.

사실 이같은 분위기의 변화는 서덜런드가 촬영에 임한 3주 동안 일어난 것이다. 서덜런드를 농담처럼 “위험한 남자”라고 칭하는 크루소 감독은 “키퍼는 영화를 찍을 때는 무서울 만큼 정확하고 날카롭지만, 일단 촬영이 끝나면 그처럼 신나게 노는 사람도 보기 드물다”고 말했다. 특히 서덜런드가 출연한 장면은 몬트리올에서 미국 뉴올리언스의 마르디그라와 비슷한 수준의 큰 행사인 ‘몬트리올 인터내셔널 재즈 페스티벌’이 실제 배경이 돼 축제 분위기가 더 물이 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외 기자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배우가 졸리나 호크가 아닌 마르티네즈였다는 것이다. 특히 영국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그가 인기 팝스타 카일리 미노그의 남자친구이기 때문. 그래서 해외 기자들은 그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액션신이 베드신보다 더 쉽다는 마르티네즈는 “감독의 꼬임으로 15년 전 프랑스에서 첫 데뷔했을 때처럼 스포티한 머리로 자르게 됐다”며 “역할에 필요하다고 진작 말했으면 자진해서 잘랐을 것을 왜 그렇게 거짓말을 했는지 아직도 감독이 원망스럽다”며 귀여운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크루소 감독은 그를 “다이내믹한 배우지만, 자기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려는 모습이 꼭 불독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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