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송강호와 <효자동 이발사> [1]
2004-04-22
글 : 박혜명

그 배우와 함께 <효자동 이발사>에 밑줄 긋고 주석달기

스크린 위에서 인간미 없는 송강호의 모습은 없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중사와 〈YMCA야구단>의 이호창 선비 등 영화의 공기 자체가 친숙한 휴머니즘을 쉽게 전달할 수 있을 때는 물론이고 <넘버.3>의 삼류건달 조필, <반칙왕>의 소심한 샐러리맨 임대호 등 유쾌하지만 냉소적인 블랙코미디를 담은 영화에서도 그는 그랬다.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야 말할 것도 없다. 하다못해 보는 이의 입을 바싹 타게 만드는 하드보일드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조차 동진의 잔인함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분노라는 또 하나의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됐다.

<효자동 이발사>의 포스터는 그 표정의 절정을 담고 있다.어쩌면 실제로 이 한컷의 이미지가 자연인 송강호를 일부분 닮은 것인지 모른다. 그가 오래전부터 반복 이야기했던 자신의 취향과 생각들, “사람에 대한 얘기가 있는 영화가 좋다”는 것과 “그 속에서 사람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게 아름다운 것 같다”는 말은 사실 뻔한 이미지에 대한 뻔한 욕망이다. 중요한 건 그가 그 바람대로 해왔다는 데 있다. 물론 실제의 송강호는 포스터 속 웃음으로 짐작되는 것보다 더 예민하고 욕심 많고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가 바라는 길이 자신의 본질과 전혀 다른 방향을 향했었다면 이는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더 부연하지 않고 송강호의 육성을 담는다. 지적이거나 유식한 개념어가 없는 쉬운 표현들은 송강호의 이미지가 왜 그의 실제처럼 다가오는지 말해주고, 정연히 정리해서 말하지 않는 설명방식은 그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연기의 방법이 머리와 말에 있는 게 아니라 가슴과 몸에 새겨져 있는 것임을 알려준다.

배우 송강호

성한모가 임신한 민자를 리어카에 태우고 4.19 데모대 한 가운데를 통과하던 순간 음… 그 장면을 찍을 때…, 그게…, 실제로 총 쏘고 많이 죽었잖아요, 사람들이…. 근데… 실제 같으면… (할말이 없는 듯) 진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정색해 보지만) 그게 사실 4·19에 대한 장면을 찍는다고 해서 4·19에 대한 생각을…. 그냥 공부하고 아는 정도. 그 정도죠. 근데 배우가 있잖아요, 어떤 한 작품의 특정한 뭐다뭐다 이것들의 감정을 잡아야죠. 배우는 배우예요. 배우는 표현하는 사람이지, 배우가 그런 사건들에 대해서 가슴 절절하게 느끼고 그럴 필요가 있나요? 표현하는 건데 뭘…. 그걸 일부러 몰라도 된다 그런 뜻이 아니라 알면 더 좋죠. 근데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이죠. (잠시 침묵) 그러니까 지금 잘 접수가 안 되는 모양인데, 4·19를 찍는데 그 사건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또 그렇게 할 작품도 아니고. 오히려 그럴 것 같으면 감독의 입장에서는 모든 걸, 그러니까 예를 들면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도 화성에 대한 얘기도 제가 전 사건에 대한 디테일한 모든 어떤 것들을 다 해야 이게 올바른 연기가 나오고 또 형사들의 어떤, 일일이 다 만나서 그때 심정 같은 걸 다 녹취해가지고 다 들어보고, 그래야 올바른… 그건 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건 흉내내는 것이지 본질을 파악하고 본질을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이 안 들거든요. 모르겠어요, 이건 내 개인적인 어떤 연기방법이고. 다른 분들은 실제로 그렇게 해가지고 하고 그렇게 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오히려 난….

본질에 접근하는 법 음… 그럴 수도 있구요, 사실은, 음… 그러니까 늘, 늘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아요, 배우들은. 저 자신도 가만히 앉아 있고 뭘 하더래도 늘 공부, 세상에 대해 공부하고, 사람에 대한 공부를 늘 지금 병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가 늘 해왔고 우리 옆에서 살아가고 모든, 그런 모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그죠? 그렇기 때문에 늘 공부를 해야죠. 늘. 그러니까 행려 역할도, 그때 잠시 서울역에 가 한달 동안 행려들하고 있는다고 배워지는 게(아니라), 행려가 왜, 행려자들이 왜 생겨나고 행려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행려들은 어…, 어떤 정서적인, 어떤, 어떤, 그… 가지고 있나, 이걸 늘 생각하는 거죠. 행려면 행려(행려 흉내). 이런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 살아가다보면 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 얘기를 듣잖아요. 그게 다 연기의 분량이죠. (잠시 침묵) 그런 게 아닌가….

관찰력 관찰이라기보다는 성찰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저는. (기자 입가에 웃음이 둥실 뜨자) 왜 웃으세요? 관찰은 어떤 특정한 그걸 묘사하려고 보구 이런 거지만 관찰보다 더 큰 광범위한 성찰을 한다고, 개인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특정한 인물, 특정한 사건을 보고 연구하고 밀도있게, 이러… 는 게 꼭 필…, 그런 것보다는 인생 자체를 이렇게, 내 인생도 그렇고 남의 인생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성찰이 맞다고 생각해요. 표현을 똑바로 하자면. 늘 하죠. 정리하고…, 세상에 대한 정리하고…, 사회에 대한 정리하고….

일기 아니오, 전 일기를 쓰지 않아요.

아니오. 전 신문을 많이 볽습니다(봅니다와 읽습니다가 한꺼번에 떠오른 듯). 신문을 많이 보고…. 음… 신문도 보도나 이런 기사를 많이 보지만, 사실 칼럼도 많이 보거든요. 상대적으로 책은 좀 덜 읽는 편이에요. 시간도 없을 뿐더러, 영화는 솔직히 OCN 통해서 많이 보고. 영화관은 잘 안 가고요. 제가 극장을 찾아가서 일부러 영화를 티켓팅해가지고 영화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웃음) 이게 너무 귀찮아가지고. (웃음) 제가 귀찮은 걸 너무 싫어해서 뭐 몇시에 영화, 줄서서 기다려 표 끊고 또 이렇게 일반인들하고…, 사실 불편하잖아요. 그런 불편함도 있고 그러니까 오히려 시사회 때 안 가면 비디오나 OCN에서 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위기의식 속에 긴장하기 or 평정심 유지하기 후자쪽입니다, 저는. 왜냐하면 제가 사석에서나 우리 가족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지만…, 저는 배우가 인생의 목표가 아니에요, 사실은. 전 배우 아니래도, 그러니까 배우…, 배우를 안 하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어요, 당장이라도. 저는 처음 연극할 때부터 그랬어요. 그러니까 물론 내가 원했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만, 내가 구차하게까지 하면서 이… 저기… 연기랄까… 배우를 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위기의식이라는 거는 특별히… 저는…. 단지 자연에 순화하고 싶어요, 저는. 내 나이에 맞는 얼굴과 목소리와 표정과 또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배우라는 것이 나이를 들게 되면 점점 더 선택의 폭도 좁아지고 또 뭐 우리 훌륭한 후배들도 많이 생겼고 그러면 점점 주류에서 밀려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 다음에도 쓸모가 없을 땐 당장 그만 해야죠. 다른 일을 해야죠. 전 결혼할 때도 그런 얘길 했어요. 집사람한테도, 이 일이 뭐, 내가 이 일을 끝까지 해가지고 꼭 성공을 하리라. 이런 얘기 한번도 안 했어요. 당장 내일이래도, 내가 이 일을 통해서 내 스스로 내 인생에 대한 가치나 보람을 못 느낀다면 나 당장이라도 그만둔다. 그만둘 용기가 있고. 그 생각이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단지 지금까지는 내가 좋아서 그리고 내가 노력을 해오면서 살았던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고 힘닿는 데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자연의 순리에 맞게끔 정리가 돼야 되는 게 맞지 않나….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