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가 자회사인 미라맥스에 마이클 무어(사진)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을 배급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 물의를 빚고 있다. 미라맥스가 제작비 대부분을 투자한 <화씨 911>은 부시 대통령 일가가 오사마 빈 라덴 가문과 30년 가까이 사업 파트너로서 관계를 맺어왔고,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 직후 텍사스에 살고 있던 빈 라덴의 친척들을 탈출시키는 데 관여했다고 폭로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이라크 전쟁에 환멸을 느낀 미군 병사들의 증언도 담고 있다고 한다. 디즈니는 배급금지 조치에 대해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특정 정치적 성향을 배제하고 가족 중심 사업을 추구하는 디즈니에 맞지 않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라맥스와 무어쪽의 입장은 디즈니의 주장과 다르다. 무어의 에이전트 아리 에마뉘엘은 “지난해 봄 마이클 아이즈너 디즈니 회장이 미라맥스와 계약을 맺지 말라고 요청했다”면서 “디즈니는 부시 대통령의 동생 제프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주에서 조세감면 혜택을 받고 있다. 아이즈너는 디즈니가 이 일에 관련되기를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미라맥스는 “우리는 디즈니와 NC-17등급 등 문제가 있는 일부 영화들은 배급하지 않겠다는 계약을 맺었지만, <화씨 911>은 그런 조항에 속하지 않는다”며 <화씨 911> 배급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미라맥스는 다른 회사가 <화씨 911>의 미국 내 배급을 맡을 경우 예상수익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마이클 무어의 전작 <볼링 포 콜럼바인>이 다큐멘터리로서는 드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현실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상황. <화씨 911>은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이미 여러 회사에 해외 배급권이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