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장르적 세공력을 뽐내다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이 칸에서 처음 공개됐다. 개막 이틀째인 5월13일 열린 마켓 시사는 미처 자리를 못 잡은 바이어들로 다소 어수선한 와중에 시작됐다. 보통 초반 20분 안에 구매 가능성을 판단하는 마켓 시사의 관례에 비추어보면, 2시간 가까운 상영 동안 중간에 자리를 뜬 바이어가 서너명에 불과했다는 것이 <거미숲>의 흡입력을 방증해주었다. 데뷔작 <꽃섬>으로 예술영화에 대한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냈던 송일곤 감독은 미스터리드라마 <거미숲>에서 예상치 못했던 장르적 세공력을 뽐냈다.
짙은 어둠이 드리운 숲속, 덩그러니 놓인 별장으로 민(감우성)이 다가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끔찍한 광경이 펼쳐진다. 중년의 남자가 반라 상태로 난자당해 숨져 있고 젊은 여인이 피를 흘리며 가쁘게 숨을 내쉰다. “무서워!…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저기 거미가….” 이해할 수 없는 짧은 말을 끝으로 그녀는 숨을 거둔다. 민은 거미가 있다는 벽장을 열어젖힌다. 저 너머로 누군가 달아난다. 민은 현장에 떨어진 흉기를 집어들고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거미숲>은 클리셰에 가까운 비극적 로맨스를 의도된 기억의 결핍과 연결지어 미스터리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동시에 신파적 멜로까지 잡아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 주인공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 수수께끼처럼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의 수렁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거리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이에 답해야 하는 주체이자 객체가 돼야 한다. 거미줄처럼 꼬인 시간과 공간의 미로 속에 빠진 민은 공교롭게도 ‘미스터리 극장’을 제작하는 방송 프로듀서다. 그는 차례로 등장하는 세명의 여인과 더불어 자신에게 할당된 수수께끼를 풀어가야 한다. 이 미궁을 헤쳐가지 못하면 끔찍한 살인범으로 몰릴 판국이다. 방송사 간부로부터 경멸받을 만큼 자포자기에 빠지게 만든 그의 사랑스런 아내, 귀신이 출몰한다는 미스터리의 현장을 제보해놓고 스스로 미스터리가 돼버리는 수인(서정), 사랑과 출세욕 사이에서 방황하는 민의 또 다른 여자 수영(강경헌). 애정의 상대를 바꿀 수밖에 없는 그는 그 때문에 자신을 옭아매야 한다. 장르의 관습을 노출하는 동시에 감춰가는 <거미숲>은 송일곤 감독을 풀어주는 동시에 묶어놓은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