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녀석들>에서 <진주만>까지, 할리우드 최고의 제작자-감독 흥행복식조
영화 한편에 1억4500만달러. 폭스와 파라마운트가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에 공동으로 2억달러를 투자한 적은 있지만, 단일 스튜디오가 한편의 영화에 들인 비용으로는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이 정상이다. 최근 몇년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적과의 동침’인 공동제작을 유행처럼 시도했던 것은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한 이유였다. UA의 문을 닫게 만들었던 <천국의 문>의 전철을 답습하고 싶은 제작사는 그 누구도 없었다. 80년대 한때 잘 나가던 캐롤코가 무너진 것도 결국은 ‘과다한 제작비’ 때문이었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한 ‘이벤트영화’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는 싶지만 부담이 너무 크다. 공동제작이 성행한 이유는 그것이다. 그렇다면 디즈니가 <진주만>에 ‘1억4500만달러’를 아낌없이 쏟아부은 것도 이유가 있을까.
마이클 베이가 <나쁜 녀석들> <더 록> <아마겟돈>으로 3연타석 홈런을 날린 대형타자이기 때문에?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 역시 <어비스>를 제외하고는 승승장구했다. 만약 <타이타닉>이 영화흥행사를 다시 쓸 만큼의 ‘대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을 폭스의 경영진이 미리 알았다면, 파라마운트에 손을 벌렸을 이유는 절대로 없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경영자들, 철저한 자본주의의 신봉자들은 명분이 아니라 돈을 택한다. 그것은 언제나 분명하다.
그렇다면 디즈니가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에 막대한 돈을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확실하다. ‘반드시’ 성공하기 때문에. <타이타닉>을 넘지는 못해도 적어도 손해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너무나 간단하다. 마이클 베이 감독,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작품이기 때문에.
<더 록>으로 액션영화의 트렌드를 구축하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지금까지 마이클 베이의 전 작품을 제작했다. 만약 마이클 베이가 <진주만>을 다른 제작자와 손잡고 했다 해도, 디즈니가 1억4500만달러를 기꺼이 투자했을까? 글쎄, <매트릭스>를 만든 조엘 실버 정도라면 고려해보긴 했겠지만 그것조차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마이클 베이와 제리 브룩하이머의 복식조는, 단순한 흥행감독과 제작자의 만남이 아니다. 마이클 베이와 제리 브룩하이머의 첫 만남은 <폭풍의 질주> 뮤직비디오였다. 당시 제리 브룩하이머와 그의 제작 파트너였던 돈 심슨은 광고계의 기린아인 마이클 베이에게 선뜻 일을 맡겼다.
역시 광고계에서 출발했던 제리 브룩하이머는 일찌감치 마이클 베이를 눈여겨보았다. 장편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이클 베이에게, 제리 브룩하이머는 <나쁜 녀석들>을 권했다. 윌 스미스와 마틴 로렌스를 명실상부한 스타로 만들었던 <나쁜 녀석들>은 컬럼비아에 6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려주었다. 하지만 컬럼비아는 마이클 베이를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았고, 제리 브룩하이머와 마이클 베이는 디즈니로 자리를 옮겼다. 이런, 컬럼비아는 영화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린 제작자를 내친 것이다.
제리 브룩하이머와 마이클 베이는 디즈니에서 승승장구했다. 미셸 파이퍼의 <위험한 아이들>, 덴젤 워싱턴과 진 해크먼의 <크림슨 타이드>는 전초전이었다. 마침내 96년 <더 록>이 나왔다. 한물간 듯한 느낌이 있었던 숀 코너리와 어쩐지 인디 배우로나 적당할 듯한 니콜라스 케이지를 짝으로 붙인 <더 록>은, 90년대 블록버스터의 지평을 바꾸어놓았다. <더 록>은 전세계에서 3억5천만달러를 벌어들였고, 비디오 역사상 가장 대여가 많이 된 작품으로 기록됐다. 단지 수익뿐이 아니다. <더 록>은 거의 완벽한 ‘오락영화’다. 수십년을 감옥에 갇혀 퇴물이 된 전직 SAS 요원과
총이라고는 단 한번도 쏴보지 않은 내근 FBI 요원의 기묘한 신경전과 우정. 조국에 대한 충성과 애정으로 가득한 테러리스트의 절절한 고백. 그들을 방해하는 야비한 FBI 상사와 돈밖에 모르는 후배 군인들. <더 록>은 인물들의 흥미로운 관계와 현란한 대사만으로도 긴장하게 만든다. 그 위로 휘몰아치는 액션의 폭풍. 그건 ‘폭풍’이라는 말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게다가 뮤직비디오의 호흡으로 빠르게 이어붙인 편집이 눈을 어지럽게 한다. <더 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짜여진, 관객이 한눈 팔 틈을 주지 않는 ‘롤러코스터식’ 블록버스터다.
<더 록> 이후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콘에어> <아마겟돈> <식스티 세컨즈>만이 아니라 다른 제작자와 감독들이 손을 댄 많은 블록버스터가 <더 록>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더 록>의 스타일은 90년대 이후 액션영화의 트렌드가 되었고, 제리 브룩하이머는 최고의 제작자로 등극했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박스오피스 수익으로 미국 내에서만 20억달러 이상을 벌었고, 총수익을 따진다면 110억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마이클 베이가 뛰어난 오락영화 감독이긴 하지만, 제리 브룩하이머와의 ‘콤비’가 아니라면 과연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마이클 베이는 아직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카메론처럼 어떤 경우에든 최고의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감독은 아니다. 마이클 베이가 그들의 반열에 올라서려면, 제리 브룩하이머 이외의 제작자와 만났을 때에도 동일한 수준의 ‘작품’을 만들거나 그만큼의 수익을 올려야만 한다. 아직 마이클 베이는 충분하게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
마이클 베이가 <아마겟돈>과 <진주만>의 공동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아직도 마이클 베이가 제리 브룩하이머의 ‘수제자’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게다가 그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마이클 베이의 ‘자아 도취’가 전면에 드러나는 결함을 보인다.
수퍼루키에서 흥행사가 되기까지
잘 알려진 것처럼 마이클 베이는 뮤직비디오와 광고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다. 13살 때 외계의 우주선이 지구를 공격하는 ‘액션’영화를 만들었고, 15살 때에는 루카스필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티븐 스필버그가 <레이더스>의 특수효과 작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마이클 베이의 영화인생은 이미 그때 결정된 것이다. 웨슬리안대학 시절 프랭크 카프라상 최고의 학생작품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던 마이클 베이는, 패서디나의 아트센터 컬리지 오브 디자인을 졸업한 뒤 뮤직비디오업계에 뛰어들었다. 당시 화제가 되었던 도니 오스먼드의 컴백 비디오를 만든 마이클 베이는 티나 터너, 미트로프, 라이오넬 리치, 윌슨 필립스 등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MTV 뮤직비디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뒤 광고업계로 뛰어들었다. 나이키, 코카콜라, 리복, 버드와이저, 밀러, 리바이스, 이스즈 등의 CF를 찍은 마이클 베이는 ‘갓 밀크’ 시리즈로 명성을 날렸고 이미 26살에 클리오상과 골드 라이온상을 비롯한 모든 광고상을 섭렵했다. 뮤직비디오와 CF업계에서 자신의 재능을 과시한 마이클 베이는 마침내 필생의 꿈이었던 영화계로 투신한다. 그뒤의 이력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쁜 녀석들> <더 록> <아마겟돈> <진주만>이다(마이클 베이의 한 가지 스캔들은 그의 아버지에 관한 ‘소문과 진실’이다. 마이클 베이는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었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마이클 베이는 인터뷰에서 ‘영화계에서 꽤 인정받는 사람’이라고만 말해왔다. 마이클 베이가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블랙 선데이> <로닌> <레인디어 게임>의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이라고 한다. 외모만이 아니라 촬영현장에서의 불같은 성격까지 그대로라는 평).
마이클 베이를 발탁한 제리 브룩하이머의 출발점도 광고였다. 1945년생인 제리 브룩하이머는 애리조나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고향인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CF를 만들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패러디한 폰티악 광고는 <타임>에서 칭찬할 정도로 재기가 넘쳤고, 뉴욕의 광고회사에 들어갈 길이 열렸다. 23살에 뉴욕의 광고회사 BBD&O에 들어간 제리 브룩하이머는 아트디렉터로 시작해서 마침내 클리오상을 받는 광고제작자로까지 성장했다.
광고계에서 정상에 오른 제리 브룩하이머는 미련없이 영화계로 옮긴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선택은 감독이 아니라 제작자였다. 72년 딕 리차즈 감독의 서부극 <컬페퍼 캐틀 컴퍼니>를 공동제작한 뒤, 제리 브룩하이머는 73년 <안녕 내 사랑>의 제작자로 처음 이름을 올린다. 이후 제리 브룩하이머는 <아메리칸 지골로> <캣 피플> 등 약간은 야하고, 약간은 의미도 있는 작은 영화들을 만들어갔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색깔이 분명하게 잡힌 것은 83년의 <플래쉬댄스>다. 제니퍼 빌스를 스타로 만들어준 <플래쉬댄스>는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빠른 컷과 흥겨운 주제곡, 그리고 에어로빅 풍의 춤으로 화제를 모았다. <플래쉬댄스>는 미국에서만 1억달러 가까이 벌어들이며 슬리퍼 히트를 기록했다.
<플래쉬댄스>가 제리 브룩하이머에게 더욱 뜻깊은 이유는, 이후 14년간을 함께한 동료 돈 심슨과 공동으로 만든 첫 영화라는 점이다. <플래쉬댄스> 이후 제리 브룩하이머와 돈 심슨은 <베버리 힐즈 캅>과 <탑 건>을 만들면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수익이 많은 액션영화 제작자로 자리매김한다.
브룩하이머와 심슨의 영화는 흔히 ‘하이 컨셉, 빅 버짓’이라고 불린다. 그들의 영화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관심을 끌 만한 ‘컨셉’이 분명하고 개성있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리고 휘황한 액션이 있다. 에디 머피와 톰 크루즈도 그들의 영화를 통해 스타가 되었다. 물론 그들의 고유한 재능도 있었지만, 심슨과 브룩하이머가 만든 영화에는 관객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분명한 ‘캐릭터’가 있었다. 빠른 편집이나 주제곡의 비중이 큰 점도 특징이다.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제리 브룩하이머와 돈 심슨이 역할분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사 출신인 돈 심슨이 이야기나 아이디어 포착에 대단히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광고제작 출신의 브룩하이머는 디테일과 제작과정을 조직적으로 완수하는 데 탁월하다고. 두 사람의 라이프스타일도 판이했다.
돈 심슨은 스스로 여자와 돈 때문에 영화계에 뛰어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결국 약물중독으로 급사할 정도로, ‘방탕’했다. 반면 제리 브룩하이머는 성실하고 치밀했다. 너무나도 달랐던 브룩하이머와 심슨은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올린 제작자 콤비가 되었다.
아카데미 15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주제가상을 2번 수상했고 그래미상, 골든 글러브, 피플스 초이스, MTV상 후보에 수없이 올랐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85년과 88년에 전미극장주협회에서 주는 올해의 제작자상을 수상했고, 88년 돈 심슨과 함께 미국출판인협회 선정 ‘올해의 극영화 흥행사상’을 받았다.
위기라는 이름의 기회
그러나 위기도 있었다. <더 록>은 돈 심슨의 이름이 오른 마지막 영화다. 하지만 돈 심슨은 죽기 전 이미 약물중독이 극에 달해 도저히 일을 진행시킬 수 없는 상태였다. <더 록>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주변에서는 제리 브룩하이머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의 성공은 ‘시너지 효과’의 결과물이라고 분석한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틀렸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돈 심슨 사후에도 거침없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사이먼 웨스트의 <콘에어>는 미국에서 2억달러 이상을 벌었고, <아마겟돈>은 전세계에서 5억달러 수익으로 디즈니의 실사영화로는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 사운드트랙도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크림슨 타이드>의 토니 스콧와 다시 손잡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도 전세계에서 2억2500만달러 이상 수익을 올렸다. 도미닉 세나의 <식스티 세컨즈>도 미국에서 1억달러 이상을 벌었다.
그뿐이 아니다. 요즘 제리 브룩하이머는 액션영화 ‘전문’에서 벗어나고 있다. 아니 이미 벗어났다. <리멤버 타이탄>은 개봉 첫주에 2120만달러를 벌어 덴젤 워싱턴 출연작 중 최고의 오프닝 성적을 올렸다. 액션영화였던 <펠리칸 브리프> <본 콜렉터>의 기록을 훨씬 넘어선 <리멤버 타이탄>은 인종갈등이 한창이던 60년대 고등학교 미식축구부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영화다. 이 ‘드라마’로 제리 브룩하이머는 미국에서만 1억달러 이상을 벌었다. 남성들은 금 바깥으로 밀려나고, 바 위에서 혈기왕성한 여성들이 박력있는 춤을 추는 <코요테 어글리>도 성공을 거두었다. <솔저 오브 포춘> <`s.o.f`> 등 TV시리즈를 꾸준히 만들어왔던 제리 브룩하이머의 최신작 범죄드라마 <`c.s.i.`>(Crime Scene Investigation)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돈 심슨의 부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잠시의 슬럼프도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디즈니 스튜디오의 사장이었던 조 로스는 “제리 브룩하이머는 대단한 열정과 영화에 대한 뛰어난 창의적인 비전을 가진 완벽한 제작자다. 그의 엄청난 성공 이유는 그가 정말로 영화를 사랑하고, 관객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감각이 탁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브룩하이머의 새로운 도전
제리 브룩하이머가 준비하는 작품들의 장르도 아주 다양하다. 1993년의 소말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 <블랙 호크 다운>은 리들리 스콧이 연출할 예정이고, 백인 FBI와 루이지애나 출신의 흑인 경찰이 마약조직의 핵심인물을 잡기 위해 내키지 않지만 손을 잡는 이야기인 <어퍼머티브 액션>에는 벤 애플렉과 윌 스미스가 출연한다. <콘에어>와 <식스티 세컨즈>의 시나리오를 쓴 스콧 로젠버그와 <코요테 어글리>의 데이비드 맥닐리 감독이 만난 터치스톤의 코미디 <다운 앤 언더>는 브루클린 출신의 두 남자가 거액의 마피아돈을 호주로 운반하다가 돈이 든 재킷을 캥거루에게 뺏기고 동분서주한다는 이야기다. 그 밖에 에티오피아 유대인의 탈출을 위해 목숨을 거는 뉴욕 증권 브로커의 이야기 <오퍼레이션 모세>, 자연보호주의자 벨린다 라이트의 업적을 다룬 <더 타이거 프로젝트>, 더블린 범죄조직에 암살당한 아일랜드의 영웅적인 저널리스트의 실화를 담은 <베로니카 게린 스토리>, 실존 FBI 요원 폴 린제이의 이야기 <위트니스 투 더 트루스> 등을 준비중이다.
제리 브룩하이머가 마이클 베이의 도움 없이도 제작자의 정상을 차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마이클 베이와의 만남은 제리 브룩하이머의 명성과 부를 더해주었다. 하지만 마이클 베이의 영화는, 하나의 트렌드일 뿐이다. <더 록>이 최고지만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콘에어> <식스티 세컨즈>도 동일한 공식으로 복제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마이클 베이가 아니어도, <더 록> 스타일의 영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브룩하이머는 이런 ‘이벤트영화’제작으로 수억의 돈을 벌었다. 브룩하이머가 ‘돈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요즘 제리 브룩하이머는 다양한 감독의,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리멤버 타이탄>과 <코요테 어글리>는 그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진주만>은? <타이타닉>의 로맨스를 삼각형으로 재구성하고, 침몰하는 배의 숫자를 곱하고, <스타워즈>의 공중전을 과거형으로 되돌리고, <아마겟돈>의 썰렁한 ‘미국주의’를 덮어쓴 위대한 낭비작. 마이클 베이와 제리 브룩하이머는 더 뛰어난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진주만>으로 증명했다. 글 김봉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