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유리와 고무, <늑대의 유혹>- 열정적인 신입생 조한선
2004-07-14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사람의 이미지는 곧잘 유형화된 캐릭터로 연결된다. 조한선과 강동원에게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스토리가 있다. 진하고 고른 눈썹, 뚜렷한 입술과 날센 턱을 가진 조한선은 자신만만한 열정이 저지른 화려한 에피소드를 들려줄 것 같고, 동그란 눈매와 장난스런 볼, 꼬리를 치켜올린 입매의 강동원은 유한 개구쟁이 소년의 순정을 숨겨뒀을 것 같다. 한 소녀와 두 소년의 어른스러운 사랑을 담아낸 영화 <늑대의 유혹>도 반해원과 정태성을 그렇게 만들어냈다. 두 배우의 실제 모습 또한 영화 속 아이들을 어느 정도 닮아 있다.

둘에게서 이런 전형적인 스토리들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 만들어낸 이야기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첫 영화에 막 발을 들여논 조한선과 두 번째 필모그래피에 마침표를 찍은 강동원. 두 선수는 현재 스타트 라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점을 간발의 차이로 달리는 중이다. 축구선수와 모델을 거쳤고, 운동과 게임과 모터카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절친한 사이라는 몇 가지 사실들을 빼고 나면 보여준 것보다 보여주지 못한 게 더 많은 두 사람. 인터뷰에 있어서도 또 다른 질문이 간섭하지 않는 한 쉬엄쉬엄 한없이 다듬어지지 않은 대답을 이어갈 만큼 아직은 쏟아낼 말이 더 많은, 이들은 신인이다.

카메라 앞에 선 조한선이 셔터마다 동작과 표정을 자유롭게 바꿔보인다. “보여줄 거라곤 턱선밖에 없어서” 이 턱선을 살려 프로필을 찍는 것이 조한선의 특기다. 그는 고개를 돌려도 선명한 움직임으로, 인상을 쓰더라도 얼굴을 확 찡그려 잡힌 주름으로 카메라 앞에서 자기 속내를 표현한다. 밖으로 분출해보고 싶은 게 많은 듯한 그는 영화도 그렇게 찍었다. 첫 영화 <늑대의 유혹>을 찍는 조한선의 목표는 캐릭터에 대한 자기의 확신을 보여주는 거였다. 그는 오로지 연기에만 신경을 썼다. “외모로 잘 나오는 건, 물론 동원이가 연기도 잘하지만, 그런 건 동원이가 보여주면 되고” 자신은 조한선이 아닌 반해원이 드러나야 한다는 의식을, 그는 잃지 않으려고 했다. 신별로 감정을 정리해서 감독에게 묻고, 감독의 의견이 자신의 것과 다르면 해원이의 입장에서 의견을 다시 꺼냈다. “제가 원했던 거를 하나 하고, 감독님이 원했던 걸 하나 해서, 그중에 감독님한테 맘에 드는 걸로 쓰시라고 그랬어요. 나중에 후시할 때 보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대로 나오더라구요.”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도 그는, 강한 자의식의 부산물로서 열등감 또한 감추지 않는다. “이번 영화가 솔직히, 말로는 주인공이 두명이지만 밖에서 비쳐지는 건 동원이가 더 많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는. 근데 그런 거에 대한 불만은 없어요. 제일 친한 친구고, 영화 얘기 들어왔을 때도 서로 전화통화하면서 할 거냐 안 할 거냐 얘기도 하고 그랬어요. (웃음) 그래서 동원이랑 같이 촬영하면서 좋은 경험도 얻고, 또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이 겪고 그랬어요. 근데 그런 것들은 신경을 안 쓰고 자기가 할 것만, 제가 생각하는 것만 하기로 했어요, 누가 뭐라고 하든.” 볼멘 목소리로 주위 비평에 예민해하는 조한선은, 듣지 못한 의견들까지 지레 짐작해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아주 냉정하게 평가하곤 했다. 그의 말만 쫓다보면 인간 조한선은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지만, 그만큼 솔직한 데에는 믿는 구석이 틀림없이 있다는 게 또 대개의 경우이기도 하다.

조한선의 집에 가면 DVD가 200장 넘게 책장에 꽂혀 있다. 무명일 때부터 영화와 연극을 많이 봤다며, 그는 <스카페이스>를 최고의 영화로,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베티 블루> 등을 최근에 본 인상 깊은 영화로 내세운다. “영화 얘기를 하면 끝이 없어요.” 그 모습이 꼭, 다른 친구들이 교과서와 노트만 갖고 시험공부를 할 때 자습서와 문제집 서너권까지 풀고 난 착실한 학생 같다. 든든하게 속을 채워도 아직 더 남아 있다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거는 듯한 신입생에게서 말 그대로 열정이 가득하다. 어쩌면 대학 3학년 때까지 축구선수로 활동하다 길을 꺾은 사람의 조급한 심정이 담긴 것일 수도 있다.

조한선은 겹겹의 유리창 같다. 겉에서만 봐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 같은 그는 웬만해선 자기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사람이다. 그의 유리창 밖으로 비치는 건 폭발하고 싶어하는 에너지다. 어느 소극장에서 발산된 손병호의 에너지를, 작은 체구가 커다랗게 보이도록 하는 알 파치노의 에너지를 닮을 때까지 조한선의 에너지는 대기 중이다. 관객이 세명뿐인 극장에서 <어둠 속의 댄서>를 보고 반했지만 DVD도 없던 시절에 비디오를 구할 길이 없었다는 그는, 안 판다는 대여점 아저씨를 졸라 기어코 비디오 테이프를 샀다. 그 신입생의 마음속엔 같은 소속사를 거쳐갔던 송강호와 최민식 등 선배들에게서 들은 말들이 새겨져 있다.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기다려서 내공을 쌓은 다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터뜨려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나지막하고 순한 목소리가 언뜻 불안하게도 들리지만, 현재 계약된 차기 영화를 끝내면 3∼5년 정도 연극을 할 거라는 말에 힘이 실린다. 이것이 열정적인 신입생이 전교 1등을 목표로 택한 방법이다. 자신만만한 열정은 있으나 화려한 에피소드는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점, 그것이 반해원과 조한선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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