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유리와 고무, <늑대의 유혹> - 야심있는 고집쟁이 강동원
2004-07-14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카메라 앞에 선 강동원은 별 움직임이 없어 보였다. 움직여도 살짝, 표정을 바꿔도 살짝, 하는 게 강동원의 특징인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조한선이 끼어든다. “그게 무서운 거예요. 얘랑 게임을 하면은, 제가 질 때가 있어요. 주로 이기는데, 갑자기 져요. 굉장히 열받잖아요. 담에 복수하러 가. 제가 이겼어요. 그러면은 (얘가) 열받는 게 보이거든요. 근데 얘는, 지고 있는데도 웃으면서, 어허허허, 오늘 컨디션이 안 좋다, 이러는데, 와, 이것도 미치겠는 거예요. 뭔가 반응이 와야 하는데, 웃으면서 실실…. 그러니까 이겨도 찜찜하고 져도 열받고.” 이어 강동원이 풍부한 부연설명을 덧붙인다. “저는 심리전에 되게 강해서요, 제가 져도 약올리고 이겨도 약올리고 그래요. 그러니까 한선이는, 져도 약올림당하고 이겨도 약올림당하고….” (웃음)

느린 목소리를 닮아서 성격도 한없이 유하고 순진할 것만 같은 강동원의 속내는, 한쪽에만 쌍꺼풀이 있어 서로 다르게 생긴 그의 두눈처럼 의외로 다르다. 맘에 쏙 들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발견했을 때, 조한선이 어떻게든 그 옷을 몸에 맞도록 수선하는 동안 강동원은 아예 다른 옷을 찾으러 자리를 뜰지도 모른다. 대신 차선책으로 발견된 옷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려야 한다. “저는, 먼 훗날, 이런 거는 별로 생각 안 해요. 그냥, 욕심이 많기 때문에, 어떤 분야를 제가 선택을 했던 간에 최고가 안 되면 제 스스로가 성에 안 차거든요. 그래서, 10년 뒤에 만약에 계속 이걸(연기를) 하고 있다면은, 물론 하고 있겠지만, 최고의 위치에 서 있어야 될 거 같아요.” 야심차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은 강동원은, 그래서 고집도 세다. <늑대의 유혹> 현장에서 그는 감독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생각하고 준비했던 거랑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거랑 많이 다르면은, 막 머리가 복잡해져가지고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일단은 제가 생각했던 거나 완성을 시켜놓고 나중에 바꾸든지 어쩌든지 해야지 답이 나올 것 같아가지고요…. 그리고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도 못해보고 그냥 하면은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요. (웃음)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는 한경이와 태성이가 감정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때마다, 감독이 빨리 치도록 주문한 대사를 제 입에서 저절로 나오도록 고집스럽게 시간을 끌곤 했다.

둘 다 RC카를 좋아하지만, 강동원은 주로 조립을 하고 조종은 조한선이 맡는다. 강동원은 어릴 때부터 뭐든 오랜 시간을 붙들고 앉아 만들고 조립하는 일이 취미였다. 초등학교 때, 침대를 사줄까, RC카(모터카 종류)를 사줄까를 물어왔던 부모님 앞에서 그는 주저없이 자동차를 선택했다(그래서 지금까지도 그의 방엔 침대가 없다고 한다). “제가 만날 조그만 차만 조립해서 갖고 놀다가 RC카로 눈을 돌린 거예요. 그러니까 집이 잘사는 편이 아니라서 집에서도 부담이 많이 되죠. 그래서 물어보시더라구요. 내가 만날 장난감 가게 가서 그것만 보고 있으니까…. 혼자 가서 빤히 구경하다 오고 그랬어요.” 이모부가 집에 오실 때마다, 그는 놀러가자, 놀러가자, 하면서 이모부 손을 잡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어김없이 장난감 가게로 갔다. 가만히 서서 유리창 속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조카에게, 이모부는 결국 무언가를 사줘야 했다. 혹시 이모부도 알았을까. 이 조그만 조카가 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짐작했었다는 사실 말이다.

강동원은 불투명한 고무물체다. 누르면 쑥 들어가겠지만 그렇게 해서 속을 뚫을 순 없다. “일할 때는 준비를 진짜 꼼꼼하고 철저하게 한다”는 데서 얻어지는 느긋함과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쌓아올린 자기만 아는 세계를, 강동원은 공유하고 있다. 조한선에게 “지금 너네 집으로 갈게”라고 전화하고서도 한참을 뒹굴거릴 만큼 게으르면서, 부모님이 속상해할 만한 일은 절대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는 눈치빠른 아들. 유한 개구쟁이 소년의 이미지는 같지만 사랑고백을 말로만 질러버릴 만큼 섣부르지 않다는 점, 그것이 정태성과 강동원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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